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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과학은 일상이어야 한다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했다. 첫 확진자 발생 이후 13개월 만이다. 백신 개발은 통상 10년, 아무리 서둘러도 5년 이상 걸린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이번에는 채 1년도 안 걸렸다. 각국 정부와 다국적 제약사들의 막대한 재원 투입과 기꺼이 임상 시험에 자원한 용감한 세계 시민들 덕분이다. 백신 심사 기관은 이 귀중한 임상 자료를 실시간에 가까운 롤링 리뷰 방식으로 검토하며 승인에 필요한 시간을 극적으로 단축시켰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면역 증강제 기술을 장착한 한국형 백신 역시 임상 시험에 돌입해 국산 백신 탄생의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중이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를 새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인류는 바이러스로 고통에 시달려왔지만 보이지 않는 적들과의 투쟁 속에 늘 새로운 진화의 계기를 마련하곤 했다. 바로 백신이 상징하는 과학의 발전이다. 지난 14세기 흑사병 사망자 수는 최대 2억 명으로 추산된다. 당시 세계 인구가 4억 5,000만 명 정도였으니 무려 절반 가까이가 사라진 것이다. 20세기 초에도 스페인 독감으로 5,000만 명이 숨졌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망연자실해 있지만 따지고 보면 실상은 과거와 전혀 다르다. 희생을 최소화하며 역사상 유례없는 빛의 속도로 재앙의 터널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신속한 백신 개발은 선제적이고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와 일상 곳곳에 깊숙이 스며든 첨단 과학기술의 힘이다. 이번 백신 개발의 기반인 mRNA 백신 플랫폼 기술은 20년 전에 완성돼 있었고 오장칠부(五臟七腑)라는 표현처럼 이제 인류의 몸이나 다름없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는 순식간에 임상 참가자들을 불러 모았다. 지난 몇 년간 발전을 거듭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은 임상 시험과 큰 시차 없이 병행되는 롤링 리뷰를 가능하게 했다.



최근 과학 기술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거듭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경기 침체에도 올해 R&D 예산은 다시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됐다. 우리나라가 살길은 연구개발뿐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국민적 지지와 기대에 연구자들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필자는 2000년대 초반 휴대폰에 적용할 경제적인 초소형 리니어 모터 개발에 매진했다. 하지만 실패를 반복하던 중 퇴근길 버스 안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급정차 시 승객이 앞으로 쏠리는 관성의 법칙에서 영감이 떠오른 것이다. 24시간 머릿속에 고민을 담아뒀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해 주 52시간 근무제가 확산되고 있지만 KIST 연구자들은 근무 시간과 형태에 제한이 없는 재량근무제를 선택했다. 연구는 시공간의 구분이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영역의 일이기 때문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처한 환경에 상관없이 맡은바 소명에 철저했다. 장군은 정유년 원균의 칠천량 해전 참패 후 두 달간 삼남 지역을 돌며 흩어진 장병과 군량·무기를 수습하고 명량의 지형과 조류를 주도면밀하게 살폈다. 이어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습니다”라는 장계로 조정의 동요를 막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라는 말로 병사들의 전의를 다지며 국가의 명운을 건 일전을 준비했다.

작금의 현실 역시 명량해전의 그 날과 비슷하지 않을까. 사상 초유의 감염병 사태뿐이 아니다. 시시각각 현실화하고 있는 기후변화와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촉발한 사회경제 구조 재편, 피아 식별이 어려워지고 있는 국제 정세에 여전히 몇 배의 연구개발 예산을 투자하는 과학기술 강국들과의 경쟁까지 우리나라가 안팎에서 마주하고 있는 변화의 파고는 모두 전례가 없는 것이다. 과학기술계가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의 신화를 기억하며 다시 한번 심기일전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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