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김성현 칼럼] 정책 조급증 떨치고 멀리 보자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몇달새 쏟아진 부동산 정책이나

토론도 없이 밀어붙인 탈원전 등

조급증은 새 적폐의 불씨 될수도

새해엔 예측 가능한 모습 보이길





경제학에는 ‘지연 반응’과 ‘과잉 반응’이라는 용어가 있다. 지연 반응이란 경제정책이나 경제환경의 변화가 당장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일정 시간이 지나야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주체나 시장이 경제정책 변화를 인지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시장가격이 여러 제약조건으로 인해 경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정책 변화가 직접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시차를 두고 여러 다른 경로를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과잉 반응이란 경제정책이 바뀌는 순간 시장이 장기 균형보다 더 지나치게 반응함을 의미한다. 특히 정부 정책이 예고 없이 갑자기 크게 바뀌는 경우 경제주체는 평소 합리적으로 내리던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비합리적으로 과잉 대응하게 된다. 이 두 가지 현상은 올바른 경제정책의 수립과 실천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정책의 방향성이 옳다고 해도 실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 엄청난 경제정책들이 시행됐다. 그것도 단기간에 예고 없이 아주 빠른 속도로. 경제나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책들이 그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계속된다. 부동산·교육·금융 등 서로 연관된 정책들을 경쟁하듯 마구잡이로 밀어붙인다. 마치 정책입안자들이 단체로 조급증을 앓고 있는 듯하다. 이들에게 지연 반응이나 과잉 반응을 생각하는 것은 사치일까.

부동산정책을 예로 들어보자. 12·16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정책까지 현 정부 들어 18번의 부동산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분양가상한제와 보유세 인상을 시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5억원 이상 주택에 대한 대출금지라는 초유의 정책이 나왔다. 정책의 효과가 제대로 파악되기도 전에 단순히 몇 달 지켜본 뒤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정책을 꺼내는 셈이다. 부동산시장은 뉴스나 정책 변화에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주식시장이 아니다. 이사 철이나 개학을 맞아 이사하려는 사람들로 인한 실수요나 주택을 처분해 나오는 공급이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주택수요자를 전부 투기꾼으로 취급하지 않고서야 몇 달이 멀다 하고 새로운 정책을 낼 수는 없다. 정책 조급증의 전형적인 예다.



교육정책은 또 다른 예다. 온 나라를 둘로 쪼개놓았던 조국 사태를 빌미로 자사고·국제고·외고 폐지와 정시확대라는 교육정책의 근간을 뒤흔드는 정책이 너무나도 쉽게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토론은 한 번도 없었다. 단지 정책결정권자의 말 한마디만 있었을 뿐이다. 이렇게 정책이 입안된다면 지난 수십년간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올바른 교육정책을 위해 연구하고 고민한 교육학자들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탈원전정책은 이러한 논의의 정점에 서 있다. 한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전력수급과 에너지 정책의 근간을 뒤흔드는 정책을 대통령 공약이라는 이유로 그 파급효과를 제대로 따지지도 않고 안정성과 수지 타당성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결과도 무시한 채 단순한 심의만 걸쳐 시행했다. 경제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제대로 검증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붙인 정책은 정권이 바뀌면 또다시 대규모 적폐 사건이 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것들 외에 경제·정치·외교 할 것 없이 새로운 정책들이 계속해서 시행되고 있다.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는 경제나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지연 반응과 과잉 반응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책을 시행한 후 단 몇 주, 몇 달 지켜보고 정책의 효과를 판단할 수는 없다. 제발 새해에는 정부와 국회가 정책수립에 대한 조급증을 떨쳐버리고 천천히 멀리 내다보는 정책들을 입안하고 시행하기 바란다. 정책을 바꾸기는 쉬워도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경제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도 크고 이를 되돌리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