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신흥국이 휘청이는 가운데 중국이 구제금융의 새로운 ‘큰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은 2021년 40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해 국제통화기금(IMF)의 686억달러를 추격하고 나섰다. ★본지 3월 23일자 6면 참조
27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 내 연구소인 ‘에이드데이터’는 이날 중국이 2000년부터 2021년까지 22개 국가에 총 24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집행했다고 분석했다. 이 중 1040억 달러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집중됐다. 국가별로 보면 중국은 이미 미국의 구제금융 지원 규모를 한참 앞질렀다. 비교적 큰 규모의 미 재무부 구제금융은 2002년 우루과이에 제공한 15억 달러가 마지막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글로벌 금융 안정망을 만들어온 IMF 등 서방 주도 기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구제금융 규모가 늘어난 것은 신흥국의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는 ‘일대일로’가 흔들리는 데 따른 영향이 크다. 중국은 2013년부터 2021년 말까지 국영은행 등을 동원해 아프리카·동남아시아 등의 고속철도·도로 건설에 총 8380억 달러를 지원했다. 하지만 최근 신흥국 경제가 흔들리고 이들 나라에 각종 부패 스캔들까지 발생하면서 일대일로 지원금 회수에 애를 먹고 있으며 지원에 나섰던 은행의 대차대조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중국은 구제금융을 통해 지원금 회수에 나섰다. 에이드데이터의 브래드 팍스 전무는 “중국은 궁극적으로 자국 은행 구제를 시도하고 있다” “그것이 리스크가 높은 구제금융판에 뛰어든 이유”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구제금융을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실행하고 있다. NYT는 중국이 튀르키예·아르헨티나·스리랑카 등 지정학적 거점이나 천연자원 보유국으로서 의미가 있는 나라를 중심으로 긴급 대출을 해주고 있다고 짚었다. 구제금융을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2021년 기준 중국이 제공한 긴급대출의 기준통화 중 90% 이상이 위안화였다. 아울러 중국 구제금융의 평균 금리 수준은 약 5%로 IMF의 2%대 초반보다 훨씬 높아 큰 수익도 노리고 있다. 이 외에 중국은 IMF나 국제채권단의 위기국 채무 재조정 협상에 참여하지 않고 위기국과의 쌍방 협상을 선호하며 빚을 탕감하는 대신 대출금 변제 기간을 늘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NYT는 “2차 세계대전 이후 IMF와 미국이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며 세계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과시했지만 이제는 중국이라는 새로운 거물이 등장했다”며 “이는 경제 초강대국으로 진화하는 중국의 위상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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