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환 수술을 받은 선수 중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에 선 로럴 허버드(43·뉴질랜드)가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스포츠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걸 IOC가 증명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허버드는 실격 후에도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 하트를 그려보이기도 했다.
허버드는 2일 일본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최중량급(87㎏ 이상) A그룹 경기에 출전했으나, 인상 1∼3차 시기에 모두 실패했다. 인상 1~3차 시기를 모두 실패하면 용상 경기를 치를 수 없다.
경기 뒤 많은 취재진에게 둘러싸인 하버드는 "올림픽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었다. 나의 올림픽 참가를 허가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고맙다"며 "스포츠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걸 IOC가 증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올림픽 참가가 어떤 논란을 불렀는지, 피부로 느끼지 못하겠다. 오늘 함께 출전한 선수들과도 불편함 없이 지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경기 전 허버드를 소개할 때, 함께 참가한 선수들 모두 박수로 그를 맞이했다.
다만 경기력은 아쉬웠다. 함께 최중량급에 출전한 이선미(21·강원도청)는 "처음으로 허버드와 경기를 하게 돼 기대했는데, 경기력에는 실망했다"고 웃었다.
허버드는 남자로 태어났으며, 105kg급 남자 역도 선수로 활약했다. 남자 선수로 활동할 때의 이름은 '개빈'이었다.
2013년 성전환 수술을 한 허버드는 IOC가 2015년 성전환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하면서 여성부 경기에 출전할 자격을 얻었다. IOC는 당시 성전환 선수가 여성부 대회에 출전하려면 첫 대회 직전 최소 12개월간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혈중농도가 10nmol/L(혈액 1리터당 10나노몰. 나노는 10억분의 1) 이하여야 한다는 지침과 함께 출전을 허용했다.
나아가 허버드는 '성전환 선수의 첫 올림픽 메달'도 노렸지만, 그의 첫 올림픽 기록은 실격이었다. 시상대에 서지는 못했지만, 허버드는 역도장 풍경을 바꿨다. 그동안 한산했던 도쿄 국제포럼 역도경기장에는 이례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취재진이 모였다. 허버드가 인상에서 1∼3차 시기에 모두 실패해 실격하자, 취재진 중 상당수가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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