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기 진작과 민생 안정을 위해 30조5000억원을 푼다. 이재명 정부의 첫 추경이자 역대 네 번째로 큰 규모다.
정부는 지난 19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30조 5000억 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심의·의결했다. 이번 추경은 이 대통령 당선 이후 15일 만에 편성돼 당선일 기준 역대 최단 기간 추경에 해당한다. 규모로는 역대 네 번째다.
이 대통령은 추경안을 심사하면서 “건전재정의 원칙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침체가 너무 심각하다”며 “국가 재정을 이제 사용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번 추경은 세수 결손을 메꾸기 위한 세입 경정 10조 3000억 원과 세출 확대 20조 2000억 원으로 구성됐다
이번 추경의 핵심은 전 국민 대상 민생회복지원금이다. 소비쿠폰 형태로 지급되며 소득에 따라 상위 10%는 15만 원, 일반 국민은 25만 원, 차상위층은 40만 원, 기초생활수급자는 50만 원을 받는다. 농어촌 인구 소멸 지역은 1인당 2만 원이 추가된다. 이재명 정부의 대표 경제 공약인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지원 예산은 6000억 원 늘려 총발행 규모를 29조 원까지 늘리기로 했다
자영업자와 서민을 위한 채무 조정도 포함됐다. 총채무가 1억 원 이내면서 중위소득 60% 이하 소상공인은 새출발기금을 확대해 원금의 90%를 깎아준다. 남은 금액은 최대 20년 분할상환할 수 있게 한다.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 원 이하 개인과 자영업자의 소액 대출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일괄 매입한다. 원금 최대 80% 감면 및 10년 분할상환을 지원한다. 저소득층이면서 자산이 없는 경우에는 전액 탕감해준다. 두 프로그램을 더하면 총 123만 4000명이 진 빚 22조 6000억 원이 지원 대상이다.
이 대통령 당선 이전 편성된 1차 추경(13조 8000억 원)에 30조 5000억 원의 2차 추경까지 더해지면서 나라 살림에는 경고등이 켜졌다. 2차 추경에 따른 국가채무는 1300조 6000억 원으로 사상 최초로 1300조 원을 돌파하게 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2024년 47.4%에서 올해 말 49.0%로 껑충 뛰어오른다. 정부의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또한 110조 4000억 원 적자로 GDP 대비 4.2%로 상승하게 된다. 임기근 기획재정부 2차관은 “GDP 대비 3%의 적자(재정준칙)를 경직적으로 준수하는 것은 오히려 경제와 재정 운용에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우선 내수 활성화를 위해 전 국민에게 15만~52만 원의 ‘민생회복 소비 쿠폰’을 지급하기로 했다. 여기에 투입되는 예산이 10조 3000억 원이다. 이번 소비 쿠폰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되 1·2차로 나눠 소득 구간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식이다.
1차로는 보편 지급 방식으로 차상위와 기초생활수급자를 제외한 모든 국민에게 15만 원씩 지급하고 차상위 계층 38만 명에게 30만 원, 기초생활수급자 271만 명에게는 40만 원이 일괄 지급된다. 또 84개 인구 소멸 지역에 거주하는 국민에게는 2만 원이 추가 지급된다. 이어 2차로는 건강보험료 납부액을 기준으로 소득 하위 90% 가구에 10만 원을 추가 지원한다. 1·2차를 모두 지급받게 되면 소득 상위 10%는 15만 원, 일반 국민은 25만 원, 차상위 40만 원, 기초수급자 50만 원을 받게 되는 셈이다. 4인 가구 기준으로 환산하면 지원금이 최대 200만 원에 이른다. 여기에 인구 소멸 지역에 거주하는 국민이라면 1인당 2만 원을 더 받을 수 있다. 지급 수단은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선불카드, 신용·체크카드 중 선택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추경안을 23일 국회에 제출할 예정으로 국회 통과와 전산 시스템 정비 등을 고려할 때 소비 쿠폰 1차 지급은 이르면 다음 달 중순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초·차상위 계층은 이미 명단이 확보돼 있어 1차 지급분은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한 시점을 기준으로 2주 이내 바로 집행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2차 지급분은 소득 상위 10%를 제외하고 추가 지급하기 때문에 소득 기준을 분류하는 데 행정적으로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 있다는 것이 기재부의 설명이다. 유병서 기재부 예산실장은 “2020년에 집행할 때 콜센터에 44만 건 정도 문의가 왔다”면서 “소득과 건보료도 전년도나 전달 기준으로 하는지, 직장이냐 지역이냐에 따라 다른 데다 출생 시기나 지급 시기부터 해서 다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의 대표 경제 공약인 지역화폐 발행 예산에도 6000억 원이 추가 투입된다. 앞서 1차 추경에서 확보한 4000억 원과 합쳐 총 1조 원이 마련되면서 연간 지역화폐 발행 규모가 역대 사상 최대인 29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 지자체 재정 여건에 따라 구매할 때 적용되는 할인율도 지역에 따라 차등 적용한다. 수도권은 국비 지원 5%, 소비자 할인율 7~10% 수준이지만 인구 감소 지역의 경우 국비 지원율 10%, 소비자 할인율 15%까지 확대된다. 소비자 체감 할인율을 전국 모든 지역에서 다 끌어올리되 지방이나 인구 감소 지역에서 더 많이 체감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소비 확대를 위한 다양한 할인 지원 예산도 마련됐다. 우선 숙박·영화·스포츠·미술·공연 등 5대 분야에 대한 할인 쿠폰 780만 장이 배포된다. 예컨대 영화는 1회당 6000원, 공연은 1만 원, 숙박은 1회당 2만~3만 원까지 할인된다. 숙박 쿠폰은 여기어때 등 플랫폼 앱을 통해 자동으로 적용되며 공연·전시는 사전 예약을 통해 사용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숙박(50만 장), 영화 관람(450만 장), 스포츠 시설(70만 장), 미술 전시(160만 장), 공연 예술(150만 장) 등 총 780만 장의 쿠폰을 선착순 배포하기로 했다.
에너지 고효율 가전기기 구매 환급 제도(3261억 원)도 신설됐다. 구매 환급 대상은 냉장고·TV·에어컨 등 에너지효율 1등급 적용 중인 11개 품목으로 구매 비용의 10%를 최대 30만 원 한도에서 환급받을 수 있다. 고효율 가전기기 제품을 소비자들이 구매할 경우 결제액의 10%를 에너지공단이 환급하는 것으로 2020년 사업(3000억 원)을 5년 만에 다시 가동하는 것이다.
취약 계층 지원 방안도 마련됐다. 국민취업지원제도 대상 인원을 기존 30만 5000명에서 36만 명으로 늘리고 구직 급여도 1조 3000억 원 추가 투입해 지원 인원을 늘리기로 했다. 식품 물가 상승에 대응해 국내산 농산물 가공 업체를 대상으로 50억 원 한도로 최저 2.3%의 저금리 대출을 지원할 계획이다. 또 인공지능(AI) 등 유망 벤처·중소기업에 대한 투자를 9000억 원 늘리고 인공지능전환(AX)과 신재생 발전설비 대출과 보조금도 3000억 원 증액하기로 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추경의 핵심은 지역 경제 살리기”라며 “지역화폐 할인률을 차등화해 효과를 최대화하는 방안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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