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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이 대리수술 합법화?" 전공의 한마디에…분통 터뜨린 PA 간호사들

진료지원간호사 7명, 전공의협의회 주장 정면 반박

16일 국무회의 앞두고 간호법 공포 촉구 목소리 높아져

간호대학 교수·학생 이어 보건교사들도 단체 성명

10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현직 진료지원간호사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대한간호협회




"간호법이 제정되면 대리처방과 대리수술을 합법화할까 우려된다고요? 대리처방과 수술을 암묵적으로 승인해 온 진짜 원인이 따로 있다는 것, 알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있다는 이유로 수면 아래 있었던 ‘진료보조인력(PA·Physician Assistant)’들이 10일 국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학병원 전공의(레지던트)들로 구성된 전공의협의회가 지난 2일 기자회견을 통해 “간호법이 그간 암묵적으로 진료현장에서 행해졌던 대리수술과 대리처방을 합법화하는 계기로 작용할까 우려스럽다"고 발언한 점이 발단이다.

◇ PA 간호사들 “전공의 대체 아닌 간호사 면허 업무만 하고 싶다”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을 위한 기자회견’에는 현재 병원에서 진료지원간호사로 근무 중이라고 밝힌 7명이 얼굴을 가린 채 ‘필요하면 진료지원간호사, 필요 없으면 불법자’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등장했다. 또다른 피켓에는 ‘의사파업 시 빈자리 누가 대체했나’, ‘우리는 간호사 본연의 업무를 하고 싶습니다’ 등의 문구도 쓰여 있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간호법 어디에도 간호사 대리처방 및 대리수술을 합법화할 수 있다는 전공의들의 주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간호사는 누구나 본인의 면허범위 내 업무를 정정당당하고 하고 싶어하며 전공의 대체 업무를 하고 싶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밝혔다. 간호법 제정이 아닌 정부의 의대 정원 동결 정책이 의사 외 다른 직역으로 하여금 대리처방과 수술을 하도록 암묵적으로 승인하는 이유가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이날 회견장에 선 진료지원간호사 A씨는 "정부는 18년째 의료 정원을 묶어 둔 정책을 추진했고 병원은 자구책으로 간호사들에게 부족해진 전공의 대체재 역할을 시켰다”며 "진료보조란 명분 하에 PA에게 전공의의 공백을 메우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진료과 교수의 일방적 지시로 전공의 대체 업무를 하고 싶지 않다"며 “간호법이 공포되면 대리수술 고발 등 근절 운동을 전개하겠다”고도 덧붙였다.

◇ 공공연한 비밀인데도 전국 1만명…PA 양산 배경은 전공의 수 부족?


진료검사수술 등 의사의 진료 행위를 돕는 보조인력을 통칭하는 PA는 올 초에도 삼성서울병원장이 의사의 의료 행위를 대신하는 간호사를 채용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대부분이 간호사로, 2010년 국내 처음 도입된 이후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대폭 증가하면서 전국에 활동 중인 인원이 1만 명 넘지만 의료계 내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PA 면허를 운영하는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의료법상 별도 면허 범위가 정의되지 않아 존재 자체가 불법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일선 병원들은 ‘PA’와 같은 지원인력 없이는 병원 운영 자체가 힘들다고 토로한다.높은 연봉을 제시해도 전공의(레지던트)들이 지원하지 않는 현실에서 PA 간호사가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흉부외과·산부인과 등 전공의들이 기피한다고 알려진 외과 계열 진료과에서는 대학병원 교수들조차 PA 양성화 필요성을 제기한다. 진료보조인력을 적법한 범위에서 활용한다면 오히려 환자 안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서울대병원은 아예 PA란 용어 대신 명칭을 바꿔 2021년 7월부터 임상전담간호사(CPN·Clinical Practice Nurse)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 PA 활용의 법적 근거가 부족한 만큼 의료법과 간호사 면허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부족한 인력을 메우겠다는 취지다.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할동 중인 CPN은 160여 명에 달한다.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은 2021년 국감에서 “전공의들이 해온 의료행위가 모두 의사 면허 하에서 이뤄져야 할 필요는 없다”며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가 CPN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면서 불법 의료행위가 벌어질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 병원들 인건비 아끼려 PA 활용…전공의들 “수련기회 박탈” 지적도


