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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임태환 "정부 일방적 정책에 감정 폭발…진료거부 정당화 될 수는 없어"

임태환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회장

1977년 의료보험제도 도입 후 의료인들 줄곧 정책에서 소외

정원확대·공공의대 현실성 떨어져…'전문가 거리두기' 안돼

의정협의체 통과의례식 곤란, 의사도 막중한 사명감 가져야

임태환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회장이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의료파업 사태는 줄곧 의료인이 정책입안 과정에서 소외된 것에 대한 오랜 감정의 폭발로 봐야 한다”면서도 “의사가 진료 거부를 무기로 싸우는 것은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호재기자




“앞으로는 절대로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전공의(인턴과 레지던트) 등 젊은 의사들의 집단휴진(파업) 사태 와중에 임태환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회장의 고민은 연일 깊었다. 최근 대학병원장들을 비롯한 의료계 원로들과 함께 정세균 국무총리,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해법을 모색해 나름 합의점을 찾기도 했으나 전공의들의 막판 거부로 무산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1일 시작된 전공의·전임의 파업 14일째로 더불어민주당과 대한의사협회의 극적 타결이 이뤄지기 전날인 지난 3일 서초구 서초중앙로의 의학한림원에서 3시간가량 만났을 때도 노심초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6일 이뤄진 추가 인터뷰에서도 “최근의 의료파업 사태는 1977년 본격적인 의료보험제도 도입 이후 줄곧 의료인이 의료 정책 추진에서 정책입안자들로부터 ‘전문가 거리두기’를 당해왔다는 오랜 감정의 폭발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거기에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4대 정책(의대증원, 공공의대 신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진료)을 들고 나와 불을 붙였다고 했다. 물론 의사들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파업 이외에 별다른 투쟁방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진료 거부를 무기로 싸우는 것은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환자와 국민은 의사의 존재 이유 자체이기 때문이죠.” 정부 여당과 의사협회 간 갈등의 불씨가 여전한 상황에서 정부와 의사 모두 되새겨 들을 만한 말이다.

대담: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임 회장은 사회와 정부에서 의사를 품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환자를 볼모로 한 ‘집단이기주의’나 ‘밥그릇 싸움’으로 보지 말아달라는 얘기다. “사회에서 의사의 특권 요소만 보고 욕하고 비아냥거려서 자꾸 의사들을 삐뚤어나가게 하지 않았으면 해요.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은 물론 바이오·의료산업이 국가 발전을 견인하는 시대에 중요한 과학자원 아닙니까.” 아울러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의학전문대학원’ 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아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도 보다 정교하게 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 의사 부족에 따른 의대정원 확대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연간 3,058명인 의대정원을 오는 2022학년도부터 매년 400명씩, 10년간 4,000명을 늘릴 방침이었다. 매년 증원하는 400명 중 300명은 10년간 의무적으로 지방에서 근무하도록 지역 의사 특별전형으로 뽑기로 했다. 전남·경북·대전 등에서 대학과 지자체가 나서 의대 설립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임 회장은 “‘의사를 많이 뽑으면 지방에도 가겠지’라고 하는데 코피 터지게 경쟁해도 서울·수도권에서 할 것”이라며 “지방에서 일하기 좋은 병원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과거 서울아산병원이나 삼성의료원이 생길 때를 예로 들며 훌륭한 시설이 있으면 지방이라고 의사가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은퇴 의사 중 지방행을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 고향을 생각해 내려갈 젊은 의사들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월급을 더 주는 것만으로는 유인책이 안 돼요. 서울의 큰 병원은 의료 사고가 나면 병원이 나서고 진단·치료가 어려운 환자도 동료들과 협진할 수 있는데 지방에서는 모든 책임을 혼자 지게 돼 위험부담이 크죠.” 지방 의사가 들 만한 의료보험 등 복지책을 강구하고 지방 병원의 수가 조정 등 지원책이 우선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현 상황에서는 지역 의사에게 10년간의 의무복무 기간을 두더라도 이후 서울로 올라올 게 뻔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10년도 의대 입학 기준으로 하는 것이라 전문의를 딴 시점으로 보면 얼마 되지도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의사들이 일부 인기과로 몰리는 현실에 대해서는 “국가적으로 필요한 과는 인센티브제로 갈 수밖에 없지만 전체적으로 시장에서 자율 규제가 이뤄질 것”이라며 “과거 환자가 많던 내과·외과·소아과 등에 점점 지원을 하지 않는 것처럼 피부과·성형외과 등도 경쟁이 치열해지면 자연스레 지원이 줄어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점쳤다.



