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권을 사고 파는 글로벌 대형 사모펀드(PEF)들이 한국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만 최소 100억 달러(약 13조 9220억 원) 이상 모아두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상법 개정으로 국내 자본시장에 변화가 몰아치는 가운데 글로벌 PEF들의 활동 폭이 더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21일 서울경제신문 조사 결과 글로벌 주요 8개 운용사들이 지난해 조성을 완료했거나 현재 조성중인 아시아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PEF 규모는 약 696억 달러(약 96조 911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들은 아시아 펀드에서 평균 15%가량을 한국에 할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시 총 104억 달러(약 14조 5000억 원)를 국내에 투자할 수 있을 전망이다. 코인베스트먼트 펀드와 인수금융까지 합하면 30조 원 넘는 자금이 한국 시장에 투입될 수 있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올 하반기부터 아시아 지역에 투자할 역대 최대 규모 바이아웃 펀드 결성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목표액은 이전치를 뛰어넘는 200억 달러다. EQT파트너스는 올 상반기 114억 달러 규모로 신규 아시아 펀드 1차 모집을 마감했다. 최종 목표치는 125억 달러다. EQT는 현재 코스피 상장사 더존비즈온 경영권 인수 협상을 진행중이다. 블랙스톤은 지난해부터 조성을 시작한 신규 아시아 펀드 목표액을 100억 달러로 조준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준오헤어 경영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베인캐피탈도 지난달부터 70억 달러 규모의 새 아시아 펀드 조성에 착수했다.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는 연내 시작할 신규 펀드 목표액을 60억 달러로 잡아뒀다. CVC캐피탈과 텍사스퍼시픽그룹(TPG)은 지난해 조성한 아시아 펀드를 각각 68억 달러, 53억 달러 수준으로 모집 완료했다.
투자은행(IB) 업계는 소수지분이나 메자닌 투자를 병행하는 크레디트 펀드, 인프라 펀드까지 한국에서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는 만큼 글로벌 자본의 공습은 더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한국 위주의 바이아웃 펀드들도 펀드 규모를 늘려잡는 추세다.
MBK파트너스가 연내 70억 달러를 목표로 한·중·일 신규 펀드를 조성하고 있으며 한국에만 투자하는 PEF 중 한앤컴퍼니가 35억 달러 규모로 지난해 펀드를 조성했다. 토종 운용사 중 IMM프라이빗에쿼티(2조 원),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1조 5000억 원) 등 조단위 펀드를 결성하는 곳들도 늘었다.
이재명 정부가 코스피 5000 달성을 목표로 증시 부양에 큰 의지를 나타내면서 한국을 향하는 글로벌 자본들의 관심은 더 늘고 있다는 평가다. 글로벌 PEF들은 주주 충실 의무를 명문화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배당세 개편, 자사주 의무 소각, 의무공개매수제도 등의 정책들이 도입되는 상황을 눈여겨 보고 있다.
일본 시장의 거버넌스 개선이 증시 부양에 효과를 내자 한국에서 비슷한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국내에서 최근 공개매수를 수반한 경영권 거래의 물꼬가 트이면서 비슷한 방식의 거래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일각에선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점차 늘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PEF 관계자는 “한국에서 IT, 뷰티, 콘텐츠 분야 매물을 찾고 있다”며 “최대주주 지분을 수반한 경영권 인수가 타깃이지만 협상 불발시 적대적 M&A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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