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진드기 등 감염병을 옮기는 해충이 계절적으로 확산하는 시점이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점점 빨라지면서 방역당국이 처음으로 5개년 단위 중장기 대책을 마련했다.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모기 감시장비(AI-DMS)와 밀도 자동 계측 장비 등을 이용한 ‘스마트 감시체계’를 앞세워 실시간으로 발생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키로 했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11일 충북 청주시 오송 청사에서 열린 건강브리핑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감염병 매개체 감시·방제 중장기 계획(2025∼2029)’을 발표했다. 지 청장은 “최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감염병 매개체의 서식지와 활동기간이 확대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매개체 전파 감염병의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감염병 매개체는 바이러스·세균·기생충 등 병원체를 사람, 동물 같은 숙주에 전파하는 생물학적 운반체를 말하며 모기·참진드기·털진드기가 대표적 매개체로 꼽힌다.
모기·진드기 등이 옮기는 감염병으로는 일본뇌염, 말라리아, 쓰쓰가무시증,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등이 있다. 실제로 2015~2024년 평균기온이 약 1.4도 오르면서 일본뇌염 주의보 발령 시기가 16일가량 빨라졌다. 쓰쓰가무시증의 주요 매개체인 활순털진드기도 2020년대 들어 고온 건조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분포지역이 전국적으로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년에는 여름에 주로 눈에 띄던 모기와 진드기의 활동기간이 봄부터 늦가을까지 길어진 것이다.
이에 질병청은 감염병 발생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지속 가능한 감시·방제 체계를 구축하고자 중장기 계획을 마련했다. 우선 권역별 매개체 감시 거점을 현재의 16곳에서 30곳 이상으로 늘려 전국적 감시망을 구축하고, 자체 개발한 AI-DMS와 밀도 자동계측 장비를 적용한 ‘스마트 감시체계’를 구현한다. AI-DMS는 질병청이 3년간의 연구개발(R&D)을 거쳐 자체 개발했다. 총 6대를 제작해 파주, 동탄, 청주, 부산 을숙도, 순천만 습지 등 5곳에 설치했으며 남은 한 대는 해외 협력 차원에서 아프리카 남수단에 파병된 한빛부대에 8월 중 설치할 예정이다. 2028년까지 태국,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도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당국은 이 같은 감시체계를 통해 모기 발생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하고, 감시 소요 기간을 기존 7일에서 24시간 이내로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희일 질병청 매개분석과장은 “스마트 감시체계가 5종의 모기를 감시·분석 중”이라며 “앞으로 장비 수와 매개체 종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AI-DMS는 현재 작은빨간집모기·빨간집모기·흰줄숲모기·금빛숲모기·얼룩날개모기류 등 국내에서 주로 관찰되는 모기 5종을 95% 이상의 정확도로 식별한다. 향후 학습을 통해 9종까지 분석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 공항·항만을 통한 해외 유입 매개체 감시를 강화해 이집트숲모기, 열대집모기 등 아열대성 매개 모기의 토착화를 방지하기로 했다. 특히 제주 등 기후변화 영향이 큰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감시센터를 설치한다. 농림축산식품부·환경부·농촌진흥청 등 관계 부처와 협력해 매개체 감시를 위한 고공 포집기의 부처 간 공동 활용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생산한 매개체 감시정보를 통합하고 ‘매개체 감시정보 플랫폼’을 구축해 지역별·시기별 발생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한다.
질병청은 이 같은 감시 결과를 토대로 과학적 방제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해 올해 10% 수준인 근거 중심 매개체 방제 비중을 2029년 50%로 점진적으로 확대한다. 근거 중심 매개체 방제란 모기 등 매개체 발생 정보를 기반으로 그 밀도에 따라 방제 여부를 판단하고 그 활동을 방제지리정보시스템(GIS)에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2023년에 이 방법을 통해 감시를 수행한 결과 방제활동이 59.9% 줄어들었는데도 모기 발생률은 23.1%, 주민 민원은 63.3% 각각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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