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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리포트-길 잃은 대한민국 GMO]세계 첫 개발 '바이러스 저항성 고추' 상용화 못해 10년째 창고에

"국내선 꿈 못꿔...해외에 기술 파는 수밖에" 벤처들 한탄

"기술개발보다 국민동의 먼저" 농진청도 눈치보기 급급

찬반양측, 유리한 정보만 왜곡해 제공...국민혼란 부추겨





경기도 여주 농우바이오 육종연구소 창고에 가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바이러스 저항성 유전자변형(GM) 고추를 만날 수 있다. 오이모자이크 바이러스 유전자를 넣어 면역기능을 강화한 이 고추는 국제특허등록까지 마친 상태. 그러나 거기까지다. GM 고추는 지난 2006년 개발 이후 연구소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창고에 처박혀 있다. GM 작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상용화는 꿈도 못 꾸기 때문이다. 한지학 농우바이오 R&D 본부장은 “사회적 반(反)유전자변형작물(GMO) 정서 속에서는 상용화를 허용한다고 해도 직접 나설 수 있는 간 큰 기업은 우리나라에서 존재할 수 없다”고 한탄하고 “지금은 관련 기술을 해외에 파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는 370여종, 상용화는 전무=29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개발 중인 GM 작물은 모두 14개 170여종, 대학과 연구소에서 진행 중인 것까지 포함하면 54개 작물 370여종에 달하고 연구개발 승인 건수도 1,800여개를 넘어섰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제초제 저항성 GM 잔디(제주대 이효연 박사팀)’ ‘오이모자이크 바이러스 저항성 GM 고추(농우바이오 한지학 박사팀)’ ‘가뭄 저항성 GM 벼’ ‘레스베라트롤 GM 벼’ 등 4개가 안정성 평가와 심사를 끝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개발한 지 10년이 넘었건만 상용화된 GM 작물은 단 하나도 없다. 규제가 우리보다 더 심한 스페인에서 해충 저항성 옥수수를 재배하고 중국 역시 GM 면화와 파파야 등을 상업화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오히려 농우바이오와 바이오벤처 B사처럼 개발을 포기하는 사례만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만간 등장할 가능성도 없다. 농촌진흥청이 이미 ‘상용화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박수철 농진청 GM작물개발사업단장이 “기술개발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소통”이라며 “상업화는 국민적 동의가 이뤄졌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하다”고 설명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시민단체 ‘안전성 검증 안 돼’ vs 학계 ‘20년간 문제없었다’=GM 작물들의 연구소 밖 외출을 막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성’에 대한 불신이다. 2015년 쌀을 GMO로 상용화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농민과 시민단체들은 농진청 앞에서 쌀을 불태우며 ‘GM 벼 상용화 반대’를 외쳤다. 유전자가 바뀐 작물은 기존 작물과 전혀 다른 존재이고 따라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완전히 검증되기 전까지 상용화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주식인 쌀을 GMO화한다는 소식에 국민들의 불안감도 높아졌다. 오세영 GMO반대전국행동 상임집행위원장은 “3년 전까지만 해도 GMO에 대해 국민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GM 벼 상용화 논란이 일면서 갑자기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에서 실시한 국민인식조사에서 GM 작물 개발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답한 응답자는 고작 7.8%에 불과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학계와 산업계는 곡물 자급률이 23.8%에 불과한 우리나라가 GMO 없이 미래 식량 안보를 장담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지구 온난화와 가뭄·냉해로 생산량이 매년 감소해 오는 2050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현재보다 식량을 70% 증산해야 하는데 우리만 손을 놓고 있다가는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전성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은 “지금까지 수억마리의 가축들이 유전자가 변형된 곡물을 사료로 먹었고 미국 국민이 그 고기를 20년이나 섭취했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 얼마나 더 증거를 대야 안전하다고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5월에는 미국 과학한림원(NAS)이 20명의 연구진을 동원해 900여건의 보고서와 연구자료를 분석한 후 “유전자변형 농산물이 안전하고 암 등 기타 질병 유발과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놓기도 했다.

◇아전인수 해석 갈등만 키워=편향된 정보도 국민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중국 헤이룽장성 정부는 지난해 말 5년간 GM 옥수수와 벼·콩의 재배와 유통·가공 등을 전면 금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유전자변형 기술 보급을 강조했다는 내용만 전할 뿐 헤이룽장성 소식에는 입을 닫고 있다. 유전자변형 작물 재배 국가가 28개국에 달하고 최근 20년간 재배면적도 100배나 증가해 약 2억8,000만㏊에 달한다는 국제농업생명공학정보센터(ISAAA) 수치는 강조하면서도 스페인 등 유럽 5개국의 GM 옥수수 재배면적이 줄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얘기가 없다.

시민단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유럽연합(EU) 17개국이 GMO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각하면서 베트남과 방글라데시 등이 GM 옥수수 등을 재배하고 인도가 GM 면화 세계 1위 국가라는 점은 소개하지 않는다. 일본의 실험용 GM 벼 ‘니폰배어(Nipponbare)’를 심었더니 메탄 발생량이 10% 줄었다는 2015년 스웨덴 대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도 국민들은 모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혼란은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편향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양쪽이 보다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탐사기획팀= 송영규 선임기자 강동효·서일범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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