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8일 발표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환경 평가’ 대책은 고육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바뀌는 게 없다. 완전 배치가 다소 늦어진다는 점뿐이다. 오히려 주한미군 입장에서 미해결 과제가 풀릴 길도 열렸다. 정부가 ‘절차적 적법성 확보’라는 외형에 ‘사드 배치 기정사실화’라는 복잡한 대책을 택한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이 맞닥뜨린 환경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드 배치에 부정적인 문 대통령의 지지층에 ‘할 만큼 했다’는 명분을 쌓는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다 보니 이른바 ‘투 트랙(two track)’ 대책이 나왔다는 것이다. 투 트랙이란 주한미군에게 이미 제공된 부지에 대해서는 간이평가(소규모환경영양평가) 결과를 적용하고 전체 부지에 대해서는 일반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최소한 10~15개월 걸리는 일반환경영향평가에 따라 사드 배치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물론 일반환경평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누구도 모른다. 국방부 관계자는 ‘평가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와 사드 배치를 철회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사드 배치에 합의한 한미동맹의 결정에는 추호의 변화도 없다”고 답했다. 일반 환경영향평가는 절차적 정당성을 거치는 과정일 뿐 바뀌는 것은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속도가 붙을 가능성도 있다. 이미 적합하다고 결론이 나온 소규모환경영향평가에 따라 기배치된 사드 미사일 발사기 2기의 기지 공사를 실시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성주 골프장에 기습적으로 배치된 발사기 2기를 제대로 운용하려면 콘크리트 지지대와 기지 내 도로 확장, 병영 시설 리모델링, 고압 송전기 공사 등이 필요하지만 주민들의 물리적 저지로 막힌 상태다. 국방부 관계자는 관련 공사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밝혔다.
일반환경영향평가를 피하려고 부지 공여를 1, 2차로 나누는 ‘꼼수’를 동원하고도 ‘부지 추가 공여는 없다’고 강변해온 국방부의 ‘거짓말’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사드 배치가 강행되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도 집권 초기를 이를 심각한 문제로 봤지만 미국과 동맹을 고려해 끝내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일반환경영향평가로 인해 미국과 관계 악화를 우려하지만 기우다. 문 대통령의 방미를 전후해 미국과 이미 합의가 오간 상태다.
미국이 쉽게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 동의한 데는 성주 포대의 완전 배치가 실질적으로 내년 상반기에나 가능했다는 여건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의 사드 미사일 재고 등을 고려할 때 성주포대의 6기 발사대가 48발의 미사일을 채우려면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촛불 시위 등으로 인한 한국의 정권 변화와 사드 정책 변경을 우려해 지난 3월 말 ‘사드 기습 배치’라는 선수를 쳤는데 정부의 이번 대책 발표에 따라 결과적으로 효과를 거뒀다.
남는 과제는 두 가지다. 주민들이 지금처럼 반발할 경우 사드 부지 공사는 불가능하다. 정부가 생각하는 공청회 등으로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중국과의 관계는 더욱 꼬일 것으로 우려된다. 사드도 문제지만 문 대통령 집권 이후 강화되는 한미일 안보 공조에 중국은 경악하고 있다. 외교 부담이 크기에 보수 정권들도 신중하게 접근했던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 강화와 사드 배치를 동일시하는 중국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가 과제로 남았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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