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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치일반
[오색인문학]'선행 기림비' 지키는 적송···후손들의 일편단심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나무로 읽는 역사

강릉 산계리 종선각 소나무

가혹한 산삼 공납·세금 못견디고

주민들 하나둘 몰래 고향 떠나자

공전 운영해 대납 해결한 '금옥계'

善을 심듯 종선각 앞 심은 소나무

신비한 붉은 줄기는 후손들 마음

수명껏 살수 있도록 애정 쏟아야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에 위치한 종선각은 산계리 주민들의 선한 행동을 역사적 기록으로 담은 사적비와 종선비를 품고 있다.




왕조시대든 민주시대든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을 보호하는 데 있다. 그러나 유사 이래 국가가 국민을 온전히 보호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조선시대의 지배자 양반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을 수탈의 대상으로 삼았다. 국가가 백성을 수탈한 가장 전형적인 방법은 세금 징수이다. 세금은 어느 시대 어떤 정권이든 국가 경영의 필수였기 때문에 당연하지만, 문제는 지나치게 높거나 부당한 부과에 있었다. 백성은 이 같은 국가의 세금 정책을 견디지 못하면 두 가지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 저항하는 것이다. 백성이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는 것은 본적지 중심으로 세금을 걷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적지를 떠나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본적지에 남아 있는 사람은 떠난 사람의 몫까지 떠안아야만 한다. 그러면 남은 자의 고통은 배로 늘어난다. 백성의 저항은 이런 과정에서 일어난다. 갑오농민전쟁은 백성의 국가에 대한 최고 저항이었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저항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백성은 저항하지 않고 집을 떠나는 방법을 선택한다. 백성의 이 같은 선택도 넓게 보면 국가에 대한 소극적인 저항이다.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에 위치한 ‘강릉산계리금옥계방역사적비 및 종선비(江陵山溪里金玉契防役事蹟碑및種善碑)’는 18세기 후반 이 지역 백성이 국가의 세금 수탈에 저항한 역사 현장이다. 사적비는 정조 20년(1796)에, 종선비는 순조 28년(1828)에 세웠다. 강원도에서는 사적비와 종선비의 가치를 인정해 문화재자료 제129호로 지정했다. 게다가 강원도에서는 이곳을 작은 공원으로 조성했다. 공원 앞 석병산(石屛山·1,055m)에서 내려오는 주수천(珠樹川)은 이름부터 아름답다. 주수천은 물이 구슬처럼 맑고 나무처럼 푸르다는 뜻이다.

사적비와 종선비는 종선각(種善閣)에 보존돼 있다. 종선은 ‘선을 심는다’는 뜻이다. 이는 산계리 주민들의 선한 행동을 인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야순(李野淳·1755~1831)의 ‘광뢰집(廣瀨集)’에 따르면 국가의 수탈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떠나자 고진창(高鎭昌), 우광택(禹光澤), 전삼박(全三泊) 등 15명은 마을의 어려움을 해당 관청에 호소했다. 그 결과 서울에 공납한 산삼을 감량 받는 성과를 거뒀다. 아울러 이들은 주민들에게 50냥·100냥씩을 모금해 금옥계(金玉契)를 만들었다. 금옥계의 ‘금옥’은 ‘금지옥엽(金枝玉葉)’의 준말이다. 이들은 모은 돈으로 공전(公田)을 구입한 후 공전을 운영한 자금으로 주민들의 세금과 공납을 대납했다. 현재의 종선각은 2004년에 건립했다.

종선비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고진창은 제주 고씨이다. 이만도(李晩燾·1842~1910)의 ‘향산집(響山集)’에 따르면 제주 고씨가 강릉에 정착한 것은 고명극(高明極·1795~1857)의 6대조 고세좌(高世佐) 때였다. 고명극의 증조인 고선흥(高善興)은 종선비에 실렸다.



종선각 앞 한 그루의 소나무는 언제 심었는지, 몇 살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곳의 주인공이다. 50~70살 정도로 보이는 이곳 소나무는 함경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에 분포하는 동북형(東北型)이다. 동북형 소나무의 특징은 줄기는 곧게 올라가고 모습이 계란 모양이다. 소나무의 또 다른 이름은 적송(赤松)이다. 적송은 줄기가 붉어서 붙인 이름이다. 종선각의 소나무도 줄기가 붉다. 붉은 소나무는 예부터 신비한 힘을 가진 존재로 생각했다. 그 이유는 적송에서 신선이 먹는 송진과 복령이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한 인물이 적송자(赤松子)이다. 적송자는 중국 신농씨(神農氏) 시대에 살았던 우신(雨神)이다. 적송자는 곤륜산에 사는 서왕모(西王母)가 살고 있는 곳을 왕래하면서 신농씨 딸에게 신선술을 가르쳤다.

적송자는 우리나라 조선시대 양반들이 추구한 이상적인 인물상이기도 했다. 붉은 줄기는 일편단심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종선각 앞에 적송을 심은 것은 선을 온몸으로 보여준 선조들에 대한 후손들의 일편단심이다. 그러나 종선각 앞의 소나무는 곧게 계속 뻗지 못하고 용틀임의 가지를 만들었다. 소나무의 이 같은 모습은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는 토양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더디게 자라는 고정생장(固定生長)하는 나무라서 아주 굵은 소나무를 만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종선각 앞의 소나무만 해도 50년 이상의 세월을 기다린 덕분에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이곳 소나무 줄기는 아주 깨끗하다. 소나무 줄기가 깨끗하다는 것은 그동안 큰 어려움 없이 살았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소나무 자체의 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종선각을 보존하고 있는 강원도민의 정성 때문이다. 앞으로 종선각의 소나무가 수명대로 살기를 바란다면 사적비 및 종선비에 대한 보존과 함께 소나무에 대한 애정도 절실해야 한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적송은 종선각의 주인공이다. 종선각 앞에 적송을 심은 것은 선을 온몸으로 보여 준 선조들에 대한 후손들의 일편단심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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