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행동주의 펀드들이 기업거버넌스협회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단체행동에 나선다. 자본시장에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 원칙)가 본격 도입되고 주주 행동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영향이다. 다만 경기둔화와 사실상 ‘시계 제로’의 비상경영을 하고 있는 주요 기업들에 경영 돌발변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사단법인 형태의 기업거버넌스협회가 최근 발기인대회를 마치고 다음달 설립될 예정이다. 한진그룹을 상대로 주주 행동에 나선 한진칼(180640)의 2대 주주 KCGI를 비롯해 KB자산운용·밸류파트너스·VIP자산운용·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등 사모펀드와 운용사 20여곳이 참여한다. 법조계와 정치계, 학자·교수 등 뜻이 맞는 전문가집단도 가세할 계획이다. 다음주께 회장을 선출해 지도부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법인 설립에 속도를 낸다.
기업거버넌스협회는 적극적인 주주환원제도와 정책들을 수립하는 한편 국내 기업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회와 기업,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을 포괄해 장기적인 발전방향을 추구한다. 협회에 참여하는 한 펀드 관계자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가 윈윈할 수 있도록 불합리한 요건을 해소하는 등 프렌들리한 주주 행동주의를 표방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자본시장에서는 스튜어드십코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 가치 제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월 밸류파트너스와 VIP자산운용 등은 미국 투자회사인 돌턴인베스트먼트와 연대해 현대홈쇼핑의 주총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KB자산운용도 에스엠(041510)·골프존(215000)·컴투스(078340)·광주신세계(037710)·효성티앤씨(298020) 등에 주주 서한을 보내 지배구조 개선과 적극적인 주주 환원을 요구해 수익을 올린 바 있다.
이번 협회 결성 역시 한국 기업들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해보자는 목소리에서 시작됐다. 일종의 이해관계자 집단처럼 여겨지던 소액주주 운동을 확대해 가치중립적으로 국내 기업들의 소유·경영구조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다. 아시아지배구조협회(ACGA)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순위는 12개국 가운데 9위로 아시아 국가 중 하위권이다.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나라는 중국과 필리핀·인도네시아 등 3곳뿐이다. 특히 한국은 상장사 부문(11위), 지배구조제도 부문(10위)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
업계에서는 이미 자본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공단이 지난해 7월부터 본격적인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통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서는 상황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목소리까지 더해져 기업경영의 새로운 제약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올해 1~4월 주총에서 반대의결권을 행사한 비율은 20.4%로 지난해(18.8%)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다. 반면 기업경영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올해 3·4분기까지 국내 10대 상장사의 누적 영업이익 잠정(추정)치는 47조4,28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1조190억원) 대비 47.9% 급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의 각종 주장이 기업의 미래 가치와 꼭 일치 하지는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주요 기업에 새로운 고민거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김민경기자 mk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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