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산불을 비롯한 각종 재난이 늘어날수록 노약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더 많은 피해를 입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대형산불과 같은 재난 또한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발생해, 잇따른 재난으로 지역사회 인구소멸 추세가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2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재난취약집단 건강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재난 관련 피해를 겪을 경우 노년층의 21.4%, 빈곤층의 24.7%, 장애인층의 29.3%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으로 분류될 만큼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똑같은 재난을 겪은 일반 집단 대비 이들 사회적 약자들이 ‘고위험군’에 속할 확률이 최소 10%포인트 이상 높을 정도로 피해가 큰 상황이다.
보고서는 “재난에 따른 신체적 피해 발생 시 (사회적 약자 층은) 의료비와 같은 경제적 부담과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 어려움이 더욱 크다”며 “무엇보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인 증가, 법령 개정 등을 통한 장애인 범주 확대, 정보기술(IT) 기기 사용 숙련도에 따른 디지털 격차, 플랫폼 노동자 증가 등으로 재난취약 집단이 크게 늘고 있는 만큼 관련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올 봄 발생한 영남 대형산불의 사망자 31명 중 29명이 60대 이상 고령층이었다. 60대 이상은 젊은 층 대비 상대적으로 거동이 불편한데다 재난문자에 대한 대응도 느릴 수밖에 없어 산불과 같은 재난 발생 시 대응이 쉽지 않은 구조 탓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발생한 국내 화재 피해자 1만888명 중에서 장애인·노인·어린이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비중은 36.4%로 3958명에 달하기도 했다.
각종 재난이 지역사회 인구소멸을 가속화 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산불로 고통받고 있는 강원과 경북의 인구밀도는 2023년 기준 ㎢ 당 각각 91명 137명으로 나란히 끝에서 1, 2위를 기록중이다. 특히 이번 산불로 피해로 입은 고령층 일부는 ‘산불 트라우마’로 자식들이 살고 있는 대도시 지역으로의 이사를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연구재단 또한 이와 관련한 우려를 제기한다. 연구재단은 ‘느린 재난 앞에서 선 노인’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2022년 동해안 산불에 따라 특별재난지역에 포함된 지역 중 강원도 삼척시와 동해시 일부 지역의 고령화율은 34.3%~46.8%에 달했으며, 이들 지역 노인층이 시외로 이동(이사)하는 경향이 관찰됐다”며 “동해안 산불로 2022년 강릉시 인구는 1년전 대비 20%가 동해시 인구는 13%가 각각 감소했으며, 이 같은 수치는 산불 피해 지역이 겪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고령화와 인구소멸에 대비한 행정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인구 밀도가 높은 곳 대비 인구 밀도가 낮은 곳은 행정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재난 안전 분야 대응력도 자연스레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보다 강력한 경보체제나 대처방안 마련과 같은 지역 맞춤형 재난안전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인구소멸 지역의 인구유출도 가속화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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