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가 다음주 3·4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총 3조3,9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리콜 관련 충당금을 쌓기로 한 것은 엔진 리콜에 따른 비용이 예상보다 많고 차량 운행기간이 대폭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충당금은 과거 사례와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막대한 규모다. 현대·기아차는 통상 분기당 1조원 미만의 품질(리콜) 관련 충당금을 쌓아왔다. 지난 2018년 3·4분기에는 4,600억원(현대 3,000억원, 기아 1,600억원), 지난해 3·4분기에는 9,200억원(현대 6,100억원, 기아 3,100억원)씩 두 차례 세타2 GDI 엔진 리콜 관련 충당금을 실적에 반영했다. 세타2 GDI는 쏘나타·그랜저·싼타페·K7 등에 사용되는 엔진이다. 세타 엔진은 2002년 독자개발해 미국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일본 미쓰비시 등에 수출하기도 한 현대차의 상징과도 같은 엔진이다.
한국이 자동차의 핵심인 엔진 수출국에 오르는 첨병 역할을 한 셈이다. 후속인 세타2 엔진은 2009년 출시됐으나 2015년 들어 이 엔진을 장착한 차량이 주행 중 멈추는 사고가 이어져 대규모 리콜을 실시했다.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이 엔진에 대한 집단소송에 합의했고, 올해 7월에는 평생 보증을 약속하기도 했다. 세타2 GDI 엔진 평생 보증에 포함된 차종은 총 52만대(현대차 37만대, 기아차 15만대) 정도로 알려졌다.
현대차 측은 “올 3·4분기에는 엔진 결함에 따른 리콜 등 품질과 관련한 비용이 예상보다 높은 추세가 지속되면서 오는 2037년까지의 비용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3조원 이상 충당금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통상 12년으로 보는 자동차 생애주기를 19.5년으로 늘려 잡은 것도 충당금이 늘어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뒤인 2037년까지 발생할 수 있는 리콜 관련 비용을 재산정해 올 3·4분기 실적에 한꺼번에 반영했다는 얘기다. 현대차는 과거 충당금을 쌓을 때 차량이 12년간 운행된다는 것을 전제했지만 이번에는 2018년 출시된 모델이 19.5년간 운행될 것으로 가정해 발생할 비용을 모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리콜 대상은 아니지만 고객 불만이 적지 않은 세타2 MPI·HEV(쏘나타·싼타페·투싼·K5 등), 감마(벨로스터·쏘울 등), 누우(아반떼·투싼·카렌스 등) 엔진에 대한 불만 해소 비용도 이번 충당금에 반영됐다. 현대차 측은 “이들 엔진에 대해서도 선제적으로 엔진 진동감지 시스템 소프트웨어(KSDS) 장착 캠페인 시행을 검토 중”이라며 “이번 충당금에는 이와 관련한 비용도 포함됐다”고 밝혔다.
현대·기아차는 획기적으로 개선된 디자인과 첨단 편의 사양 기술에 비해 엔진 결함이 적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최근의 그랜저 엔진 결함, 제네시스 GV80 엔진 결함 등이 대표적이다. 잇따르는 코나 전기차(EV) 화재 사고도 현대차로서는 아픈 부분이다.
대규모 충당금 설정으로 현대차의 일시적 실적 악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증권가에서는 올 3·4분기 현대차가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번 충당금 설정으로 영업적자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현대차그룹이 영업적자 위험을 감수하고 대규모 충당금을 쌓기로 한 것은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이었던 품질제일주의와 고객 우선을 실천하겠다는 정의선 신임 회장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14일 취임 메시지에서 ‘고객’을 9번 이상 언급하는 등 고객 중심 경영을 펼치겠다고 공언했다. 정 회장은 당시 “고객 행복의 첫걸음은 완벽한 품질을 통해 고객이 본연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는 것”이라며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과 평화로운 삶’이라는 꿈을 실현하고 그 결실들을 전 세계 모든 고객들과 나누면서 사랑받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 회장은 평소 고객과의 소통 및 품질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워왔다”며 “3·4분기 실적 악화를 감수하고 대규모의 충당금을 일시에 쌓기로 한 것은 이런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가 이날 애널리스트들을 상대로 이례적으로 충당금 관련 설명회까지 개최한 것도 시장과의 소통을 통해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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