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개월 여아를 자녀로 둔 워킹맘 김모(36)씨는 지난주 금요일 아이가 갑자기 38도 넘는 고열에 시달리자 덜컥 겁이 났다. 코로나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으면서 안도한 것도 잠시 뿐이었다. 이틀이 지나도 좀처럼 열이 잡히질 않으면서 불안해졌다. 맘카페에서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HPIV)’가 유행한다는 소식을 접한 터다. 어린이집에서조차 아이를 받아주질 않아 휴가를 내고 즉각 병원으로 향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가운데 때 아닌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행까지 겹치면서 영·유아를 둔 가정에 비상이 걸렸다.
입동 지났는데 ‘여름 감기’가 불쑥
8일 방역당국에 따르면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전국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질병관리청이 공개한 10월 24~30일 국내 파라인플루엔자 입원 환자 수는 593명으로 집계된다. 9월12~18일 59명과 비교하면 6주만에 10.1배 가량 늘었다.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5세 미만 소아에서 호흡기감염에 의한 입원을 일으키는 2번째로 흔한 원인 바이러스다.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증은 HPIV 감염에 의한 급성 호흡기 감염증을 총칭한다.
우리나라에서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주로 4~8월에 유행해 ‘여름 감기’라 불리고 있다. 보통 10월 이후에는 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현재 유행은 이례적이다. 이번 파라인플루엔자 유행은 8월 말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양상을 나타낸다.
9월 19일~10월 23일까지 최근 한달간 파라인플루엔자 환자 신고 현황을 집계한 결과 시도별 환자 수는 경북이 274명으로 가장 많고, 경기 227명, 부산 203명, 경남 153명, 서울 122명 등의 순이었다.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증은 대부분 6세 이하 영유아에 집중된다. 10월 17일~23일 기준 연령별 파라인플루엔자 환자 신고 현황에 따르면 전체 515건 중 6세 미만이 71건으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나머지 연령대에서도 신고건수가 적진 않다. 7~12세가 28명, 50~65세가 27명, 19~49세 24명, 13~18세 20명 등으로 전체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증 신고건수 증가와 더불어 상승하는 양상이다.
코로나19, 독감과 증상이 닮은 꼴
이번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세가 심상치 않은 이유는 코로나19나 독감 증상과 감별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파라인플루엔자 감염증의 가장 흔한 증상은 발열·콧물·기침 등이다. 쌕쌕거리는 천명음이나 근육통·구토 등의 증상도 동반한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파라인플루엔자마저 유행하면서 일선 보육기관과 가정의 혼란이 가중되는 실정이다. 기침이나 고열 등의 증상을 보이면 등원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보육기관도 꽤 되다보니 영유아를 둔 맞벌이 부부들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 것으로 알려졌다.
예방 백신이나 항바이러스제 없어
유진호(사진) 서울아산병원 소아천식아토피센터 교수는 “파라인플루엔자가 흔히 봄에 유행한다고 알려졌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조차 증상만으로는 코로나19나 일반 감기와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에 아이가 기침·고열 등의 증상을 보이면 파라인플루엔자 감염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개 소아·청소년은 일반 감기와 같은 증상 및 경과를 나타내지만, 영·유아는 기관지염이나 폐렴, 크루프(급성후두기관지염)까지도 이어질 수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유 교수는 “파라인플루엔자는 예방백신이나 특이적인 항바이러스제가 없기 때문에 예방 활동이 가장 중요하다”며 “영유아는 파라인플루엔자 감염이 기관지염이나 크루프까지 발전할 수 있다. 쌕쌕거리거나 호흡 곤란 증상이 나타나면 곧장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증을 진단하려면 상기도 감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종류를 감별해야 한다. 독감이나 코로나19 검사처럼 비인두 도말로 검체를 채취하고, PCR(유전자증폭) 검사로 8종 이상의 호흡기 바이러스를 검사하는 방식이다. 검사비용은 병원마다 다른데 15만원 안팎이라고 알려졌다.
보험이 안 되는 비급여 검사여서 비싼 편이지만, 특이 치료제가 없어 실익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입원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심한 수준이 아니라면 해열제, 수액보충과 같이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를 진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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