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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함 야마토의 최후와 그 유령

거함 야마토의 최후와 그 유령

“300척이 넘는 미국 함대와 싸우기 위해 야마토는 일본 최후의 함대로써 전장을 향해 나아갔다/ 편도분만의 연료를 채운 출격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한 결사의 출격이었다/ 미국 함대에서 출격한 1,000기를 넘는 함재기의 공격에 지상 최대의 전함은 커다란 폭염을 일으키며 침몰했다/ 야마토의 운명은 바닷속에 잠들 수밖에 없었다. 하늘을 날지 않는 한.”

1977년 개봉된 극장용 만화영화 ‘우주전함 야마토’의 시작부 해설이다. 영화의 배경은 2199년. 외계인의 침공으로 지구는 방사능에 오염돼 멸망 위기를 맞았다. 지구인들은 착한 외계인의 도움으로 최첨단 기술을 전수받고 일본의 침몰 전함 아마토을 건져내 광속엔진과 첨단 병기를 장착한 우주 전함으로 개조한다. 돌아올 수 없는 분량의 연료를 실은 우주전함 야마토는 우주를 향해 항진한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한 야마토는 마침내 지구를 구한다. 영화 내용이 낯설지 않다. 한국에서도 TV 드라마로 방영됐기 때문이다.

인기리에 방영됐지만 정작 일본 만화영화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주전함 태극호’, 또는 ‘우주전함 V’라는 이름으로 전파를 탔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은 또 있다. 정말로 일본 전함 야마토가 결사의 출격을 감행했을까. 맞다. 전함 야마토는 패전 위기가 짙어진 일본의 마지막 발악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일본 영화 ‘우주전함 야마토’에는 사실과 다른 대목이 많다. 300척이 넘는 미국 함대와 맞섰다는 점부터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전함 야마토와 경순향함·구축함 8척으로 구성된 일본 함대가 맞닥뜨린 미 해군 58전대는 분명 전력 우위를 갖고 있었다. 정규 항공모함 7척과 경항공모함 4척에 적재 함재기 820대, 전함 6척과 순양함 11척, 구축함 30척 등으로 구성돼 막강한 전력을 뽐냈다. 그래도 300척은 아니다. 야마토가 편도 분 연료만 채웠다는 점도 과장이다. 야마토는 일본 본토와 작전 지역인 오키나와를 수차례 왕복할 연료를 갖고 있었다. 야마토 함대를 궤멸시킨 미군의 함재기도 1,000대 이상이 아니라 386대였다. ‘강인한 전함 야마토의 분전’을 강조하려고 미 해군의 전력까지 뻥튀기한 것으로 보인다.

야마토가 지상 최대의 전함이었다는 사실 자체는 맞다. 만재 배수량이 7만2,809t에 달했으니까. 함재기 100대를 탑재한 미 해군의 정규항모 요크타운급(2만5,900t)보다 세배 이상이었다. 미 해군의 최신 전함 아이오아급(5만3,000t)보다도 더 나갔다. 3연장 3개 포탑에 탑재된 주포 구경 역시 460㎜로 미 해군의 최대구경 406 ㎜보다 컸다. 하지만 길이는 263m로 아이오아급의 270m보다 짧았다. 전반적인 성능도 떨어졌다. 아이오아급의 최대 속도가 시속 32노트였던 반면 야마토는 27노트. 엔진 출력도 15만3,553마력으로 아이오아급의 21만2,000마력 보다 약했다. 항속거리도 훨씬 짧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마토’가 만능의 최강 전함으로 각인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본인의 집단 기억이 원하기 때문이다. 비록 패전했어도 인류 역사상 최강의 전함을 만들고 운영했다는 자부심이 전함 야마토를 전설로 만들고 있다. 정말로 야마토는 지구 최강이었을까. 시대의 조류와 뒤떨어진 구식 사고 방식으로 태어난 괴물이자 애물단지였다. 일본은 국가 예산의 4%를 투입해 3년 동안 야마토를 건조, 1940년 취역시켰다. 미국과 함대 결전을 위해 건조한 비장의 카드였으나 항공모함이 해전의 승패를 결정하는 시대의 조류에 맞지 않았다.

일본은 막대한 자금으로 건조한 야마토를 제대로 써먹을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상대적으로 느리고 둔중해 해상 전력으로 써먹기 어려웠다. 둘째, 일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야마토가 격침되는 경우를 두려워했다. 세 번째, 움직일 때마다 연료 소비가 엄청났다. 결국 야마토는 전장보다도 주로 항구에 정박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야마토의 460㎜ 주포 9문도 취역에서 침몰할 때까지 185발 정도만 사격했을 뿐이다. 미국 경함공모함과 구축함 등이 피격 당했다지만 침몰했다는 전투함은 없다. 포탑 하나의 무제가 2,510t, 포신 길이 21m, 포탄 무게 1.36t, 최대 사거리 42㎞를 자랑하는 주포마저 값비싼 장식이었던 셈이다.

