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트라이베카에 위치한 캐나다(Canada) 갤러리에서 미국 팝 문화의 새로운 면을 드러내는 캐서린 번하드(Katherine Bernhardt)의 일곱 번째 개인전이 한창 진행 중이다. 전시는 2월 말까지 ‘I’m Bart Simpson, who the hell are you?’라는 제목으로 뉴요커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2020년 초 갤러리에서 영화 주인공인 외계인 캐릭터 ‘이티(E.T.)’를 주제로 열었던 개인전 이후 약 2년 만이다. 캐나다 갤러리는 번하드가 2021년 세계 최정상급 화랑인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와 공동으로 전속 계약을 맺기 훨씬 전부터 몸담고 있는 곳이다.
이번 개인전에 번하드는 전 세계인들에게 오래 사랑받고 있는 애니메이션 ‘심슨(The Simpson)’의 주인공인 바트 심슨(Bart Simpson)을 주제로 가져왔다. 바트와 관련된 10여 점의 페인팅과 드로잉, 조각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이 전시됐다. 작품 속에서 엉덩이를 반쯤 내밀고, 마치 작품을 보는 관객을 비웃기라도 하는 심슨 캐릭터는 웃음을 자아낸다. 기존 번하드의 작품과 달리 다소 선정적이면서 유머러스한 심슨 캐릭터는 작가의 새로운 시도다.
번하드는 국내 대중들에게도 꽤 익숙한 작가다. 한국에도 상당한 컬렉터층을 가지고 있는 번하드는 국내에 자주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프리즈(Frieze) 아트페어에도 캐나다갤러리와 데이비드즈워너 갤러리는 번하드의 작품을 가져와 많은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작가 본인도 직접 갤러리 부스에 참석해 새로운 컬렉터와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현재 번하드는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작업하고 있다. 그녀는 우리가 익숙하게 소비하는 일상적 오브제와 대중매체에 자주 노출되는 유명한 만화 캐릭터 이미지를 ‘차용’해 다양한 화면을 구성한다. 펩시, 코카콜라, 하인즈 케첩 등 유명 브랜드의 상품들과 가필드, 핑크 판다, E.T. 등 동심을 자극하는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 또한 1980년대 유행하던 팝 문화의 네온 색에 깊은 매력을 느낀 번하드는 자신의 작품에 이러한 색들을 반영한다.
번하드는 작가의 행위가 신성시되던 기성 미술에 대한 반발로 발생한 미국 팝 아트의 정신을 잇고 있다. 번하드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들이 고급문화보다는 대중문화와 더 관련있는 게 그 때문이다. 팝 아트의 선구자였던 앤디 워홀이 실크 스크린 기법을 통해 대량 생산된 오브제의 이미지들을 반복하여 찍어냈듯이, 번하드 또한 화면에 동일한 이미지들을 반복해 배치한다. 반복된 이미지들은 마치 하나의 패턴처럼 보이기도 한다.
번하드 작품이 기존 팝아트와 좀 다른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우선, 무수히 많은 브랜드와 협업한다는 점이다. 현대에 들어서 하이엔드 명품과 예술품 사이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는 현상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이에 굿즈 형태로 예술품보다는 저렴한 가격으로 예술품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빈번히 접할 수 있다. 미술계에서는 미술의 상업성이 지나치게 부각된다는 부정적인 여론들이 많지만, 이는 시대를 거스를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돼버렸다. 번하드는 이런 경계에서 선 대표작가 중 한 명이다.
기존 팝 아트와 다른 점은 기성 미술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작가의 행위가 그녀의 작품에서는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번하드의 시그니처 스타일로 잘 알려진 스프레이 기법은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의 윤곽선을 재빠르게 잡아내고, 그 주변으로는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물감들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번하드는 미술 시장에서도 꾸준히 예상가를 뛰어넘는 경매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데이비드 즈워너의 런던 지점 개인전을 시작으로 2차 시장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 중 핑크 판다 시리즈는 홍콩 경매에서 연일 최고점을 경신하고 있는 인기 있는 시리즈이다. 작년 6월 홍콩 필립스 경매에서는 핑크 판다 작품인 ‘Panther Hurricane’(2017)이 예상가의 7배가 넘는 약 280만 홍콩 달러, 12월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는 예상가의 2배가 넘는 약 100만 홍콩 달러에 낙찰됐다. 번하드가 기존 팝아트와는 또 다른 형태의 현대 미술의 장르를 개척할지 지켜볼 일이다. /글·사진(뉴욕)=엄태근 아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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