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은 기관장 5명이 정부의 해임 건의 두 달 만에 모두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들로 임기가 아직 1년 안팎이나 남았지만 부실 경영의 책임을 면하지 못했다. 해임 건의 대상 기관장이 모두 옷을 벗으면서 경영평가에서 경고 조치를 받은 또 다른 전임 정부 출신 기관장들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린다.
20일 한국소방기술원에 따르면 김일수 소방기술원장은 이달 16일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1년 9월 임명된 김 원장의 임기는 내년 9월까지다. 임기가 아직 1년 넘게 남아 있는 김 원장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올 6월 발표된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기관장 해임 건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193개 공공기관을 평가한 결과 ‘E(아주 미흡) 등급’을 받은 한국건강증진개발원·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과 2년 연속 ‘D(미흡) 등급’을 받은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한국소방산업기술원·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등 총 5개 기관장에 대해 소관 부처 장관에 해임 건의를 했다.
마찬가지로 해임 건의를 받은 권기영 에너지기술평가원장도 1년 가까이 임기가 남았지만 이달 14일 자진 사퇴했다. 김태곤 건설기계안전관리원장 역시 해임 건의 한 달 만인 지난달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고 감신 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은 해임됐다. 조현장 건강증진개발원장은 품위 손상과 직무상 의무 위반 등의 사유로 기재부의 해임 건의 사흘 만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해임 처분됐다. 이에 불복한 조 전 원장은 복지부를 상대로 행정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해임 건의 대상에 이름을 올린 공공기관장 전원이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경고 조치를 받은 또 다른 기관장의 물갈이로 이어질지 관심이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 경고 조치가 내려진 기관은 국가철도공사·강원랜드·석탄공사·농어촌공사 등 총 12곳이다. 이중 지난해 11월 취임한 이한준 토지주택공사(LH) 사장을 제외한 나머지 11곳의 기관장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들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 (금융감독원 부원장) 임기를 마치는 게 치욕스러웠다’는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발언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의 ‘알박기 인사’를 겨냥한 정부 여당의 사퇴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달 3일 “올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역대 최대인 17명의 기관장이 실적 미흡으로 인사 조치를 받았는데 이중 16명이 전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라며 “현 정부의 국정 철학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챙길 건 다 챙기겠다는 심보로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업무가 제대로 될 리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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