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흠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 8일 만에 한 일이 있다. 주택협회·부동산개발협회 등 민간 업체와 주택 공급 간담회를 가진 것이다. 그냥 이야기를 듣는 행사였는데 시장에서는 ‘획기적(?)’ 일로 평가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과거에는 민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다. 형식적이지만 그래도 이례적이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공급 파트너로 민간을 대우해준 것에 대해 고마워했다.
취임 109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그가 초기에 이런 행사를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현 정부 초대 주택 정책의 수장이자 역대 최장수 국토부 장관으로 기록된 김현미 전 장관이 재임 기간 내내 보여준 ‘불통’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이 근무한 기간은 3년 6개월이다. 이 기간 동안 그는 23번에 달하는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 흔하디흔한 민간 업계와의 간담회는 거의 없었다. 기자회견도 손에 꼽을 정도다. 필자가 시장 전문가들을 만날 때마다 “김 장관과 비공개회의나 간담회를 한 적이 있냐”고 꼭 묻는데 십중팔구 “우리도 못 만났다”라고 대답한다. 현 정부 우군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 등 진보 성향의 시민 단체도 오죽했으면 “현장의 목소리를 더 들어야 한다”고 비판 수위를 높인 바 있다.
얼마나 시장과 소통을 안 했느냐. 정부 고위 관계자는 “김 전 장관이 물러나서 보니 진짜 (전문가들을) 안 만났다. 밖에 있을 때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말끝을 흐렸다. 시장과의 소통은 본인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들었다는 평가도 있다. 오죽했으면 시장에서는 그에게 ‘불통의 상징’이라는 타이틀까지 달아줬다. 변 전 장관은 이를 의식했고 취임한 지 얼마 만에 간담회를 개최한 것이다.
뜬금없이 김 전 장관의 불통을 꺼낸 이유는 그 후유증이 지금도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어서다.
불통이 가져온 것은 바로 정책 실패다. 너무 당연한 결과다. 무주택자는 치솟는 전세가와 집값에 울분을 토하고 있다. 유주택자는 죄인 취급하는 정책과 징벌적 과세에 분노하고 있다. 한창 직장 생활을 즐기며 살아야 될 2030 젊은 세대들은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평생 내 집을 가질 수 없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 결과적으로 모두 부동산 정책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규제 완화를 꺼내자 재건축 시장이 들썩이는 이유도 불통 정책이 낳은 산물이다. 현 정부, 그리고 김 전 장관 재임 기간 동안 재건축을 꽁꽁 묶기만 했다. 그 결과 재건축을 기다리는 노후 단지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여의도·압구정동·목동·대치동 등 순서를 기다리는 사업장이 한둘이 아니다. 대형 사업장 몇 개라도 앞서 재건축을 진행했으면 후유증은 최소화됐을 것이다. 오 시장도 불통 정책이 빚은 ‘덫’에 걸린 셈이다.
오죽했으면 노형욱 국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전문가들의 최우선 주문도 시장과의 소통과 경청이다. 집값 안정보다 더 꼽고 있을 정도다. 변 전 장관 취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소통을 주문했다. 노 후보자도 이를 의식한 듯 일성으로 시장·지방자치단체 등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소통과 경청은 정책 입안자가 가져야 될 기본 덕목이다.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시장과 전문가들이 국토부 장관 후보자들에게 초등학생처럼 가장 기본을 부탁하고 있다. 노 후보자가 당과 청와대의 입김에서 자유롭게 기본을 지킬 수 있을까. 시장은 지켜보고 있다. ljb@sedaily.com
/이종배 기자 ljb@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