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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도권 드림씨어터 대표 "서울 아닌 부산에 뮤지컬 극장…지역거점 늘려야 시장도 커지죠"

■CEO&STORY

'뮤지컬 변방국' 인식됐던 10여년 전부터

"해외 명품공연 선보이자" 전용극장 추진

도시재생사업 준비하던 부산시에 선제안

우여곡절 끝에 대출받아 2019년 문 열어

서울에도 한 곳뿐인 1700석 초대형 극장

'라이온 킹' '오페라의 유령' 등 매진행렬

타지서 찾는 관객 늘어 지역경제도 활기


부산의 63빌딩으로 불리는 높이 289m의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부산 증권거래소 등 금융 시설이 입주했으나 아직 상업 시설이 잘 구축되지 않아 한적하던 이곳이 올해 들어 유독 붐비고 있다. 주말마다 수천 명의 인파가 한곳에 몰리는 까닭이다. 이들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뮤지컬 전용 극장 드림씨어터. 13년 만에 국내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려는 사람들이다.

5일 서울 논현동 클립서비스 본사에서 설도권 클립서비스·드림씨어터 대표가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욱 기자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18일 이곳에서 100회 공연을 맞이한다. 19만 원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브랜드 파워와 조승우라는 독보적인 배우를 앞세워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뮤지컬 최장기 공연을 했다는 기록도 앞두고 있다. 이 모든 역사는 ‘서울이 아닌 한국 시장을 키워야 한다’며 지방에 2000석 규모의 뮤지컬 극장 건립을 추진한 설도권 드림씨어터 대표의 무모한 도전에서 출발한다.

5일 서울 논현동 드림씨어터 서울사무소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설 대표는 차분하면서도 들뜬 표정이었다. 그는 “처음 오페라의 유령 공연을 기획할 때는 보복소비로 기대가 높을 때였다”며 “3월부터는 공연계에서도 경기 침체가 느껴져 예측한 만큼 흥행하지는 못했지만 경기 상황을 고려하면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설 대표의 인터뷰에서는 유독 ‘소비’ ‘경기’ ‘수익 모델’ 등 문화 예술계 인사를 만났을 때 좀처럼 듣기 힘든 단어들이 쏟아져나왔다. 설 대표는 공연계에서 드문 ‘비즈니스맨’이다. 2001년 형 설도윤 프로듀서와 함께 국내에 처음 막을 올린 ‘오페라의 유령’은 한국 뮤지컬 시장의 분기점이 됐다. 오리지널 작품의 라이선스를 사고 이를 제작해 티켓을 판매하고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시스템은 저작권 개념이 없던 국내시장에서 파격적 행보였다. 이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위키드’ 등 내놓는 작품마다 흥행에 성공하며 두 형제는 한국 뮤지컬계의 ‘워쇼스키 형제’가 됐다.

이들 형제가 한국 뮤지컬 산업에서 이뤄낸 여러 가지 업적 중 최근 가장 주목받는 것은 ‘드림씨어터’다. 2019년 4월 부산 남구 문현혁신도시 국제금융센터에 개관한 드림씨어터는 같은 해 ‘라이온 킹’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공연을 올리고 전 회차 전 석을 매진시키는 기록을 세웠다.

시작부터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부산이라는 지역에 2000석 규모의 뮤지컬 전용 극장을 세우는 결심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오페라의 유령 등 대형 뮤지컬은 대부분 서울에서 공연을 시작해 지방에서 3~5회 올리거나 혹은 서울에서만 공연을 진행하고 막을 내린다. 국내에서는 아무리 서울이어도 3개월 이상 공연을 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극장 뮤지컬뿐 아니라 클래식·국악·발레 등 수많은 공연이 서울의 대극장에서 진행되는 까닭에 극장은 공연계의 ‘갑’이다.

이런 구조는 해외의 명품 공연을 국내에서 선보이겠다는 설 대표의 사업 추진을 어렵게 만들었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 초연 이후 뮤지컬 시장이 성장하고 있었지만 2014년까지도 해외 제작사들에 한국은 신뢰하기 어려운 뮤지컬 변방 국가였기 때문이다. 한 극장에서 여러 공연이 연달아 진행되는 탓에 무대 설치 준비 기간이 한 달도 되지 않는 환경은 해외 제작사들 기준에서 터무니없는 제안이었다.

