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마다 새롭게 선출되는 대통령마다 똑같이 하는 ‘거짓말’이 있다. 새 정부에서는 반드시 ‘낙하산 인사’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는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취임 직후 “낙하산·보은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물론 당선 직후나 취임 초만 해도 적어도 나만큼은 이전 정부의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5년마다 반복되는 거짓말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캠프에서 일하던 사람을 (공공기관장이나 임원에 내정) 시킨다? 전 그런 거 안 하겠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그 약속이 무색하게 취임 9개월 차로 접어든 현 정부의 공공기관 곳곳에서는 이미 낙하산 인사들이 하나둘 자리를 꿰차고 있다. 대선 캠프 출신부터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여권 정치인들까지 면면도 다양하다. 제대로 된 전문성 검증도 없이 내리꽂다 보니 한 공기업 사외이사의 경우 자질 논란으로 취임 9일 만에 물러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진보·보수 정권을 가리지 않고 외쳤던 ‘낙하산 근절’ 약속이 공허한 메아리로 그치다 보니 이럴 바에는 차라리 ‘엽관제(獵官制)’를 도입하자는 주장에 점차 힘이 실리고 있다. ‘사냥한 관직’이라는 뜻처럼 엽관제는 선거에서 승리해 집권한 정당이 관직을 지배하는 인사 제도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인물을 주요 부처나 공공기관장에 앉혀야 유권자들에게 약속한 정책을 보다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실제 엽관제를 가장 먼저 확립한 미국의 경우 정권이 바뀌면 3500여 개에 달하는 자리가 모두 물갈이된다. 대통령과 주요 공직의 임기를 일치시키니 정권 교체기마다 알박기 인사를 놓고 여야가 서로 다툴 일도 없다. 오죽했으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됐다가 취임 1년 2개월 만에 물러난 한 공공기관장이 사퇴의 변으로 엽관제 도입을 주창했을까 싶기도 하다.
여야 모두 이러한 문제의식을 느꼈을까. 현재 국회에서도 대통령과 공공기관장 임기를 일치시키는 내용의 관련 법안이 발의돼 논의 중이다. 정부조직법 개정안과도 연계돼 실제 법안 처리를 낙관할 수는 없지만 매번 되풀이되는 낙하산·알박기 인사 논란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물론 그전에 대통령의 임명 가능 직위를 명확히 규정한 한국판 ‘플럼북(Plum Book)’을 만들어 인사의 투명성을 높이는 동시에 감사와 이사회의 전문성과 독립성 강화를 통해 기관장에 대한 견제 기능을 되살리는 것이 전제 조건이 돼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