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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수 칼럼] 갈길 먼 노동개혁

백상경제연구원장·서울경제 논설고문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편 시동에도

대체근로허용 등 로드맵 안보여

노동경직성 완화 등 뒷받침 없으면

반쪽짜리 개혁에 그칠 가능성 높아

오철수 백상경제연구원장




정부가 노동 개혁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12일 5개월 동안의 연구 성과를 담은 노동시장 개혁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번 권고안은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개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연장 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1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개편하고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직종·직군의 다양성을 반영하도록 권고한 것이 주된 내용이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후 70년 만에 노동시장의 틀이 바뀐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권고안을 토대로 정부 입장을 조속히 정리하겠다”고 밝힌 상태여서 정부의 노동 개혁은 근로시간과 임금체계를 중심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연구회가 이 두 과제를 제외한 나머지를 추후 검토 과제로 미뤄놓았다는 것이다. 연구회는 파업 땐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노조의 사업장 점거도 제한하라고 권고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정부가 근로시간과 임금체계의 유연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도 의미는 있지만 이것만으로 노동계에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최근 민주노총 화물연대 파업에서도 드러났듯이 노동시장에서는 힘의 균형추가 노조 쪽에 심하게 쏠려 있다. 노동조합법이 필수 공익사업장을 제외하고는 파업 시 대체근로를 할 수 없게 규정해 놓고 있기 때문에 노조는 이를 믿고 툭하면 파업을 하기가 일쑤다. 파업 시 사업장 점거도 생산 등 주요 시설 점거만 금지하고 있어서 노조가 출입문 등을 봉쇄할 경우 회사 측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노조의 불법 직장 점거를 막기 위한 유일한 수단인 직장 폐쇄도 엄격한 요건이 걸려 있어 활용하기가 어렵다. 이번 권고안에 이런 불합리한 관행들을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로드맵이 제시됐어야 했지만 장기 과제로 미뤄지고 말았다. 특히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사업자의 경우는 부당노동행위 시 형사처벌이라는 족쇄가 채워져 있지만 근로자는 아무런 규제가 없다. 이러니 노조가 걸핏하면 파업을 벌이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경직성도 심각한 사안이다. 우리나라는 정규직 과보호가 너무 심해 근로자를 한 번 채용하면 해고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는 기업들의 채용 기피를 초래해 중년은 물론이고 청년들에게도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근로기준법에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해고가 가능하다고 규정돼 있기는 하지만 요건이 너무 엄격해 실제 현장에서는 활용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일반 해고 요건을 완화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없던 일로 해버렸다. 이 같은 노동시장 경직성으로 인해 해고 비용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많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기업들이 근로자를 해고할 경우 27.4주에 해당하는 임금을 비용으로 부담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평균(9.6주치)의 2.85배에 이르고 일본(4.3주치)에 비해서는 무려 6.37배에 달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해고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정은 임금체계 변경도 마찬가지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취업 규칙이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되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최근 고령화로 인해 정년 연장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에 반드시 필요한 성과급제로의 임금체계 변경은 근로자 반대로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노동시장의 이런 불합리한 관행들이 존재하는 한 노동 개혁이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가 이왕 노동 개혁을 하고자 나섰으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근로시간·임금체계를 유연화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노사 간에 힘의 균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물론 노동 개혁이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과거 독일에서도 봤듯이 정권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각오 없이 노조와 적당히 타협하는 선에서 그친다면 노동 개혁의 의미는 퇴색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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