설 대표가 뮤지컬 전용 극장을 세워야겠다는 결심을 한 이유다. 그는 “공연 무대 장치를 설치하고 배우들이 연습을 하는 데는 60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한 달 사이에 속성으로 준비할 수밖에 없다”며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온 관람객에게 최상의 조건에서 공연을 서비스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지역을 부산으로 정하고 추진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지방이어도 장기 공연을 해야 했고 동원 가능한 관객 수가 일정 수준 이상 예상돼야 했는데 대구·부산·광주가 후보지로 올랐다. 이 중 축제가 많고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적극적인 대구가 가장 먼저 물망에 올랐다. 설 대표는 “여름 시즌이 되면 무조건 사람이 몰리는 부산에 굳이 문화생활을 위한 장소를 구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4년 부산이 도시재생 사업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 서울 여의도와 같은 금융 타운을 조성하려는 부산시에 뮤지컬 전용 극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그는 “금융가는 주말이 되면 인파가 모두 빠져나가 썰렁하기 때문에 지역을 활성화하려면 주거 공간과 기타 집객 시설이 필요하다”며 “복합 상업 시설을 만들고 여기에 뮤지컬 전용 극장을 세우자는 아이디어를 설 프로듀서가 부산시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장소만 내줬다. 이후 공연장을 완성하는 과정은 설 대표 표현대로 ‘피 말리는 전쟁’이었다.



5일 서울 논현동 클립서비스 본사에서 설도권 클립서비스·드림씨어터 대표가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욱 기자


뮤지컬 공연에 대한 인식이 낮은 2014~2017년에는 어느 금융기관도 뮤지컬 전용 극장 건립을 위한 대출을 해주지 않았다. 설 대표는 “공연장은 시설이 도산해 폐기할 때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종교 시설보다도 금전적 가치가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한 곳의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드디어 부산 유일의 1500석 이상 객석을 갖춘 극장 드림씨어터가 개관했다. 전국적으로 1500석 이상의 객석을 보유한 공연장은 서울에도 블루스퀘어 한 곳뿐이다.

2001년부터 다져온 사업 수완으로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모험이다. 이토록 큰 비용을 들여 부산에 뮤지컬 전용 극장 건립을 추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설 대표는 ‘거점 지역’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언급했다. 그는 “좋은 공연을 올리려면 전용 극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뮤지컬의 특색에 맞는 음향 장치와 안정적인 무대 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것. 그는 “공연장이 한곳에 안정적으로 위치해 하나의 공연을 장기적으로 제대로 진행할 수 있어야 아직 한 번도 뮤지컬을 접하지 않은 사람이 한 번쯤 와볼 수 있는 곳이 된다”며 “그렇게 공연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 시장이 자연스럽게 커진다”고 말했다. 부산뿐 아니라 이런 거점 지역이 계속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국내시장이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드림씨어터 관객은 절반이 부산·경남 지역에서, 절반은 서울에서 온다. 부산·경남 지역에 대형 공연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목표와 뮤지컬 공연을 보기 위해 한 지역이 타 지역에서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는 두 가지 목표가 모두 실현되는 것. 공연장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셈이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수백 명의 스태프와 배우가 부산에 상주한다. 이들이 지역 상권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지속적으로 타 지역 사람들이 유입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구조를 만드는 데까지는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극장이 있는 BIFC의 카페는 금융인들이 퇴근하는 저녁, 주말 시간대에는 운영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이 먼저 도착하거나 공연이 끝난 후 머물 카페가 필요하다. 이에 드림씨어터는 건물 3층의 카페를 직접 운영하며 관객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했다.

5일 서울 논현동 클립서비스 본사에서 설도권 클립서비스·드림씨어터 대표가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욱 기자


이번 ‘오페라의 유령’ 흥행도 단지 작품 자체와 조승우라는 배우 때문만은 아니다. 극장 개관 당시 6주간 ‘라이온 킹’을 공연했다. 당시 설 대표는 경남 지역 관객이 공연을 더 보는 것이 극장의 미래에 더 좋다고 판단해 인터내셔널 투어를 앞두고 있는 디즈니에 1주 공연 연장을 요청했다. 디즈니 역시 이런 설 대표의 진심을 알아줘 1주일 공연을 연장했고 해당 지역에 뮤지컬 팬덤이 커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는 “콘텐츠가 좋으면 시장은 커질 수 있다”며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서지혜 기자, 사진=권욱 기자

He is…

△1963년 경북 포항 △1988년 홍익대 경영학과 졸업 △1995년 T&S컴퍼니 마케팅 총괄 △2000년~ 클립서비스 대표 △2000년~2021년 ‘더뮤지컬’ 발행인 △2003년~ ‘캣츠’ ‘아이 러브 유’ ‘오페라의 유령’ ‘위키드’ ‘라이온 킹’ ‘하데스타운’ 등 공동 프로듀서 △2019년~ 드림씨어터 대표 △2019년 클리오 엔터테인먼트 어워즈 동상(라이온 킹) △2021년 한국뮤지컬어워즈 공로상 △2022년 한국뮤지컬어워즈 대상(하데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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