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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대법원이 입법하는 나라

이상훈 산업부 차장





최근 근로기준법 개정안 처리를 둘러싼 진통을 보노라면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성남시 환경미화원이 제기한 휴일근무 할증률을 50%에서 100%로 올려야 한다는 소송)이 4개월도 채 남지 않았음에도 국회는 실랑이만 거듭하고 있어서다. 물이 목까지 찼건만 심각성을 모르는 듯하다.

사실 이 소송의 전원합의체 회부는 이미 지난 2015년 9월 발표됐다. 역산해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까지 입법화가 가능한 시간은 2년6개월이나 된다.

하지만 허송세월한 끝에 국회와 정부는 이제 막다른 코너에 몰려 있다. 개정안 처리가 불발되면 내년 1월 공개변론을 거쳐 4월께 있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따라야 한다. 대법원이 환경미화원의 손을 들어주면 주당 근로시간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고 휴일근무 할증률은 100%로 늘어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사실상 개정안 처리를 대신하게 되는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휴일근무와 연장근무를 구분한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 폐기를 언급한 마당에 대법원이 다른 판결을 내놓는 그림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쯤 되면 근로시간 단축이 결국 통상임금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마치 데자뷔 같다.

통상임금 사태도 같은 메커니즘에서 불거졌다. 사법부는 1990년대 중반부터 정부가 운영해오던 통상임금 산정지침(행정지침)을 흔드는 판결을 연이어 내놓았다.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아는 정부나 입법부가 나서 이를 보완하는 입법을 해야 했지만 외면했다. 그 결과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 문제가 정리됐다. 통상임금의 범위를 기존보다 넓히고 자의적 판단이 끼어들기 쉬운 ‘신의성실원칙’ 적용도 이때 나왔다. 이후 기아차·금호타이어·S&T중공업 등의 사례에서 보듯 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이 갈지자를 그리는 데는 입법으로 통상임금을 명확히 하지 않은 국회와 정부의 책임이 크다. 혹자는 노동 관련법 개정이 헌법 개정보다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고 직무유기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할 일을 제때 안 하면 다른 쪽으로 하중이 쏠린다. 결국 균형이 무너진다. 삼권분립이 요체인 대의 민주주의를 한다는 요즘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대법원이 사실상의 입법을 하는 모양새의 사회가 정상일 수 없다. 대법원도 덤터기를 쓰는 기분일 테다. 국회와 정부가 눈치만 보고 결단을 미루는 사이 기업의 부담만 커지고 있다. 내년 대법원 판결이 나면 모든 기업에 즉시 근로시간 단축이 적용된다. 임금채권 소멸시효가 3년임을 고려하면 휴일근무 할증에 따른 소송도 봇물 터질 듯할 것이다. 가뜩이나 내년에는 시간당 최저임금도 7,530원으로 오른다. 예고된 재앙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다./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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