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16년 이탈리아의 칸나에 평원에서 로마 공화정군과 카르타고군 사이에서 벌어진 ‘칸나에 전투’만큼 군인들을 매료시킨 전투는 없다. 카르타고군을 지휘하던 한니발이 로마군 배치의 약점을 활용해 함정을 팠고, 그 함정에 빠진 로마 병사 약 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2,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 육군사관학교에서 칸나에 전투는 최고의 전술로 가르치고 있다.
신작 ‘세상을 뒤흔든 전투의 역사’는 칸나에 전투를 포함해 역사상 기념비적인 전투 25장면을 꼽고 각 전투가 일어난 원인, 시대적 배경, 그 영향까지 함께 정리했다. 특히 심도 있는 고증으로 그려낸 50여 컷의 진형도를 첨부해 글과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전투의 양상이 복잡하기로 유명한 자마 전투, 일리파 전투나 동부전선의 바르바로사 작전 등의 상세한 전쟁 상황을 그림으로 함께 수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장에서는 기존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동부전선에 집중해 독일과 소련 사이 전쟁의 진상을 파헤쳤다.
저자는 전문지식과 교양지식을 적절히 배분하여 역사에 조예가 깊은 독자는 물론 배경지식이 거의 없는 독자라도 쉽게 읽을 수 있게 구성했다. 인물에 관한 묘사도 재밌다. 그간 전쟁사에서는 주요한 역할을 한 걸출한 장군이나 위대한 정치가, 막강한 권력을 지닌 왕만을 주목했다. 반면 이 책은 일개 병졸이나 스파이, 상인과 문지기 등 그동안 역사서에서 외면했던 인물을 되살려 그들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했다.
역사도 딱딱한 학문이지만 그중에서도 전쟁사는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복잡한 지명이나 익숙하지 않은 군사용어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사야말로 알면 알수록 재밌다. 무엇보다 전쟁사는 역사를 관통하는 축과 같아서 정치사·경제사·문화사·종교사와 같은 다른 역사영역을 이해하는 튼튼한 배경지식이 될 수 있다. 독일의 역사가 랑케의 표현대로 전쟁사는 마치 역사의 호수와도 같아서 다른 모든 역사의 영역들이 전쟁사로 흘러 들어가고 전쟁사를 통해 흘러나온다. 전쟁사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세계사를 읽어내는 눈을 길러보는 것은 어떨까. 2만2,000원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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