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는 예년에 비해 하늘이 맑은 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에서 산업생산 저하. 재택근무, 이동 감소로 인해 미세먼지 배출이 다소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음식이나 택배 배달이 늘며 플라스틱이나 비닐 사용 역시 증가하고 있다. 커피숍에서도 일회용 컵을 준다. 마스크 사용이 급증한 것도 큰 문제다. 마스크의 부직포는 생수 뚜껑과 같은 폴리프로필렌이라는 플라스틱인데 세계적으로 매월 수백억장이 버려지는 것으로 추산된다. 태워져 미세먼지가 되지 않으면 바다로 흘러가 미세 플라스틱으로 변한다.
더욱이 석유로 플라스틱을 만드는 상황에서 저유가로 인해 신규 제조비에 비해 재활용 산업의 채산성이 악화하고 있다.
코로나19와 저유가 현상이 플라스틱 팬데믹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8년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죽은 향고래에서 일회용 컵, 비닐봉지, 생수병, 슬리퍼 등 무려 6kg의 플라스틱이 나왔는데 이런 일이 빈번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어류와 갑각류를 사람이 먹으면 미세 플라스틱(5㎜ 이하의 합성 고분자화합물)을 흡수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미세 플라스틱이 지하수로도 스며든 지 오래다.
최근에는 과일과 채소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다량 검출됐다. 이탈리아 카타니아대 연구팀이 시칠리아섬 카타니아시 6곳의 상점에서 파는 사과·배·당근·상추·브로콜리·감자를 분석한 결과다. 과일은 사과, 채소는 당근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나왔다. 땅속에서 물과 같이 뿌리에 흡수된 뒤 줄기·잎·열매로 이동한 것이다. 다만 연구팀은 “과일·채소를 통한 미세 플라스틱 섭취는 페트병 생수 섭취를 통한 것보다 양이 적었다”고 안심시켰다. 채소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나왔다면 고기와 유제품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세 플라스틱이나 나노 플라스틱(길이 1μm 이하)이 작물의 수확량을 줄이고 영양가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연구도 나왔다.
미세 플라스틱은 화장품·치약, 해양생물, 생수·맥주, 티백, 동물, 인간 대변, 대기와 눈·비에서도 검출되는 등 생활 곳곳에 침투한 상태다. 네덜란드 플라스틱수프재단 설립자인 마리아 베스테르보스는 “미세 플라스틱이 (암이나 치매 유발 등) 사람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 하루 섭취량 상한선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라스틱은 거의 썩지 않고 재활용도 잘 이뤄지지 않는데 2017년 기준 미국의 폐플라스틱 재활용률은 8.4%에 불과했다. 일부는 소각됐고 대부분은 매립됐다. 중국·인도네시아·베트남·태국·필리핀 등 아시아에서도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을 배출하는데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은 재활용률이 더 낮다. 그나마 환경보호에 적극 나서는 유럽의 플라스틱 재활용률이 30%가량 된다.
물론 미국에서 2018년부터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 있는 화장품이나 개인용품의 판매를 금지하는 등 각국이 플라스틱의 역습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자연에서 분해되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경우에도 아직까지 경제성이 떨어진다. 국내에서는 58도 안팎에서 6개월 내 90% 이상 분해되면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인증하는데 기준이 높아 사용 분야별로 조건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꽃가루로 플라스틱 상용화에 나선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은 백신과 치료제 등에 막대한 자금을 쓰고 있지만 해법이 없는 상태이나 플라스틱 팬데믹은 막을 수 있는 기술은 있지만 경제성 문제 등으로 사태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며 “플라스틱 팬데믹이 감염병처럼 인류에게 최대의 위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코스타스 벨리스 영국 리즈대 교수는 최근 사이언스 논문을 통해 “현 추세라면 오는 2040년까지 13억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누적될 것”이라며 “생산·소비 감축은 물론 생분해성 기술개발, 재활용 가능 제품 설계·포장 개발, 폐기물 수거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유영숙 전 환경부 장관(KIST 책임연구원)은 “편리한 것만 추구하면 미래 세대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는 점을 꼭 염두에 둬야 한다”며 “적극적인 연구개발(R&D)로 플라스틱 해결책을 모색하고 가격 경쟁력을 갖춘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개발해 환경 파괴와 육지와 바다 생태계에 대한 위협을 줄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는 1995년에 쓰레기 종량제, 2013년부터 음식물 쓰레기 분리 배출을 시행했다”며 “플라스틱의 역습에 대처할 정책과 기술개발에 주력해 코로나19 사태에서 롤모델이 된 것처럼 플라스틱 사태에서도 롤모델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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