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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탄소 녹색성장 성패의 시금석, 그린홈

건물은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25%를 차지한다. 오는 2030년에는 그 비중이 34%까지 증가할 전망인데, 이 가운데 주거용 건물의 에너지 소비량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거용 건물의 에너지 절감 없이는 에너지 위기 극복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그린홈은 이를 직시한 정부가 지난해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의 하나로 내놓은 해법이다. 에너지 사용량은 최소화하고 에너지 자립도는 극대화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는데, 궁극적인 목표는 화석연료를 전혀 소비하지 않는 탄소제로 주택을 개발·보급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린홈은 환경과 에너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의 성패를 가늠할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지난해 8월15일 이명박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정 과제로 제시한 이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녹색의 물결이다. 정부 정책은 물론 지우개 하나, 연필 한 자루에 이르기까지 친환경, 그린, 청정이라는 문구가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마치 저탄소 녹색성장을 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니다.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화석연료 사용량을 줄이고 환경친화적인 시스템 구축을 위해 훨씬 강도 높고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위기 의식이 깔려 있다. 과도한 화석에너지 소비와 그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지구환경과 인류공존이라는 형이상학적 가치보다는 국제적 합의에 따른 강제적 측면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기후변화협약과 그 이행 방안으로 체결된 교토의정서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선진 38개국은 지난 2005년 발효된 교토의정서에 따라 오는 2012년 이전까지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6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대에 비해 평균 5.2% 감축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번에 의무감축 대상국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2차 의무공약기간이 시작되는 오는 2013년에는 의무감축 대상국에 들어갈 것이 확실시 된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바로 이 같은 국제적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인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가 줄여야 할 온실가스 배출량은 결정되지 않았 다. 하지만 에너지 소비량 세계 10위,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9위 수준인 우리나라가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국가 전반에서 뼈를 깎는 노력이 불가피하다.

특히 건물 부문에서의 혁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건물은 국내 전체 에너지 소비량 중 무려 4분의 1을 사용하는 '에너지 먹는 하마'이기 때문이다. 건물에서의 에너지 다이어트 없이는 온실가스 감축도 에너지 위기 극복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건물은 산업부문이나 교통부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에너지 혁신이 거의 일어나지 않은 분야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인 주택의 그린 혁명

지난해와 올해 초 연이어 발표된 저탄소 녹색성장과 녹색뉴딜 정책에서 정부가 그린홈(Green Home)을 핵심 과제로 천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린홈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에너지 자립도는 극대화한 친환경 주택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난방, 전기, 온수의 공급을 위해 쓰이는 막대한 화석연료를 아끼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저감하겠다는 것.

궁극적인 목표는 아예 주택에서 사용되는 모든 에너지를 친환경 신재생에너지로 자급자족해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제야 첫발을 내디뎠지만 선진국들은 탄소배출 저감을 목표로 한 주택의 그린혁명이 상당히 진척돼 있다.

그중에서도 사회·문화적으로 환경에 민감한 유럽 국가들의 수준은 이미 연구와 실증, 시범보급을 넘어 상용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영국은 지난 2002년 런던 남부 서튼이라는 곳에 베드제드(BedZED)라는 세계 최초의 탄소제로 하우스 단지를 건설했다. 3층형 공동주택 단지로 구성된 베드제드에는 현재 82가구 100여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자연환기 및 자연채광형 설계·고성능 외단 열시스템·고기밀 창호 등으로 냉난방 에너지 사용량을 줄였고, 태양열과 풍력발전기로 전력을 공급받는다. 모자라는 에너지는 인근 숲에서 얻은 나무 조각을 태워 충당한다. 영국은 베드제드를 통해 얻은 노하우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오는 2016년부터 모든 주택을 탄소제로 주택으로 보급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독일은 유럽형 그린홈으로 불리는 패시브하우스의 선두주자다. 패시브하우스란 외부의 기계적 도움을 배재한 채 오직 건물 자체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탄소배출을 낮춘 친환경 주택이 다.

베드제드에서 신재생에너지 장치를 제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태양광, 태양열, 풍력, 지열, 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 장치를 활용하는 방식을 액티브하우스라고 칭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됐다.

패시브하우스의 칭호를 얻으려면 주택의 에너지 사용량이 ㎡당 15㎾h 이하여야 한다. 이는 일반주택 대비 10% 수준이다. 이 때문에 문, 창문, 벽체, 지붕 등 주택의 모든 부속물에 고단열·고기밀성 제품을 쓴다.

당연히 추가 부담이 있지만 신재생에너지 설비에 비하면 비용 대비 효용성이 오히려 높다. 또한 주거용 건물 외에 학교, 극장 등 모든 건물에 적용 가능하다는 사실도 큰 메리트다.

이로 인해 지난 1991년 독일 다름슈타트에 4가구가 처음 건설된 뒤 지금까지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에 약 2만5,000여 채가 지어졌다. 특히 프랑크푸르트는 올해부터 모든 건물을 패시브하우스로 설계해야만 건축허가를 내주고 있다.

혼선 빚는 한국의 그린홈 정책

미국의 경우 유럽과는 다소 상반된 형태의 그린홈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패시브 기술보다는 액티브 기술에 중점이 두어지고 있는 것. 그린홈의 지향점이 탄소제로 하우스라면 신재생에너지로 주택의 에너지 독립을 이루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판단에서다.

