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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2.0] “수학도 수수께끼 같이 문제 안에 답이 있어요”

구로도서관이 마련한

이창후 교수의 ‘철학자의 수학이야기’

서울 경인고 학생들 대상으로

수학의 체계와 의미를 깨닫는 시간 가져

이창후 성균관대 초빙교수(철학 박사)가 지난 4일 서울 경인고에서 열린 강의에서 수학의 논리체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백상경제연구원




지난 4일 오후 구로도서관이 마련한 ‘철학자의 수학이야기’를 주제로 특별 강좌가 열린 서울 경인고등학교 시청각실. 대학 입시에 빼놓을 수 없는 수학 과목의 의미와 재미를 찾고 싶은 3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학생들은 수업내용을 조금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두 시간 동안 초롱초롱한 눈으로 강의에 집중했다.

강의를 맡은 이창후 성균관대 초빙교수(철학 박사)는 “수학은 단순히 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게 아니고 문제의 특징을 생각해 유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나이, 출신, 언어, 전공과 상관없이 누구라도 아직 증명되지 못한 수학 문제의 해결방법을 찾으면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며 관련 일화 두 가지를 소개했다.

1947년 세계적인 독일계 미국 수학자 막스 아우구스트 초른(Max August Zorn)에게 한편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를 읽은 초른은 충격에 빠졌다. 편지에는 자신이 증명하지 못한 수학 문제의 답이 두 장으로 요약돼 있었기 때문이다. 발신인은 유명한 수학자도 아니고 이제 막 식민지에서 벗어난 아시아의 한 작은 나라의 사람. 그가 바로 이임학(1922-2005) 박사 이다. 한국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우연히 미군이 버린 수학 학회지를 주웠고 거기에 적힌 문제를 풀어 초른에게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초른은 이 편지 내용을 논문으로 써 미국수학학회에 투고했다. 이 논문이 1949년 학회지에 게재되면서 이임학 박사는 국제적인 학술지에 한국인 최초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 됐다.

또 다른 일화는 한국계 미국인 수학자 허준이(38) 스탠퍼드 교수의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의 그는 수학에 관심이 없는 소위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을 일컫는 말)였고 오히려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서울대 재학시절 세계적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수업을 듣게 되면서 그는 수학의 매력에 빠졌다. 허 교수는 30대 초반의 나이로 수학계의 난제였던 ‘로타 추측’을 증명하는데 성공하면서 세계적인 수학자에게 주어지는 필즈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두 인물을 소개한 이 교수는 “풀기 어려운 수학 문제를 만났을 때 그냥 포기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두고 깊게 생각하는 연습을 한다면 여러분 중에도 이임학, 허준이 같은 세계적인 수학자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단지 수학 문제를 풀 때 잘못된 전제나 선입견에 갇혀 중요한 문제해결 방법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며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헝가리 수학자가 만든 수수께끼 문제를 냈다.

‘한 사냥꾼이 캠프를 치고 사냥을 하러 나왔다. 캠프에서 남쪽으로 2km 간 지점에서 곰을 만났다. 도망가는 곰을 동쪽으로 2km을 뒤쫓아 간 끝에 잡았다. 곰을 잡은 위치에서 북쪽으로 2km 가니 출발했던 캠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냥꾼이 잡은 곰은 무슨 색일까.’



이 교수가 문제를 내자 조용했던 강의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수수께끼의 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정답을 맞히는 학생이 없자 이 교수는 “정답은 북극이기 때문에 흰색”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모두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평소 평면이라고 가정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잘못된 전제에 갇혀 문제의 답을 놓친 것”이라고 설명해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이 날 이 교수는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 집합론과 러셀의 패러독스 등 모순이 없는 증명을 찾는 노력으로 발전해 온 수학 이론의 체계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했다.

구로도서관이 마련한 이 교수 ‘철학자의 수학이야기’ 강좌는 ‘고인돌2.0(고전·인문아카데미2.0: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최됐다. ‘고인돌2.0’은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이 2013년부터 함께한 인문학 교육 사업이다. 성인 중심의 인문학 강좌로 시작한 ‘고인돌’은 지난해부터 명칭을 ‘고인돌2.0’으로 바꾸고 서울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강연을 하고 있다. 역사와 건축, 경제, 과학,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총 56개 강좌로 구성된 올해 제9기 ‘고인돌2.0’은 특히 교과목과의 연계성을 높여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원격 강의 등 비대면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경인고 2학년 백아인 양은 “수학을 공부할 때 무조건 외울 수밖에 없었던 공식들의 이유와 원리를 알 수 있어 재미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진영 경인고 사서 교사는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입시와 연결된 인문학 강의를 찾다가 이 강좌를 선택했다”며 “수학을 단지 숫자와 공식으로 생각했던 학생들에게 이론적 체계와 깊이를 생각하게 만든 강의였다”고 말했다.

고인돌 2.0은 올 11월까지 80여개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청소년들의 인문학의 사고를 높이기 위한 강연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 이효정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원 hj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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