임 회장은 고령화시대 대비와 도농격차 해소를 위해 의대정원 확대가 필요할 경우 기존의 시설이 좋지만 정원이 적은 의대의 정원을 늘리고, 바이오·제약 등 의과학자 양성 차원에서는 일부 과학기술특성화대에 의대를 신설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훌륭한 교수진과 시설이 많은데 의대 입학생은 30~40명인 곳이 많다”며 “울산대(서울아산병원)나 성균관대(삼성의료원) 등의 정원을 늘려주는 것은 괜찮은데 지방 의대 신설은 소위 정치적 이권 다툼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의과학자 증원 추진에 대해서는 “입학 때부터 의과학자를 전제하면 무슨 낙으로 그 넓은 의대 공부를 하며, 소질이 맞을지도 모르고 중간에 마음이 변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했다. 정부가 매년 400명씩 확대하려던 의대정원 중 50명은 의과학자, 나머지 50명은 역학조사관·중증외상의 등으로 키우기로 했으나 처음부터 용도를 정해놓는 게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제 경험상 대개 기초의학을 열심히 하는 경우 훌륭한 의사를 스승으로 만나 (환자를 보는) 임상의보다 기초의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미래 의과학을 발전시키려면 KAIST나 POSTECH에 의대를 신설해 50명 정도씩 정원을 준다면 굉장히 좋은 일입니다. (이공대와의) 협업을 통해 좋은 결과가 날 수 있고 우수한 학생들도 올 것입니다.” 실제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에서는 의과학자와 임상의, 인공지능·영상판독 전문가 등이 융합해 바이오헬스 기술사업화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공공의대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당초 정부는 폐교된 전북 남원의 서남대 의대정원(49명)을 활용해 2024년 현지에 ‘공공보건의료대학’을 설립한다는 계획으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관련 법안이 상정돼 있다. 의대 이외 졸업생이 석박사 과정을 공부한 뒤 역학조사나 감염내과 전문의 자격증을 따 10년간 공공보건의료기관(보건소·지방의료원·국립병원)에 의무복무하게 된다.



그는 “공공의대도 의사 과정을 대충할 수 없고 다른 의사 과정과 똑같이 거쳐야 한다. 면허를 따로 줄 수 없지 않으냐”며 “만약 선발 시 자유경쟁으로 뽑지 않으면 문제가 커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성주 민주당 의원 등이 국회 보건복지위에 제출한 법안에는 ‘시도지사 추천으로 학생 선발’이라는 문구가 없지만 복지부가 한 청와대 청원인의 ‘현대판 음서제’ 주장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중립적인 시도추천위’를 언급해 엉뚱하게 공정성 논란을 자초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일부 한방 첩약(여러 약재를 섞어 약봉지에 싼 약)의 건강보험 시범적용에 대해서는 “누구한테 위해가 갈지도 모르고 건강보험 재정낭비도 우려되는데, 한의사 먹고살게 해줘야 한다든지 첩약 급여화를 원하는 국민이 많다는 식의 접근은 포퓰리즘”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약을 개발해 환자에게 쓰려면 수많은 검증 과정이 필요한데 한방 첩약의 경우 이를 생략한 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 사안이라는 점을 들어 현행법상 절차를 돌이키기 어렵다고 하면 잘못이죠.”

다만 그는 “한의 쪽에서 약의 효과 검증을 위해 일부 현대 의과학적 방법을 쓰는 움직임이 있는데 의약계에서 협조해야 한다”며 “배척하지 말고 같이 임상연구해 검증하고 비교연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후배 의사들에 대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답답한 심정을 알고 지난 수십년간 정책입안자나 선배 의사들의 책임이 곪아 터진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로 풀어야 합니다. 앞으로도 분란이 일어날 수 있고 의사에 대한 시기·질투가 끊임없지만 의연하게 대처합시다.” 그러면서 “(의대 졸업 시 쓰는 ‘나의 일생을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문 얘기는 너무 식상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의사만큼 좋은 직업이 어디 있느냐. 그만큼 숭고한 사랑의 정신과 어마어마한 사명감이 있어야 하고 편안한 삶의 추구에 너무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임 회장은 “젊은 의사들이 집단지성을 발휘해 곧 의료 현장으로 복귀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정부안의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았던 의정협의체의 구조와 기능도 개선해 전문가가 실질적으로 논의·결정에 참여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4일 정부 여당과 의협이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양측이 협의체를 구성해 4대 정책의 발전적 방안에 대해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재논의한다”고 했는데 일방통행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리=고광본 선임기자 사진=이호재기자

He is..

△1951년 대전 △1978년 서울대 의대 의학과 졸업 △1983년 영상의학과 전문의 △1987년 서울대 의학박사 △1987~1988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캠퍼스(UCSF) MRI연구센터 연구전임의 △1989~2017년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조교수·교수 △2013~2016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2019년~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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