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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휴대폰 검열하는 공무원

경제부 김우보





“언제든 휴대폰 까일 각오해라.”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정부 부처 인사 A 씨는 아래 직원을 한데 모은 자리에서 으름장을 놨다. 고압적인 언행에 직원들이 가질 불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지시가 외부로 흘러나갔을 때 생길 파장이 더 두려웠다.

A 씨는 모든 셈을 펜을 들고 손으로 했다. 탄소 감축이 사회 각 분야에 미칠 피해 규모를 따져보기 위해 수많은 수치를 다뤄야 했지만 기록이 남을 수 있는 컴퓨터 사용은 피했다. 작성한 문서는 매일 세절했다. 민감한 수치는 같은 부서 직원들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A 씨는 “직원들이 상사의 지시를 녹음한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도는 판”이라면서 “탈이 나면 윗선이 ‘실드’를 쳐주지도 않을 텐데 내가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A 씨가 유난을 떠는 이유는 이랬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감축 목표가 40%는 돼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자체 검토 결과 30% 이상의 목표치도 달성하기 쉽지 않다고 보고했는데 되레 상향된 목표치가 하달됐다. 부처가 진행했던 그간의 검토 내용을 뒤집고 어떻게든 정해진 수치에 맞춰 세부 시나리오를 다시 설계해야 했다. “어차피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임을 잘 알지만 달성할 수 있을 것처럼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일이다.

A 씨는 “내가 총대를 메다 보니 유난을 떨 수밖에 없다”고 했다. “‘못하겠다’고 손을 뗀다 한들 달리지는 것은 없다. 다른 누가 내 자리에 오든 결국 윗선 뜻대로 진행될 일”이라는 얘기다. 탄소중립뿐 아니라 세금 예산 정책 등 당청이 입맛에 맞는 정책을 일선 부처의 반발에도 밀어붙이는 일을 숱하게 지켜봤고 겪어왔다. 후에 추궁당하는 일이 없게 자신의 흔적을 가능한 한 지우는 게 A 씨가 할 수 있는 최선인 셈이다. 당청의 성긴 정책 구상이 국민에게 그대로 노출된 데 대해 A 씨는 “내 역량 밖의 일”이라며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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