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 허먼 멜빌의 ‘모비 딕’ 호머의 ‘오디세우스’. 모두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대작 소설이다. 우리는 소설 속 주인공 버튼(Berton), 퀴케그(Queequeg), 오디세우스(Odysseus)가 바다와 벌이는 사투를 생생한 문장으로 상상한다. 세 작품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망망대해를 머리 속에 그려봤을 것이다.
작가 바이런 킴이 대중의 머리 속에 있던 이 상상을 캔버스에 구현했다.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리는 바이런 킴의 개인전 ‘마린 레이어(Marine Layer)’는 바다에 대한 상상을 수중, 수면, 하늘로 나눠 기록한 추상화를 전시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신작 ‘B.Q.O.’의 이름은 앞서 언급한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유명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의 앞 글자에서 따왔다. 작가는 “코로나19로 세계가 모두 격리에 들어가기 시작한 지난 2020년 1월 미국 플로리다주 캡티바 섬(Captiva Island)에 머물며 다시 읽은 이 소설들이 상상력을 자극했다”며 “플로리다 남부의 외딴 섬에서 한 달을 보내며 수영을 하며 바다 밑 깊은 곳, 바다 표면, 바다 위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B.Q.O.’의 캔버스는 세로로 긴 직사각형으로 구성된다. 이 직사각형은 사실 세 개의 캔버스 패널을 이어붙인 것으로 가장 위의 화면은 바다에서 올려다 본 화면, 가운데 화면은 빛이 반사돼 반짝이는 물의 표면, 가장 아래 화면은 시커먼 바다 깊은 곳이다. 바다 가장 깊은 곳을 그린 가장 아래 화면은 마치 영상으로 찍은 듯 짙은 감색이지만 가끔 저 멀리서 보이는 쏟아지는 빛을 섬세하게 표현해 그림 만으로 바다 속 수영을 하는 듯한 상상을 일으킨다.그는 22년째 매주 일요일의 일기를 그림으로 그리는 ‘선데이 페인팅’ 연작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수백 개의 작은 패널에 다양한 이들의 피부색을 담은 ‘제유법’ 연작도 1991년부터 계속 작업 중이다. 이들 작품 중 일부는 시카고 스마트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등 전 세계 주요 기관에 소장돼 있다. 이번 ‘B.Q.O.’ 역시 결말없이 진행되는 연작이다. 국제갤러리 부산점 전시는 4월23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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