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반도체·스마트폰 신화를 이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삼성은 이 회장이 이날 오전 서울삼성병원에서 타계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5개월 만이다. 삼성은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선친인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별세한 뒤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그룹을 이끌었다. 회장 취임 당시 10조원이었던 삼성그룹 매출은 2018년 387조원으로 39배 늘었다. 이익은 같은 기간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259배나 뛰었다.
이 회장은 1993년 신경영 선언으로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닦았다. 이 회장은 당시 삼성 임원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소집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당시 이 회장은 혁신의 출발점을 ‘사람’으로 보고 ‘나부터 변하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신경영 선언을 통해 ‘양’을 중시하던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경영의 방향을 확 틀었다. 이후 삼성은 대대적인 혁신과 품질경영을 통해 ‘글로벌 삼성’으로 거듭났다. 올해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623억달러로 글로벌 5위이며 스마트폰·TV·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세계 1등 상품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의 신경영 선언 이후 다른 국내 기업들도 품질을 우선순위에 두며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동반 상승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인재중시’와 ‘기술중시’로 요약된다. 그는 인재 확보와 양성을 기업 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했고 지역전문가·글로벌MBA 제도를 도입해 5,000명이 넘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했다. 이 회장은 학력과 성별·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타파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이에 삼성은 공채 학력제한 폐지를 선언하고 연공서열식 인사가 아닌 능력급제를 전격 시행했다.
이 회장은 또 기술경쟁력을 핵심으로 여겨 기술인력을 중용했으며 1974년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반도체 산업이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에 부합하는데다 우리나라와 세계 경제의 미래를 위해 필수적인 산업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후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삼성전자는 1992년 이후 20년간 글로벌 D램 시장 1위를 지켜왔다. 2001년 세계 최초로 4기가 D램을 개발했고 2007년 세계 첫 64기가 낸드플래시 개발, 2012년 세계 최초 20나노급 4기가 D램 양산 등 삼성의 반도체 신화는 계속됐다.
이 회장은 상생경영의 중요성도 일찌감치 역설했다. 회장 취임 이듬해인 1988년 삼성은 중소기업과의 공존공생을 선언했다. 삼성이 자체 생산하던 제품과 부품 중 352개 품목을 선정해 중소기업으로 생산을 이전하면서 화제가 됐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이 회장은 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돼 스포츠외교 전면에 나섰고 2011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큰 힘을 보탰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 관장,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인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오는 28일 예정이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날 오후 아들·딸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어머니인 홍라희 전 관장과 함께 부친의 임종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기자 jyle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