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선 후보가 돈 풀기 경쟁에 나섰다. 먼저 불을 지폈던 건 온 국민에게 50만 원씩 25조 원의 재난지원금을 주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다. 이에 대해 윤석열 국민의 힘 후보는 소상공인에 50조 원을 줘야 맞는다고 했고 같은 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100조 원으로 더 키웠다. 여당의 이 후보가 이를 받아 50조 원이든 100조 원이든 당장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자고 나왔다. 더 많이 더 빨리 주자는 경주를 벌이는 모습들이다.
이전 대통령 선거에서도 후보들이 공약 사업에 필요한 돈을 언급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35조 원, 문재인 대통령이 178조 원이다. 그런데 이 금액은 임기 5년 동안 100개 넘은 공약 사업 전체를 수행하기 위한 돈이다.
지금 후보들은 소상공인 손실보상이라는 한 가지 사업만 갖고 당장 50조∼100조 원을 쏟아붓자고 한다. 이런 식이면 임기 전체로는 상상조차 못 할 돈이 필요할 것이다. 50조 원은 현재 나라를 지키는 한 해 국방비와 맞먹고 100조 원은 미래 세대를 위해 초·중·고·대학에 지원하는 전체 교육 예산보다 많다.
여야 후보들이 이 큰돈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입을 다물고 있다. 문 대통령이 법인세를 인상하고 박 대통령이 세액공제를 줄여 공약 소요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약속해 실제 세제를 손댔던 것과 대조된다.
지금 주로 얘기되는 방안이 추경 편성인데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정부와 여야 국회의원이 내년 예산에 합의해 확정한 게 불과 열흘 남짓이다. 예산을 심의할 때는 올해 세입에서 남는 부분이 있는지 따져본 뒤 내년에 걷을 수 있는 세금을 추계하고 꼭 필요한 곳을 선정해 지출 계획을 확정한다. 당장 추경을 짜 예산을 고친다면 국회가 이러한 예산 심의를 소홀히 했거나 아니면 추경 법적 요건에 어긋나거나 둘 중 하나다.
한국의 국가 채무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6년 627조 원이던 국가 부채가 오는 2022년에는 1,064조 원으로 늘어난다.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국가 채무 비율도 36%에서 50%로 증가한다. 2022년 한 해에만 국가 채무가 108조 원 늘게 돼 있는데 손실보상 비용이 추가되면 폭이 더 커진다. 50조 원 채무가 늘면 국가 채무 비율이 52.3%, 100조 원이면 54.7%다.
독일·캐나다 등 다른 나라는 코로나19로 늘어났던 재정 지출을 줄여 국가 채무 비율을 축소하는데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아마도 지난해 국회의원 총선 때 전국민재난지원금을 살포한 게 효과를 봤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우리 국민 수준이 내가 세금으로 내야 할 돈을 미리 주는 조삼모사식 지원금 때문에 표를 찍을 정도라고 믿기 어렵다. 올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재난위로금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박영선 후보는 18% 차이로 오세훈 후보에게 완패했다.
무디스 신용평가사는 적자 재정으로 한국의 국가 채무 비율이 60%까지 증가해 재무 건전성이 나빠진다고 평가했다. 굳이 외국 분석이 아니더라도 국가 채무는 국민 부담이며 특히 미래 주역인 청년 세대에 큰 짐이다.
통계청이 지난주 향후 10년간 생산연령인구가 357만 명 감소하고 고령 인구가 490만 명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인구 구조 변화로 경제적 부담이 커지는 미래 세대에 나랏빚 폭탄까지 물려줄 수는 없다.
이번 선거에서는 어느 때보다 20대를 비롯한 청년층 지지가 중요하다고들 한다. 청년 인재를 영입해 사진 찍는 일도 좋지만 미래 세대 부담인 나랏빚을 줄여주는 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이다. 선심성 지출이 아니라 연금 개혁 등 적자 축소를 위한 경쟁이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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