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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이 만든 富의 격차, 자식 세대까지 이어진다

■[책꽂이]이 모든 것은 자산에서 시작되었다

리사 앳킨스 외 지음, 사이 펴냄

교육과 임금 소득 만으로 富 축적 못해

자산이 개인의 삶 가르는 핵심 요인 돼

계급 결정하는 가장 중요 자산은 '주택'

자식 자산 마련 위한 증여·양도 확산세

불평등 고착 해소하려면 '자산' 주목해야





성실과 근면은 한때 성공으로 가는 최선의 수단이었다. 한국에서 말하는 ‘출세’도,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도 열심히 공부한 후 좋은 직업을 얻어 성실하게 일하면 도달할 수 있는 목표였다. 이 목표라는 게 대단한 야망이나 욕망의 실현을 의미하지도 않았다. 나와 가족이 편하게 쉴 수 있는 내 집을 소유하고, 자식에게 교육을 제공해 스스로 임금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노동 기회를 얻게 하고, 은퇴 후 빈곤하지 않게 사는 정도였다. 흔히 말하는 중산층의 삶을 영위 하기 위해 사람들은 성실·근면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다.

이제는 다르다. 성실과 근면의 가치에 자꾸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자식 교육에 대한 투자를 앞 세대보다 더 많이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럽다. 교육, 노동, 취업이 안정된 삶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중산층의 삶은커녕 간신히 한 단계 계층 이동을 하는 것조차 힘든 일이 됐다. 위로 계층을 이동하기도 어렵지만 최상위층이 추락하는 일도 희소 해졌다. 계층의 고착화가 심해지고 있다.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만들었을까. 호주 시드니대 교수진인 리사 앳킨스·멀린다 쿠퍼·마르티즌 쿠닝스는 ‘자산’을 지목한다. 공동 집필한 책 제목 그대로 ‘이 모든 것은 자산에서 시작되었다(원제 The asset economy)’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책에 따르면 오늘날 자산 격차가 삶 전반에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도 여전히 현재의 불평등을 설명하는 데 고용 중심 모델을 가져오는 이들이 있다. 마치 이들은 마르크스 시대를 계속 살고 있는 듯 하다. 과거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에서 잉여 가치를 추출하는 능력을 계급 분류 기준으로 삼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계급 모델을 만들려고 했던 영국 사회학자 존 골드소프 역시 직업과 고용 등에 기초해 계급 분류표를 만들었다. 임금 소득으로 이어지는 직업과 고용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서울 시내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 단지./연합뉴스


저자들은 이런 구식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오늘날 젊은 세대가 처한 현실을 묘사한다. 소위 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이들의 삶에서 교육에 대한 투자는 더 이상 예전 같은 수익을 내지 못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과거 주택 소유를 보장해줬던 특정 직업을 갖게 되더라도 주택을 갖기 어렵다. 주택 가격은 끝없이 상승하고 임금은 정체 된 탓이다. 교육이 ‘깡통주택’으로 전락한 격이다. 인풋 보다 아웃풋이 못한 상황, 즉 ‘땅 팔고 소 팔아’ 자식 교육을 시켜도 그 투자 비용을 상쇄할 만큼 자식이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하는 상황이 잦아지고 있다.

교육에 대한 투자가 과거 만큼 부(富)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리사 앳킨스 시드니대 교수는 주장한다.




저자들은 이제 고용 여부, 직업적 지위, 임금 소득 등에 따라 노동자 계급, 중산층, 상류층 등으로 나눌 게 아니라 자산 소유 여부로 사회 계급을 나눠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주택이 자산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주택 가격의 급격한 상승과 양적 완화에 따른 저금리, 투자 소득에 대한 세금 혜택, 임금 정체 등으로 인해 ‘자산화 된 주택’에 대한 접근성이 일부 계급에만 집중되면서 주택 자체가 불평등을 초래하는 요인이 됐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임차인에서 주택 소유주로 넘어가는 사다리가 끊긴 ‘이동 불가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또 저자들은 이제 투자자, 주택 담보 대출이 없는 주택 소유주, 주택 담보 대출이 있는 주택 소유주, 임차인, 홈리스 등으로 분류하는 게 사회 문제를 이해하는 데 더 용이하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 저자들은 밀레니얼 세대라고 해서 모두 앞 세대보다 힘든 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모 세대의 자산이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다. 이제 부모 생전의 상속, 즉 증여와 양도가 자녀의 위치를 결정짓는 전략적 결정이 됐다고 말한다. 자녀가 자산 시장에 진입할 ‘자금’을 전략적으로, 적당한 시기에 증여하거나 양도하는 방식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최상위층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산 경제 시대에 걸려든 모든 이들에게 당연한 대응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저자들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이 옳고, 그른 가가 아니다. 사회 변화를 이해하고 대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자산’의 의미와 영향력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게 강조 점이다. 어느새 ‘자산’은 자식 세대의 사회적 계급 뿐 아니라 부모 세대의 은퇴 후 삶도 결정 짓는 요소가 됐다. 자산으로 인해 ‘이동 불가 사다리’는 날이 갈수록 더 단단해지고 있다. 선거 철을 맞아 정치권에서는 또 다시 여러 경제·사회 공약이 나오고 있다. 세대 갈등이든, 경제적 불평등이든 구시대 논리로는 이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근원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1만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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