거함 야마토의 최후와 그 유령
결함도 많았다. 해군 현역 장교인 류재학·배준형의 공저 ‘일본 해상자위대, 과거 영광 재현을 꿈꾸는가’에 따르면 거대한 주포 사격시 반동이 심하고 사격통제장치와 레이더 성능도 미국 전함에 비해 현격히 떨어졌다. 특히 야마토는 피탄시 리벳-볼트(rivet-bolt)의 절단으로 해수가 유입되는 치명적인 결점을 갖고 있었다. 피격 당할 때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용접과 리벳을 적절히 섞어야 하는데 야마토는 리벳-볼트를 615만개나 사용, 걸핏하면 침수 사태를 겪었다. 취약한 성능 탓에 안전한 항구에서 머물렀던 야마토는 해군 장병들에게 ‘야마토 호텔’이라는 조롱까지 들었다.

주로 항구에 머물던 야마토는 오키나와 전황이 극히 불리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해군에 싸울 배가 더 이상 없냐’는 일왕 쇼와의 질문을 받고는 행동에 나섰다. 조선 근해로 피신해 후일을 도모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일본 해군은 사지(死地)라는 점을 뻔히 알면서도 오키나와행을 강행했다. 미국은 야마토 함대가 출항하는 시점부터 암호해독을 통해 일본 해군의 움직임을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일본 근해에서는 B-29 전략폭격기를 개조한 장거리 정찰기와 잠수함이 이동을 시시각각으로 탐지해냈다. 미 해군은 잠수함장들에게 야마토가 함재기의 공격권 안에 들어올 때까지 공격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고 기다렸다.

미 해군의 공격은 1945년 4월7일 오후 12시 30분부터 시작됐다.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전투기들이 함교 주변에 촘촘히 배치된 200여문의 각종 대공화기를 기총소사로 두들기고 전폭기들은 폭탄을, 뇌격기들을 어뢰를 날렸다. 모두 2시간 동안 3차례의 폭격으로 어뢰 11발과 대형 폭탄 6발을 맞은 야마토는 2시23분께 대폭발과 함께 선체가 두 동강 나며 바다로 빨려 들어갔다. 일본은 야마토뿐 아니라 경순양함과 구축함 4척을 잃었다. 3,700여 장병들도 죽었다. 미군 피해는 함재기 손실 12대에 전사 11명. 미 해군의 완벽한 승리였다. 태평양 전쟁에서 해전 다운 해전은 사실상 이로써 끝났다.

잊혀졌던 야마토는 유령으로 출몰하고 있다. 정근식 서울대교수, 헬렌 리 연세대 교수 등 4인이 공저한 ‘포위된 평화, 굴절된 전쟁 기억’에 따르면 일본의 재군비와 야마토에 대한 집단기억이 맞물려 돌아간다. 야마토를 소재로 삼은 수많은 영화가 제작되고, 구레시는 지난 2005년부터 통칭 ‘야마토 뮤지엄’으로 불리는 ‘구레시 해사(海事) 역사박물관’을 개설했다. 실물보다 10분의 1 크기의 야마토함을 비롯한 각종 무기가 전시된 야마토 뮤지엄에서는 오늘날 일본의 자동차와 전자, 소재 산업 등이 야마토 건조부터 축적된 기술 덕분이라고 홍보한다.

일본이 영화와 만화, 전시장 등을 통해 전함 야마토를 상기시키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에 대한 기억 때문일까. 원론적으로는 추도 분위기를 수긍할 수 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전쟁에서 숨져간 젊은이들을 추모한다는 데 이웃 나라가 뭐라 할게 아니다. 그러나 아시아 침략에 대한 반성이 없는 추모와 기억, 숭모는 과거의 전철로 되돌아가는 지름길이다. 아베 신조 총리 등장 이후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바뀐 일본의 행태가 심상치 않다. 석 달 만에 서울의 대사관으로 귀임한 일본 대사가 대통령 권한대행에서 통일·외교·국방부 장관을 만나겠단다. 무례하고 오만하다. 통감이나 총독이라고 착각하는 것인지…. 일개 대사의 요구치고는 지나치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일본 정치권 인사들은 청소년기에 ‘우주전함 야마토’로 상징되는 ‘일본 정신의 부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인물이 대부분이다. 전함 야마토에 대한 관심은 자신들의 영광과 아쉬움만 기억하려는 국수주의적 사고에 닿는다.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 일각에서는 수심 345m 해저에 조각난 채로 잠자고 있는 야마토를 인양하자는 논의가 끝없이 나온다. 야마토 인양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어려우나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야마토는 일본인들의 편향 기억 속에서 이미 인양돼 우주 전함처럼 하늘을 날아다닌다. 군국주의 망령의 부활이 두렵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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