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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이곳-'늑대소년' 물영아리 오름] 700만 관객의 가슴 적신 송중기·박보영의 러브스토리

제주 서귀포 남원읍에 자리한 물영아리 오름

철수와 순이가 들판 가로지르며 뛰어놀던 곳

30분만 산책로 따라 오르면 분화구 같은 습지

영화 속 분위기 옮겨온 듯 신비한 풍경에 취해

영화 ‘늑대소년’의 스틸 컷.




대중영화는 이름 그대로 대중의 판타지를 제대로 자극할 때 흥행에 성공한다. 관객의 환상을 대리만족시키는 영화의 기능을 앞장서서 수행하는 것은 물론 배우들이다. 대중영화의 서사는 언제나 관객들이 잘난 외모, 멋진 몸매를 지닌 주인공들에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구성된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백마 탄 왕자가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고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계속 만들어지는 것은, 이것이 영화의 기능을 대변하는 원형과도 같은 서사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개봉한 ‘늑대소년’도 대중의 판타지를 스크린에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청춘스타들과 동화 같은 러브스토리를 영리하게 결합한 덕분에 700만 관객의 가슴을 울릴 수 있었다. 여성 관객들은 꽃미남 송중기를 보면서 “저런 외모라면 ‘늑대소년’이라도 괜찮다”며 무장해제됐다. 남성 관객들은 늑대소년을 보듬어 안는 박보영을 보면서 그녀를 ‘국민 여동생’으로 지켜주고 싶다는 보호본능을 느꼈다.

물영아리 오름에 시원하게 펼쳐진 초원.


‘늑대소년’의 촬영지 중에서는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에 자리한 물영아리 오름이 가볼 만하다. 순이(박보영)와 늑대소년 철수(송중기)가 동네 아이들과 공을 차며 뛰어놀던 장면을 찍은 곳으로 제주의 수많은 오름 중에서도 특별한 매력을 품은 관광명소다. 활엽수가 내뿜는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30분 정도 천천히 걸으면 둘레 1㎞, 깊이 40m가량의 습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산 정상에 분화구처럼 생긴 습지가 있다는 것에 놀라고 판타지 멜로를 표방한 ‘늑대소년’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온 듯 신비하고 몽환적인 풍경에 한 번 더 놀란다. 습지 식물을 비롯해 양서류·파충류 등 다양한 생명체를 품은 물영아리 오름의 습지는 그 생태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지난 2007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다.

‘늑대소년’은 순박한 동화의 탈을 썼지만 그 이면에는 나와 다른 남을 향한 편견을 깨고 타자를 껴안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담겨 있다. 삐죽삐죽한 머리에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소년은 한적한 시골 마을의 평화를 깨는 침입자다. 구청에서 소년을 돌봐줄 시설을 마련할 때까지만 함께 지내자는 엄마의 제안에 순이는 입이 툭 튀어나온다. 맹수들이 우글대는 정글에 있으면 딱 어울릴 법한 외모에 혀를 끌끌 차고, 음식만 보면 게걸스럽게 손으로 먹어치우는 모습에 혀를 내두른다.



물영아리 오름 정상에 있는 습지. /사진제공=제주관광공사


그랬던 순이가 어느 날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시원하게 펼쳐진 오름 한복판에 철수를 불러 세운다. 조련사라도 된 듯 순이는 “먹어!” “기다려!”라는 구령과 함께 두툼한 감자를 내밀었다 뺐다를 반복한다. 처음에는 제멋대로 달려들기만 하던 철수도 금세 말을 깨우치고 소녀의 구령에 반응한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만나 차이를 극복하고 교감하는 순간이다. 마음의 문을 열어젖힌 순이는 이제 소년을 위해 ‘가나다라…’ 글자를 가르쳐주며 한층 적극적인 소통을 꾀한다.

풋사랑의 설렘이 스민 둘의 교감은 그러나 오래가지 못한다. 순이를 아내로 맞고 싶어 하는 지태(유연석)가 무리하게 음모를 꾸밀 때마다 늑대로 변신한 철수는 포악한 본성을 드러낸다. 참다못한 군인과 경찰, 마을 사람들은 총을 들고 소년을 쫓는다. 이들을 겨우 따돌린 소년은 물영아리 오름에 자리한 산책로에서 순이와 작별한다. 소년은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데 매정한 순이는 “빨리 도망가라”며 등을 떠민다. 가파르지 않은 경사 위에 잘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뒤로하고 소년과 순이는 헤어져야만 했구나’ 싶어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 온다.

영화 ‘늑대소년’의 스틸 컷.


액자 형식으로 구성된 영화의 문을 여닫는 것은 백발의 할머니가 된 순이의 이야기다. 에필로그에서 순이는 소녀 시절 가족과 함께 살았던 집 인근에 리조트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시골로 향한다. 하얗게 세어버린 자신의 머리카락처럼 색이 바랜 시골집에서 하룻밤을 묵은 그날 순이는 47년 만에 소년과 마주한다. 한쪽은 할머니가 됐는데 비상한 초능력을 지닌 소년은 옛날 그 모습 그대로다. 가만히 있어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찰나, 소년은 울고 싶은 사람의 뺨을 때리듯 47년 전 미처 전하지 못했던 쪽지를 꺼내 보여준다. 누렇게 변한 쪽지에는 ‘기다려 나 다시 올게’라는 글귀가 또박또박 적혀 있다.

이것은 순이의 환상일까, 아니면 하늘이 선물한 기적 같은 현실일까. 전자라면 우리는 순이의 가슴 사무치는 상상을 본 것이요, 후자라면 반세기를 참고 기다린 끝에 소망을 이룬 소년의 벅찬 감동을 함께 나눈 셈이 된다. 어느 쪽이든 눈물 나기는 마찬가지다. /글·사진(서귀포)=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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