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뱅크가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상장 일정을 본격화했다. 카뱅의 상장은 최근 주식시장은 물론 금융권의 최대 화두였다. 무엇보다 카뱅이 어떤 기업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기업가치를 책정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기업공개(IPO) 대어로 관심을 끌었던 하이브(옛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크래프톤 등이 비교 기업의 적정성 논란을 일으키며 공모가 거품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카뱅이 들고 나온 4개 금융사는 그동안 국내에도 좀처럼 알려지지 않았던 기업들이라 더욱 흥미를 끌었다.
28일 카카오뱅크의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비교 회사로 선정된 곳은 미국의 로켓 컴퍼니스, 브라질의 파그세구로 디지털, 러시아의 TCS그룹 홀딩스, 스웨덴의 노르드넷 등 4곳이다. 다양한 국적에 국내에는 비교적 생소한 기업이다. 당초 인터넷은행으로 카뱅보다 업력이 앞서고 보다 잘 알려진 중국의 위뱅크와 마이뱅크, 일본의 세븐뱅크와 라쿠텐은행, 영국 아톰은행 등은 모두 제외됐다. 카카오뱅크는 “동사의 사업 특수성과 비교 적정성을 고려해 블룸버그산업분류(BICS) 레벨 4 기준 △은행(Banks) △ 재산관리(Wealth Management) △데이터 및 거래 처리장치(Financial Transaction Processors) △모기지 금융(Mortgage Finance)에 속하는 국내 유가증권시장 및 적격 해외시장(유가증권시장상장규정 시행세칙 제10조) 상장 870개사의 비교기업군 중 규모, 재무, 사업적 유사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이들 4개사를 최종 비교회사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카뱅은 공모가 산정을 위한 비교 기업군 선정에 있어 심혈을 기울였다. 금융권의 전통적인 기업가치 평가 기준인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로는 자신들의 가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어서다. 카뱅은 증권신고서에 밝힌대로 모바일 기반의 영업 특성상 기존의 전통적인 은행권과는 달리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높은 접근성과 확장성을 기반으로 출범 이후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카뱅은 자신들이 은행 라이센스를 받았지만 플랫폼 기반의 영업을 하고 있는 만큼 기존 금융주의 PBR 밸류 외에 플랫폼 가치를 더해야만 적정한 평가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국내 주요 시중은행의 지주사인 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 우리금융 등의 PBR은 0.37~0.52배 수준으로 1에도 미치지 못한다. PBR이 1 미만이라는 것은 기업 가치보다 주식의 평가가 그만큼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뱅이 비교대상으로 삼은 4개 회사는 모두 인터넷은행,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융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혁신 금융기관이다.
로켓 컴퍼니스는 모기지 상품의 약 98%를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다. 보험 사업 등 다양한 영역으로 핀테크 서비스를 확장하며 ‘로켓 모빌리티(Rocket Mobility)’라는 플랫폼으로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파그세구로 디지털은 금융 기술 솔루션 회사의 공급업체다. 주로 브라질의 소규모 기업, 중소기업에 다양한 디지털 결제 솔루션, 고객에게 판매하는 포스(POS) 기기를 통한 직접 결제, 무료 디지털 계정 및 계좌 인출 솔루션을 제공한다. 은행 계좌 없이도 디지털 계정으로 현금을 관리할 수 있는 모바일 플랫폼이 특징이다.
러시아의 TCS그룹 홀딩스는 지주회사로 카뱅과 유사하게 영업점 없이 플랫폼만을 통해 온라인 소매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TCS뱅크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TCS뱅크는 러시아에서 신용카드, 온라인 소비자 대출 등을 비롯해 거래 및 지불 서비스, 예금 수령 및 보험, 연금 기금 및 여행 서비스 판매 등의 업무도 담당한다.
노르드넷은 스웨덴 온라인 금융사로 인공지능(AI) 은행원을 일찌감치 도입하는 등 화제를 모았고 빅데이터 기술을 기반으로 개인의 신용등급을 분석하는 등 기존 은행과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카뱅이 비교대상으로 삼은 곳의 PBR은 로켓 컴퍼니스 4.6배, 파그세구로 디지털 8.8배, TCS그룹 홀딩스 8.0배, 노르드넷 7.6배 등이다. 이들의 평균 PBR(7.3배)을 적용해 카뱅이 매긴 기업가치는 15조 6,783억~18조 5,289억 원 수준이다.
일각에선 인터넷은행으로 사업 모델이 비슷한 것으로 평가받는 중국 텐센트의 ‘위뱅크’나 일본의 ‘세븐뱅크’가 비교 기업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위뱅크는 중국 정부의 핀테크 육성에 효과를 등에 업고 성장한데다 아직 상장하지 않았고, 세븐뱅크는 구조상 인터넷은행이지만 사실상 ATM 사업자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뱅은 증권신고서를 통해 “금번 공모 시 당사의 지분증권 평가를 위해 업종 관련성, 사업 유사성, 재무 유사성 및 일반사항 등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최종 비교기업을 선정했다”고 강조했다.
최근 핀테크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혁신 기업들은 기존의 PBR로는 자신들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판매량만 놓고 보면 세계 유수의 자동차 회사에 턱없이 못미치는 전기차 회사 테슬라가 자동차 업계 시가총액 1위에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테슬라의 주가를 주식의 밸류에이션을 평가하는 전통적 수단인 PBR이나 주가수익비율(PER) 등으로 기업가치를 설명할 수 없다. 최근 이런 기업에 대해 미래가치를 반영한 ‘주가꿈비율(PDR·Price to Dream Ratio)’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자신들의 기업가치를 스스로 고평가 할 수도 없다. 어느 정도 비교할 만한 기업군을 책정해야 하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동의할 만한 수준이어야 공모가가 합리적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카뱅과 더불어 올해 IPO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크래프톤은 최근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월트디즈니, 워너뮤직그룹 등 콘텐츠 기업을 비교 대상으로 제시해 논란이 됐다. 현재 게임회사인 그들이 업종도 다른 기업과 자신들을 비교해 몸값을 부풀렸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금감원은 이에 따라 크래프톤의 증권신고서를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