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후에는 소아 고형암 환자의 유전체 검사, 전문가 진단, 맞춤형 치료에 이르는 생태계가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피지훈(사진) 서울대 의과대학 신경외과 교수는 1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매년 400여 명 발생하는 소아 고형암 환자 중 3년 후에는 80~90%, 5년 후에는 전부를 유전체 분석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는 것이 1차 목표”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피 교수는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 사업의 소아 고형암 총괄을 맡고 있다. 고형암은 인체 장기에서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암을 일컫는데 뇌종양, 신경모세포종양, 복강 내 종약, 골육종, 안구종양 등이 여기에 속한다. 국내에서는 1년에 약 800명의 소아암 환자가 발생하고 이 중 절반이 고형암 환자다. 혈액세포에서 발생하는 백혈병 치료율은 75~80%인 데 반해 고형암 치료율은 60~70%로 현저히 낮다. 특히 고형암의 40%를 차지하는 뇌종양의 경우 일부는 생존율이 0%다.
소아 고형암은 진단부터 쉽지 않다. 발생 장기도 다양하고 각각의 종양이 수많은 아형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 유전체 분석 도입으로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졌지만 분석과 진단 과정이 표준화돼 있지 않으며 비용도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 수준으로 비싸다. 더구나 유전체 분석은 국내 몇몇 병원에서만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건희 소아 고형암 정복 사업은 전국 소아암 환자들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유전자 변이를 찾아내 정확한 진단과 맞춤 치료를 구현하는 플랫폼을 구축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주요 대학의 교수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유전체 분석 결과를 검토하고 진단을 확인한다. 환자의 종양세포에 효과가 있는 추천 약을 미리 실험해 치료 선택에도 도움을 준다. 모든 검사는 무료다.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의 유족이 소아암·희귀질환 연구를 후원하기 위해 서울대병원에 기부한 3000억 원 중 일부가 여기 쓰인다.
또 다른 문제는 추천 약이 있어도 국내 환자들이 쓸 수 없다는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고형암 치료제는 극히 일부이며 대부분 임상시험 중이다. 민관이 참여하는 생태계가 필요한 이유다. 독일은 ‘인폼(INFORM)’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소아암 치료의 접근성을 높였다. 피 교수는 “추천 약이 나오면 제약사를 끌어들여 환자에게 약을 공급하라고 한 다음 1대1 임상시험을 한다”면서 “성인과 소아 모두에게 발생하는 병이면 소아에 대한 임상시험도 해야 임상계획을 허가해주는 규제가 있어 제약사들이 적극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첫발은 ‘소아 고형암 정밀의료사업(STREAM)’으로 뗀다. 검사부터 진단·치료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병원뿐만 아니라 업계에도 만들겠다는 포부다. 에임드바이오·지놈인사이트 등 국내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고 로슈 등 글로벌 빅파마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도 후원하고 있다. 바이오협회 관계자는 “표준화된 치료법을 정립해 전국의 환자들이 동일한 의료 혜택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바이오헬스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같다”고 말했다.
피 교수는 “제약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소아에 대해서는 허가의 문턱을 낮추거나 임상시험을 적극적으로 장려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인폼 같은 해외 프로그램과 연계해 환자들이 유럽에서도 임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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