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폭락에 주주들은 가정이 파탄날 지경입니다. 그런데 회사의 대응는 갈수록 엄청난 불신과 더불어 배신감만 느껴집니다.”
셀트리온(068270) 정기 주주총회가 열린 지난 25일 인천 송도컨벤시아 현장은 주주들의 분노로 들끓었다. 지난해 초 주당 40만 원에 육박했던 주가는 최근 16만 원대까지 미끄러지며 65% 이상 하락한 상태다. 주총 개최 직전 입구에는 통과하면 살균이 되는 방역 게이트와 함께 ‘주주이익 우선이다, 주주가치 제고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평범한 사업 보고를 읊던 주총은 오윤석 소액주주연대 대표가 경영진의 최저임금 근로를 요구하면서 달아올랐다. 오 대표는 신원근 카카오페이 대표 내정자가 ‘주가 회복 전까지 최저임금만 받겠다’고 말한 사례를 거론하며 “셀트리온 주가가 35만 원에 도달할 때까지 최저임금만 받고 근무하다가 35만 원이 넘어서면 미지급된 급여를 소급하여 받겠다는 책임경영 자세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기우성 셀트리온 대표 이사와 서진석 이사회 의장은 주주와 고통을 분담하고 책임 경영을 할 자세가 돼 있는지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서 의장은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오 대표의 이러한 발언에 현장의 주주들은 박수를 치며 동의의 뜻을 표했다.
기 대표는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려 주가가 많이 저평가돼 있고 떨어진 것에 대해 송구스럽단 말씀을 드린다”며 주가 하락에 대해 사과했다. 다만 ‘주가 회복까지 최저 임금만 받아라’는 요구에는 “지금 특정 회사와의 비교하는 안 했으면 좋겠다. 고통 분담 차원에서 어떻게 할지는 고민을 해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곧바로 A 주주는 “기 대표가 깊이 생각해보겠다는데 그 진정성에 의심이 간다”며 “1년에 단 한 번 주주들과 만나는 날인데 그런 고민조차 하지 않고 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기 대표는 “경영자로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말씀하신 것에 동의를 하겠다”며 주가 회복 시점까지 최저 임금을 받겠다"고 떠밀리듯 약속했다. 주주들은 기 대표의 약속에 큰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다만, 기 대표가 최저 임금을 받는 것은 주가 상승과 관련 없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B 주주는 “대표 이사가 공금을 안 받는다고 해서 주가가 올라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선 질문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측에서 사람을 심어 놓은 것 아니냐”, "나도 오래된 주주다"며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보통주를 신규 발행하여 스톡옵션을 제공하겠다는 안건을 올린 것은 주주들을 기만하는 처사라는 비판도 나왔다. 한 주주는 “보통주 신규발행은 주식 수 증가로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자사주를 활용해 스톡 옵션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기 대표는 “자사주 추가 발행을 하면 유통 물량이 많아진다는 것에 백 번 공감한다”며 “주주님 의견을 받아들여서 갖고 있는 주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기 대표는 ‘자사주를 소각해 주가를 올려 달라’는 요청에는 “바이오 쪽 산업은 인수·합병(M&A)을 대비해 재원과 현금이 있어야 한다”며 반대의 뜻을 보였다. 이어 “주주님들이 조금 서운하겠지만 길게 보면서 소각보다는 미래 비전에 동의를 해달라”고 했다. 주주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미래 성장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수긍했다.
3시간여 이어진 주총은 끝나갈 무렵,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은 깜짝 등장해 주주들에게 주가 하락에 대한 송구함을 표했다. 서 회장은 현장과 전화 연결을 통해 “오늘 주주총회를 지켜보고 있었다. 주주들에게 인사하러 왔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인이 기업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주분들이 회사 주주인게 자랑스럽다고 얘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서 회장은 향후 주가 회복 방안을 두고 “기업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 실적이 주가를 견인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주주총회로 재무제표 승인·이사회 선임·사외이사 선임·감사위원 선임·이사 보수한도 승인·주식매수선택권 부여 승인의 건 모두 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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