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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 역사가 된 역사 '화랑대역'…그림이 된 동네 '백사마을'

['응답하라 1970'…그때 그시절! 노원구]

역사가 된 역사 '화랑대역'

2010년 이후 기차 서지 않는 간이역

근현대사의 추억 고스란히 남아있어

등록문화재로 지정…역사관 개관도

그림이 된 동네 '백사마을'

중계동 산104번지에 위치한 달동네      

재개발 계획으로 변화 앞두고 있지만

작가들, 사라져가는 풍경 화폭에 담아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 (구)화랑대역.




춘천, 청량리 방면을 표시한 이정표 뒤로 화랑대역이 있다.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세월을 따라가지 못한 채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낡고 조그마한 역을 보고 있으면 외로운 심상과 함께 역이 품고 있는 역사가 궁금해진다. 마차에서 기차로 교통수단이 바뀌고 자가용이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았을 시절, 열차 소리 끊이지 않던 간이역은 설렘이나 아쉬움을 품은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을 것이다. 더 이상 철도역으로 기능하지는 못하지만 몇몇 간이역들은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되기도 한다. 지난 2006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구 화랑대역’도 그중 하나다.

성북·퇴계원 방면을 표시한 이정표 뒤로 무궁화호 열차가 세워져 있다. 안으로 들어가 열차 객실 내도 관람할 수 있다.


서울 노원구 화랑대 지하철역에서 내려 도보로 7분 거리에는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 구 화랑대역이 있다. 에메랄드빛 지붕에 벽은 살구색으로 칠해진 목조건물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간이역의 아련한 느낌을 잘 담고 있다. 책을 얹어놓은 듯한 지붕은 보통의 간이역과 다르게 비대칭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역 앞에 남아 있는 철도에는 성북·퇴계원 방면을 표시한 표지판이 지금이라도 기차가 들어올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경춘선숲길에 전시된 미카5-56 증기기관차를 여행객이 살펴보고 있다.


경춘선숲길에 전시된 체코 노면전차.


경춘선과 함께 준공된 역은 시대의 아픔과 향수를 함께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조선의 민간 자본으로 개통된 첫 철도로 유명한 경춘선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일제의 군수, 산업 자재를 쉽게 나르기 위한 목적이 숨겨져 있다. 일제 침탈의 상처가 스민 역사(驛舍) 주변에는 세월이 흐르며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육군사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캠퍼스 등이 세워졌고, 해방 이후에는 수많은 젊은이가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방문한 곳으로 애용됐다. 1970~198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경춘선과 관련된 추억 하나쯤은 가슴 한편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1939년 개통 당시 근처 문정왕후 능의 이름을 따 ‘태릉 정류소’로 출발한 역은 1958년 육군사관학교의 별칭인 ‘화랑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70여년 동안 사람과 추억을 실어 나르던 청춘열차도 ‘비둘기호’ ‘통일호’ ‘무궁화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철도를 달렸다. 2010년 경춘선 복선 전철화 사업이 완료되며 1일 7회 정차하던 무궁화호도 역을 찾지 않게 되자 화랑대역은 그간 역사를 뒤로한 채 무대에서 물러나는 듯했다.

구 화랑대역 대합실.




화랑대역 역무실 안에 전시된 열차 승차권.


하지만 역은 2017년 ‘경춘선 숲길 재생 사업’을 통해 재단장을 마치고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장소로 다시 태어났다. 부모 손을 잡고 역을 찾은 아이들은 철길 산책로에서 철길 침목을 징검다리 건너듯 뛰어다니고 새로 들어온 무궁화호 객차 6량, 노면전차 1량, 협궤 증기 기관차 등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역사 내부도 역사관으로 개관했다. 대합실에 들어서면 경춘선과 화랑대역의 역사가 요약돼 있고 역무실 안에서는 경춘선과 화랑대역의 추억이 서린 승차권들이 전시돼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역장 유니폼과 함께 1970~1980년대 교복이 걸려 있어 추억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중계동 백사마을 전경.


화랑대역과 함께 경춘선 숲길을 모두 둘러본 후 추억에 더 잠기고 싶다면 중계동 백사마을로 발걸음을 돌려보자. 오래된 집들이 촘촘하게 모여 있는 이곳은 중계동 산104번지에 위치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1971년 마을이 그린벨트로 묶이며 1960~1970년대 서민들의 주거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중계동 백사마을 벽화.


백사마을은 1960년대 후반 도심 개발로 밀려난 청계천 철거민들이 모여 형성된 마을이다. 개포동 구룡마을, 홍제동 개미마을 등과 함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렸지만 5월 재개발 정비계획안이 통과되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서울시는 1960~1970년대 주거생활상을 보전하는 형태의 저층 임대주택을 지을 계획이다.

중계동 백사마을에 있는 서울연탄은행 창고.


백사마을에 들어서면 1980~1990년대 마을의 전성기 시절을 나타내는 시장골목길이 나타난다. 골목길 안에는 서민들의 추위를 녹여주는 서울연탄은행과 함께 자원봉사자들이 마을의 역사를 그린 다채로운 벽화가 있다. 과거 식수로 사용된 10번 우물을 지나 중계마을복지회관을 찾으면 2017년 문을 연 ‘104마을 예술창작소’를 발견할 수 있다. 이곳에 입주한 10여명의 작가들은 마을이 재개발되기 전까지 머물며 백사마을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진행한다. 지난달 8일부터 중계마을복지회관에서 개최된 ‘104마을 예술창작소 입주작가전’을 통해 그들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글·사진=한민구기자 1mi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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