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황제급’ 대접을 받은 뒤 21일 오후 밝은 표정으로 평양을 떠났다. 시 주석이 가는 곳마다 그를 환영하는 수십만 군중이 몰려드는 등 중국 최고지도자에 대한 북한의 예우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시 주석은 전날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김일성·김정은 부자의 시신이 안치된 북한의 성역인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 김 위원장과 북한 최고지도부의 경의를 받았다. 시 주석은 김정은 정권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노동당 청사를 배경으로 북한의 핵심인사들인 노동당 정치국 성원들과 사진촬영을 한 첫 외국 정상이 됐다.
극진한 대접을 받은 시 주석은 김 위원장의 숨통을 틔워줄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며 비핵화 협상의 판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를 워싱턴에 보냈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과의 경제 교류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루 대변인은 “시 주석이 김 위원장과 회담에서 전략적 소통의 강화와 실무 영역 협력 심화 등 양국관계의 발전을 위한 중요한 부분을 제시했다”며 “시 주석이 경제 건설 발전을 위한 교류 강화와 우호 교류 심화도 제안했다”고 말했다.
경제 교류 강화를 위한 형식과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은 쌀과 비료 등 식량지원과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위반 사항이 아닌 북한의 관광산업 진흥을 적극 도울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기사
다만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북 지원이 장기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라는 근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북한을 비핵화 협상장으로 나오게 만든 원인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제재에 있었던 만큼 북중 경제 교류 강화는 북한의 협상 동인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간 입장 차가 큰 상황에서 북한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경제 문제가 해결되면 미국의 ‘빅딜’을 수용할 이유가 더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경펠로인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도 “결국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지원은 북한의 대미 입장을 강경하게 만들기 때문에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영향이 조금 더 클 가능성 있다”고 전망했다.
중재자인 중국과 중재 대상인 미국의 관계도 비핵화 협상에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서는 미중 정상이 이달 말 열릴 오사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북핵 해법 및 무역전쟁 등 양국 사이의 현안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무역분쟁으로 촉발된 갈등의 이면에는 동북아시아에 대한 미중 패권전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시 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모두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중국이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한국의 입지도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역대 중국 최고지도자의 방북 전례를 보면 시 주석은 대북 지원을 통해 김정은 정권의 잠재적 위험요인인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가능성이 높다. 실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중 접경지역에는 북중 관계 증진에 따른 경제교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과의 관광사업 등으로 김 위원장이 통치자금인 외화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면 남측과의 교류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진다.
우리 정부는 북중정상회담의 결과가 미칠 파장을 주시하면서 북한에 남북 대화 재개를 촉구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반도경제통일교류특별위원회 초청 긴급좌담회에서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4차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과 관련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고 필요성이 있으며 바람직하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