2020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공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PA 간호사는 △의사 아이디로 처방 △전공의 없는 진료과에서 대리수술 △전공의가 없는 경우 환자 치료방향 결정 △동맥관 채혈 △수술·시술에 대한 동의서를 의사 이름으로 받기 △의사 가운 입고 환자 회진 등 환자의 건강에 직결되는 ‘대리의사’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불법 소지가 있다 보니 교육과정이 전무한 데다 PA 근무기간을 간호사 경력으로 인정해주는 경우도 드물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전공의들도 불만이 많다. 전공의가 해야 할 업무를 PA가 대신 하다보니 수련받을 기회를 빼앗기고 전문성을 침해당한다는 것이다. 앞서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 2018년 82개 수련병원 인턴 및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행한 ‘2018 전국 전공의 병원평가’ 결과에 따르면 수련병원의 93%에 PA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참석한 전공의 4명 중 1명은 “PA로 인해 교육적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느꼈다”고 응답했다. 당시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PA는 무면허 의료행위로 의료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인 동시에 의사의 전문성을 침해한다"며 “수련생 신분이기도 한 전공의가 제대로 교육을 받기 위해서라도 무면허 의료행위는 근절돼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와 별개로 병원들이 PA를 채용하는 배경이 인건비를 절감하려는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공의 1명을 더 채용하는 것보다, 인건비가 적게 드는 간호 인력에게 의사 업무를 일부 떠맡기는 게 병원 입장에서 남는 장사라 경영진들이 PA 간호사로 전공의 공백을 충당한다는 것이다.

◇ 현장간호사 이어 간호대학 교수·학생들도 “대통령 공약 지켜져야”


간호사단체와 보건의료노조 등은 수년간 PA 간호사의 불안정한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왔다. 하지만 직역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이유로 공회전을 거듭하던 중 간호법이 대리수술과 대리처방을 조장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현장 PA 간호사들이 분통을 터뜨린 것이다. 병원 근무 간호사들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병원간호사회도 이날 성명을 통해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대리수술, 대리처방과 아무 관계도 없는 간호법에 거짓 프레임을 씌우고 대통령 거부권을 주장하고 있다”며 발언의 즉각적인 철회를 요구했다.

연세대학교 간호대학생들과 교수, 교직원 등 230여 명이 9일 오전 간호대학 건물에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제공=연세대학교 간호대학


간호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여부가 16일 국무회의에서 결정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면서 간호법 공포를 촉구하는 간호사 단체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현장 간호사들을 넘어 대학가와 병원 이외 현장에 있는 간호계 직군으로도 번지는 양상이다. 9일 오의금 연세대 간호대학장을 비롯해 교수, 학생, 교직원 일동은 기자회견을 열고 "간호법 제정은 감염병 유행의 위협과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대한민국 선진돌봄시스템 구축을 위한 시급한 과제"라며 "국민 건강을 위한 국가의 약속, 간호법 공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10일에는 이화여대 간호대학도 간호법 공포를 촉구하고 나섰다. 강윤희 이화여대 간호대학장은 “간호법이 국회 입법과정에 따라 합법적 절차에 의해 심의·의결된 법안임에도 간호법 반대단체 및 보건복지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쏟아내고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현재 난무하고 있는 간호법 관련 허위 주장을 잘 선별하고 지난 대선과정에서 국민과 약속한 대로 반드시 (간호법을) 공포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보건교사회와 전국 17개 시도보건교사회는 이날 공동 성명을 통해 "학교에는 중증 건강장애 학생들이 있다”며 “일반학교의 특수학급과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그 대상이며 이들은 보건교사와 간호사에 의한 적절한 의료행위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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