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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외칼럼
[로터리] 유토피아는 없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영국 사람 토머스 모어가 38세 때인 1516년에 라틴어로 쓴 풍자소설의 제목 ‘유토피아’는 ‘지상낙원인 이상향(理想鄕)’을 말한다. 요즘 이것을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당시에는 많은 탐험가가 낙원을 찾아 떠났으며, 폴리네시아의 ‘타히티’와 카리브해의 ‘아이티’에서 신세계를 발견했다고 항해일지에 쓰고 있다. 지상낙원에 대한 그들의 첫인상은 ‘소유 없는 세상’이었다. 소유 없는 세상은 그 후 500년간 이어진 유토피아 문학의 토대가 됐다.

모어의 소설도 ‘소유에 대한 혐오’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대양 한가운데 외딴 섬 지상낙원을 방문했던 포르투갈 사람 라파엘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기억나는 대로 적는다고 했다. 이 소설을 썼던 16세기 영국에서는 양모 가격이 크게 오르자 지주들이 양을 더 많이 키우려고 밀밭을 초지로 바꾸고 울타리를 쳐(인클로저 운동) 농민들이 울타리 밖으로 쫓겨나 거지와 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하던 때였다. 소설은 먼저 인간의 탐욕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 탐욕은 사유재산제도에서 나왔고 사유재산제 때문에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했다고 가정한다. 사유재산제를 없애 공동 소유제로 바꾸지 않는 한 사회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사적 소유를 모른다’는 것은 바로 그곳 주민들이 미개했던 때문이라는 것이 판명됐다. 지금 상영 중인 영화 ‘미스터 존스’에서 보여주듯이 근현대 공산주의의 곤궁한 처지는 소유 없는 세계에서도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류에게 또렷이 가르쳐줬다. 강력한 국가 통제만이 유토피아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도 유토피아는 사생활이 없는 거대한 감옥처럼 묘사된다. 모든 국민이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집에 살며 똑같은 음식을 먹고, 허락 없이 거주지를 벗어나면 범죄자가 되고 재범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식이다. 톰마소 캄파넬라가 1602년에 쓴 ‘태양의 도시’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강력한 통제 사회가 유토피아의 본질이다.



본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든다는 것은 전 국민이 국가의 보호 아래 생계 걱정 없이 편안하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틈만 나면 토지공개념, 아파트 소유 제한, 공공 임대 아파트, 불로소득 중과세 같은 소유 없는 세상을 외친다. 이런저런 주장들을 조합해보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는 바로 ‘소유 없는 유토피아’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유토피아(utopia)는 그리스어 eu-topos (좋은-곳) 또는 ou-topos (아무 데도 없는-곳)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모어는 어떤 의미로 이 책을 썼을까. 아직도 논쟁 중이나, 그가 천재였음을 감안하면 후자가 맞다고 본다. 유토피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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