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4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낮추면서도 “급속한 경기둔화 가능성은 크지 않고, 반도체 경기도 하반기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며 애써 긍정적인 면을 강조했다. 그러나 0.1%포인트 차이의 속을 들여다보면 투자와 고용이 눈에 띄게 악화했고, 수요가 약하니 물가마저 주저앉은 형국이다. 그나마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불어난 것도 국제 유가 하락이라는 ‘운’이 따라줘서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출 둔화와 대외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한은이나 정부 성장 전망은 너무 낙관적”이라고 평가했다.
한은은 올해 우리 경제를 확장 재정과 소비·수출이 이끌어가는 가운데 건설투자 감소세가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 이전지출 확대와 주택가격 안정 등이 가계 소비 여력을 높이지만 소득이 더디게 늘며 소비 증가율은 지난해 2.8%보다 낮은 2.6%로 추정했다.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투자다. 건설투자는 주거용 건물을 중심으로 감소세가 이어지면서 지난해보다 -3.2% 뒷걸음질칠 것으로 추정됐다. 앞서 지난해 10월 전망치(-2.5%)보다 0.7%포인트나 더 후퇴했다. 설비투자 역시 종전 전망보다 0.5%포인트 낮은 2.0%로 예상했다. 정보기술(IT) 부문 투자가 상반기까지 조정을 받다 하반기 이후 회복할 것으로 전망됐다.
투자가 부진하니 고용에 대한 기대치도 낮아졌다. 정부의 일자리·소득지원 정책과 외국인 관광객 수 회복으로 취업자수 증가폭은 지난해 10만명보다는 많은 14만명대를 예상했는데, 석 달 전(16만명)보다 2만명이나 적고 1년전 29만명의 절반 수준이다. 이 총재는 국민소득 3만달러 돌파를 체감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로 고용을 꼽았는데, 여전히 실제와 지표가 따로 노는 현상이 이어지는 셈이다.
예상보다 부진한 투자와 고용은 수요를 잠재우며 물가 기대 수준을 끌어내렸다. 여기에 국제유가 하락까지 더해지며 한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로 1.4%를 제시했다. 석 달 전(1.7%)보다 0.3%포인트나 낮고, 물가안정목표(2.0%)과도 한참 뒤진다. 근원인플레이션율(식료품·에너지 제외지수)도 올해 1.4%로 추정됐다.
이번 전망치에서 유일하게 나아진 부분은 경상수지 흑자규모다. 620억달러에서 690억달러로 70억달러나 증가했다. 이마저도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다. 한은 관계자는 “국제 유가 전망을 기존 배럴당 76달러에서 64달러로 내리면서 자동으로 상품수지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불안요인이 모여 경제성장률과 물가 전망을 낮췄고, 금리를 올릴 명분은 찾기 어려워지면서 이날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는 만장일치로 현행 기준금리 1.75% 동결을 결정했다. 이 총재는 “통화 완화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며 일부 시장에서 흘러나오는 금리 인하 전망에는 단호하게 “논할 단계는 아니다”고 역설했다. 그는 다만 “앞으로 성장과 물가의 흐름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완화 정도의 추가 조정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며 금리 인상 여지는 남겼다. 미국이 금리를 한 번이라도 올릴 경우 한국과 미국간 금리차가 1%포인트까지 벌어져 자본유출 우려감이 커질 수 있다는 점과 여전히 세계적인 수준의 가계부채에 대한 걱정을 담아낸 것으로 풀이된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