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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범 칼럼] 우수 연구인재 유출 막으려면

박철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야구 선수들은 미국·일본 등에서 온 스카우트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난 뒤 메이저리그(MLB)나 일본 프로야구(NPB)로 진출하곤 한다. 한국에 비해 수십 배 많은 연봉을 받고 훨씬 나은 환경에서 운동하는 해외 진출 선수들이 그곳에서도 훌륭한 성과를 올리는 것을 보면 그 선수들의 자아실현을 넘어 국민들도 자부심을 느끼고 응원을 보내준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김하성·김혜성·이정후 선수들이 그러한 예다.

하지만 국내 대학교의 스타 교수들이 보다 나은 연구환경과 높은 연봉에 이끌려 해외 대학으로 이직하는 것을 보는 시선은 스포츠 스타들의 해외 진출을 보는 것과 사뭇 다른 것 같다. 얼마 전 서울대 경제학부의 교수 2명이 홍콩과학기술대학교로 옮긴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일부 언론들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렇게 인재가 유출되면 국내 연구 생태계가 붕괴되고 나아가서는 국가 경쟁력이 약화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 근대 역사에서 새로운 과학을 받아들여 발전시키는데 뒤처지는 바람에 국력이 약해진 아픈 경험이 있으므로 현재의 인재 유출이 특히 더 염려된다면 이러한 상황을 낳은 원인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살펴보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보도에 의하면 이번에 서울대에서 홍콩과기대로 이직하는 경제학자의 경우 약 4억5000만 원 수준의 연봉과 높은 연구비를 제시받았다고 한다. 연봉만으로도 4배 정도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이 전체주의 국가가 아닌 이상 보다 나은 대우를 받고, 보다 나은 환경에서 연구하기 위해 떠나는 인재들을 애국이라는 미명 하에 강제적으로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가 오타니 쇼헤이를 스카우트해 탁월한 야구 실력을 직접 보고 싶으면 LA다저스보다 높은 연봉을 제시해야 하는 것처럼 세계 수준의 학자를 유치하고 보유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연봉과 연구비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대학의 재정상황을 보면 교수의 연봉을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제시할 형편이 안된다. 한국처럼 교육열이 높은 사회에서 대학들이 열악한 재정 환경에 처한 가장 큰 이유는 ‘반값 등록금’이라는 정치적인 구호 아래 오랜 기간 유지된 등록금 동결이다. 20년 가까이 등록금이 동결되다 보니 대학 등록금이 영어유치원 등록금보다 낮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시간당 수강료로 계산해보면 5개 과목 이상 수강하는 학생의 경우 2만 원을 밑도는 실정이다. 저소득 계층의 학생들을 위한 국가 장학금 제도가 있음에도 정치적인 이유로 등록금이 계속 동결되다 보니 교수들의 연봉은 정체됐다. 또 이러한 모습을 본 우수한 학생들의 대학원 진학이 줄었으며 해외에서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돌아오지 않는 반면 국내 연구자들이 한국을 등지는 ‘연구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국내에 남아있는 교수들도 생계를 위해 외부 심사위원이나 평가위원 등 가욋일을 늘리다 보니 연구 역량이 더 떨어지고 있다.

물론 교수들의 연봉을 단순히 인상만 한다고 인재 유출의 문제가 해결되고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상승하지는 않을 것이다. 학문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교수들의 연구 성과가 연봉에 파격적으로 반영되도록 보상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젊은 학자들을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연봉으로 유치하되 정년보장기준 등도 국제적인 기준에 맞게 상향해 일정 기간 지난 후 실적이 만족스럽지 않은 교수는 냉정하게 평가받도록 제도도 수정해야 할 것이다. 교수들이 생계형 외부활동을 하지 않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상과 인센티브 제도를 혁신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교육공약 중 하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라고 들었다. 연구 측면에서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대학교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훌륭한 인재를 유치하고 그들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교의 등록금까지 간섭하는 교육부의 불필요한 규제는 철폐하고 경쟁을 유도하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현재 상위권 대학의 질을 떨어뜨려 10개의 저질 대학교를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인재들을 유치해 서로 경쟁하는 연구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대학 교육의 제도·규제·환경 전반에 걸친 혁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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