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잘 듣는 치료 후보물질 3개를 최근 새로 찾아내 곧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에 공개할 것입니다. 하지만 의사는 임상에 앞서 동물실험을 원하는데 여건상 5월 말 이후 영장류 실험이 가능한 실정이라 고민입니다.”
이미혜(사진·60) 한국화학연구원 원장은 지난 10일 서울경제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코로나 전시 상황에서 정부 내 보건과 과학 분야는 물론 의사와 제약사 등을 망라한 코로나19 특별위원회(가칭)를 신설하는 등 연구개발(R&D)부터 임상까지 컨트롤타워를 정비했으면 한다”며 이간이 밝혔다. 그는 출연연 8곳과 위탁연구기관 10여곳이 뭉친 신종바이러스융합연구단(CEVI)을 주관하는 화학연을 작년 11월부터 이끌고 있다.
/대담·정리=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이날 5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이 원장은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한국이 국제적인 롤모델로 떠오른 것에 자부심을 나타내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보건복지부가 적극 대응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우리는 안정세를 찾았지만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증가세를 감안해 정부가 효과적인 치료약물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백신도 코로나19가 풍토병으로 전환될 것을 대비해 투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세계적으로 180만명 이상 확진자가 나와 12만명 가까이 숨진 상황에서 2009년 신종플루 때 기존 약물을 재창출한 타미플루처럼 치료제를 빨리 찾고 백신 개발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포실험을 통해 기존 약물 1,500여종 중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무력화하는 새로운 후보물질 3개를 찾아 금주 중 신속히 특허출원 하고 바이오아카이브에 띄우겠다고 처음 털어놨다. 이 물질은 하나의 계열에서 화합물의 구조가 비슷한 것으로 약효가 렘데시비르(에볼라 치료제) 정도이고 독성은 없는데 기존 바이러스 치료제는 아니라고 했다. 이 원장은 “이 물질의 임상을 의사에게 의뢰하니 동물실험을 먼저 요구했다”며 “영장류 실험은 당장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급한대로 국내외 의사들이 스스로 처방하는 관찰임상을 할 수 있도록 바이오아카이브에 공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물실험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외부위원회 심의를 통해 통해 인간과 유전자가 93% 일치하는 영장류를 대상으로 하게 된다. 이와 관련, 생명연의 한 관계자는 “올 연말까지 매달 3종의 약물을 가지고 영장류를 대상으로 약효와 부작용에 관한 시험을 하는데, 최근 화학연 관계자가 참여한 가운데 이뤄진 외부위원회에서 국내 제약사와 교수가 창업한 기업 등 3곳이 신청한 후보물질을 5월에 먼저 시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생명연에 따르면 3종의 약물을 실험하려면 영장류가 총 18마리(마리당 2,500만~5,000만원)가 필요하다.
이 원장은 “화학연이나 생명연이나 바이러스 연구자들이 야근과 주말근무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며 “다만 새로운 치료 후보물질 3종을 실험하려면 비싼 영장류도 많이 필요하고 시간도 촉박해 바로 환자 임상이 이뤄지면 좋은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이어 “세포실험이긴 하지만 기존 허가 약물 중 효과가 나오는 범위에서 독성이 안나오는 약물을 발굴한 것이라 영장류를 건너 뛰고 바로 환자에게 임상을 했으면 했다”고 덧붙였다. 물론 몸하고 세포하고 환경이 달라 임상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의견도 타당하지만 지금은 코로나 전시 상황 아니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질병관리본부·식품의약품안전처·각 병원·의사협회·제약사 등을 상대하는 보건복지부와 과학술정보통신부 등을 망라한 코로나19 특위를 신설하면 R&D에서 임상까지 좀 더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 원장은 “정부에서 코로나 전시상황을 맞아 보건과 과학 분야를 통틀어 좀 더 유기적으로 공조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계에서는 현재 과기정통부가 관할하는 출연연 중에서도 CEVI에 생명연이 참여하지 않고 있는 점을 들어 동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016년 CEVI 주관기관(2022년까지 총 570억원 연구비 지원)으로 화학연이 선정된 뒤 생명연이 컨소시엄에 불참한 과정은 이해되나 지금은 전시상황이라 합류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국민들은 치료제 약물 재창출이 ‘너무 더딘 것 아니냐’고 보실 것”이라며 “치료제나 백신 모두 후보물질을 발굴하거나 개발한 뒤 환자에 적용하기까지 의료계와 과학계의 협력이 좀 더 이뤄져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이어 “저희도 과기정통부 산하지만 연구는 복지부 산하기관이랑 많이 할 때도 있다. 임상의들도 과학계의 연구결과를 적용할 때 여러 규제가 적용돼 같이 풀어야 한다”며 “특위가 가동돼 정부 부처들과 출연연, 감염내과협회 등 의사, 바이러스학 교수, 제약사 등 바이오협회 대표들이 같이 협의하면 문제를 좀 더 효과적으로 풀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출연연은 각 기관별로 역할과 책임(R&R)을 맡아 각자 연구하고 대학 교수들도 저마다 움직이고 있는 상황인데 이제는 좀 더 공유하고 협력하는 큰 틀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연구재단의 경우 대학 등에 R&D 과제비를 지원한 뒤 각 연구자의 성과를 통합분석하게 되면 비상시에 체계적인 지원이 좀 더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 원장은 비감염자의 면역을 위한 백신에 대해서는 “바이러스가 올 여름에 수그러들었다가 가을에 다시 나와 풍토병될 확률도 있어 필요하다”며 “효능은 물론 매우 높은 안전성이 요구돼 예방백신은 통상 10~15년이 필요하고 치료 백신도 아무리 빨라도 1년반은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백신이나 치료제에 관한 소식은 계획 단계나 임상 1상에 관한 것인데 주가 부양책으로 활용하는 것도 적지 않아 화학연 차원에서도 조심하고 있다고도 털어놨다.
앞서 화학연은 지난달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코로나19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무력화하는 능력이 있는 3종의 사스·메르스 중화항체를 발견했다. 스파이크 단백질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포 내 침입시 활용하는 단백질이다. 이 원장은 “현재 2종의 항체를 제작해 코로나19 스파이크 단백질과 결합해 무력화할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날 이 원장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기업들의 R&D 역량 위축을 우려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30명 이상 박사급 연구자를 비롯해 40명을 뽑는다는 채용공고를 냈더니 기업 연구원들이 너무도 많이 지원했다”며 “기업이 R&D 투자를 축소하거나 부서를 구조조정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그는 이어 “매년 화학연이 개최하는 서울국제신약포럼도 불투명해지는 등 국제 R&D에도 지장이 적지 않다”면서도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해 바이러스뿐 아니라 기후변화, 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 화학안전 분야의 원천기술 확보와 유망기술 선점을 위한 국제협력을 준비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한편 이 원장은 “코로나 사태로 오히려 서양에서 한국의 대처를 벤치마킹하자는 말이 많이 나와 우리 국민의 자긍심도 높아졌다”며 “다만 사회문제 해결과 미래 성장동력 확충을 위해 과학기술이 중요한데 이번 총선에서 과학계 인사가 별로 없어 아쉽다”고 지적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사진=오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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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연 첫 여성 원장인 그는 1960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6살 때 서울에 올라와 서울대 화학교육과를 졸업하고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서 화학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35년간 화학연에 근무하며 폴리이미드 수지 등 소재를 연구했고 작년 7월 시작된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수출 규제에 맞서 소재 국산화와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해왔다. 화학플랫폼연구본부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매주 신종바이러스융합단 회의를 주재하며 코로나19 약물 재창출을 비롯해 코로나19 대응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