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연루설로 정치적 위기에 처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돌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주도했다”고 주장하며 국면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공화당은 엡스타인 관련 자료 공개를 요구하는 하원 표결을 막기 위해 여름 휴회까지 앞당기는 등 사태 확산을 막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22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엡스타인 관련 질문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오바마 전 대통령을 거론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갱단의 두목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라며 “그는 쿠데타를 주도했다”고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이는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선거 캠프가 러시아 측과 공모해 대선 개입을 유도했다고 알려진 이른바 ‘러시아 게이트’를 오바마 전 대통령 주도 하에 이뤄진 정치 공작이라며 주장을 펴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이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조 바이든 전 대통령 등도 “잘못을 저질렀다”며 민주당 인사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비난했다.
이러한 발언의 배경에는 18일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공개한 자료가 있다. 이 자료에는 오바마 행정부 인사들이 러시아가 미 대선에 개입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정보를 조작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트럼프는 기다렸다는 듯이 21일 오바마 전 대통령이 연방 요원들에게 체포되는 장면이 담긴 딥페이크 영상을 트루스소셜에 올리기도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 측의 대변인인 패트릭 로덴부시는 “관심을 분산시키려는 시도”라며 “어처구니 없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이 갑자기 오바마 전 대통령을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일파만파 확산하는 엡스타인 연루 의혹을 덮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초반에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확산하던 트럼프와 엡스타인의 연루설이 이제는 공화당과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등 전통 지지층까지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화당은 엡스타인 사태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이번 회기를 조기 마감하고 여름 휴회를 앞당겼다. WSJ에 따르면 공화당 지도부가 당초 24일 예정이었던 이번 회기 마감을 23일로 앞당기고 9월까지 휴회하기로 결정했다. 미 하원 규칙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법무부에 엡스타인 관련 문건 공개를 촉구하는 안건을 잇달아 내놓을 태세를 보이자 제동을 걸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AP통신은 “휴회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압박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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