미국이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방향 설정에 한몫을 했다. 최후 단계의 목표 는 유럽과 동일하지만 그 같은 목표로 가기 위해 사용하는 중점 기술에서 시각 차이가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그린홈은 어떨까. 아쉽게도 아직까지 한국형 그린홈의 명확한 모습을 그려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처음 그린홈이라는 단어가 나온 지 9개월이 지났지만 사업 주체를 놓고 부처 간 힘겨루기(?)가 전개되면서 아직 정확한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그린홈 사업이 지난해 8월 대통령의 광복절 경 축사와 올해 1월 정부의 녹색뉴딜 정책 등 2차례 언급되면서 나타났다.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지식경제부가 주관이 된 '그린홈 100만 호 보급사업', 녹색뉴딜 정책에서는 국토해양부 주관의 '그린홈 200 만호 보급사업'이 발표된 것.

당시 정부는 200만호 보급사업과 관련, 신규 주택만 대상으로 한 기존 100만호 보급 사업에 기존 주택을 개·보수하는 형태의 그린홈 100만호를 추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표만 보면 사업주체가 지식경제부에서 국토해양부로 이관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5개월이 흐른 지금까지 두 부처는 별도로 사업을 추진 중이며, 추경예산도 각자 신청했다. 세부 추진 계획도 다르다. 지식경제부는 2020년까지 100만호, 국토해양부는 2018년까지 대한주택공사의 보금자리주택 사업과 연계한 75만호, 신규 주택 25만호, 기존 주택 개·보수 100만호 등 200만호를 모두 공급한다는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도 있다. 두 부처가 바라보는 그린홈의 콘셉트에 커다란 괴리가 있다는 것. 실제 지식경제부는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액티브하우스를 그린홈으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국토해양부는 유럽형 패시브하우스를 한국형 그린홈의 모델로 삼고 있다.

한마디로 지식경제부는 신재생에너지를 우선 적용해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고 추후에 패시브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토해양부는 패시브 기술을 최대한 적용한 이후 신재생에너지로 보강하자는 입장이다.

양측 모두 궁극적으로는 두 시스템을 융합해야 하며, 이를 위해 관계부처 간 협의를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주축 기술에 대한 생각이 달라 일원화된 결론이 도출되지 않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현 상태에서 태양전지 패널만 설치한 솔라 하우스도 지식경제부 입장에 서는 그린홈이지만 국토해양부 입장에서는 아닌 것이다.

패시브와 액티브, 양 진영의 대결

현재 양 부처는 자신이 사업주체임을 과시(?)하려는 듯 그린홈 보급 사업에 적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식경제부의 경우 산하기관인 에너지관리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를 통해 이미 그린홈 100만호 보급 사업을 개시했다.

태양광·태양열·지열·소형풍력·지열·바이오 등 6개 분야에 걸쳐 3,221호의 신규 주택을 건설하는데 405억 원의 보조금 지급을 승인한 상태다. 최근에는 국립과천과학관 내에 대국민 홍보용 그린홈 모델하우스의 건설에도 들어갔다.

국토해양부도 이에 질세라 올해 내 5만5,000 가구의 그린홈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주택공사가 건설하는 의정부 민락 2지구의 770세대를 그린홈으로 지을 예정이다.

또한 지난 4월 그린홈 등 녹색뉴딜 사업을 전담할 녹색미래전략 담당과를 신설했고, 지난달 14일에는 그린홈 성능등급 및 건설기준의 법적근거 마련을 위한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도 입법예고했다.

올해 내에는 세부적인 설계기준과 지원방안, 인증 제도까지 완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일원화된 정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보니 업무중복에 따른 예산낭비의 우려는 차치하고라도 그린홈 관련 기술을 연구· 개발중인 기업들이 사업계획 수립에 적잖은 혼선을 빚고 있다. 어 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르겠다는 한 건설기업 관계자의 볼멘 소리가 허언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다.

이들은 일단 각자의 이해관계에 맞춰 신재생에너지 업계는 지식 경제부, 친환경·고효율 건축자재 업계는 국토해양부에 힘을 실어주며 사태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연구기관들도 마찬가지다.

국토해양부에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지식경제부에는 에너지관리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이 지원부대로 나서 관련업계와 함께 각각 액티브하우스와 패시브하우스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논리 개발에 한창이다.

먼저 액티브 진영은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강조한 다. 신재생에너지센터의 한 관계자는 "일자리 창출, 새로운 성장 동력 육성 등의 측면에서 신재생에너지에 비중을 둬야 한다"며 "국내 패시브시스템 기술의 수준은 높지만 제품화가 안 된 것이 많다는 부분도 지적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패시브 진영은 탁월한 비용 대비 효과성에 더해 우리 나라의 환경적 특수성을 부각시키는 전략으로 맞선다. 건설기술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단독주택보다 다세대주택,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비중이 큰 국내 환경상 한국형 그린홈의 핵심은 공간 활용도가 낮은 공동주택을 탄소제로화 할 수 있는지 여부에 있다"며 "상당한 설치공간이 요구되는 액티브하우스형 그린홈은 우리와 맞지 않다"”고 강조한다.







탄소배출 제로 도시를 향해

양측의 주장이 이처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금 그린홈 사업이 어떤 방식으로 조율되고 전개될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단지 분위기 상으로는 패시브하우스 진영의 목소리에 좀 더 자신감이 묻어난다.

그린홈 프로젝트가 신재생에너지가 아닌 주택 보급 사업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국토해양부가 이행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자신감의 근원이다. 한계로 지적된 제품화도 내년 상반기면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과야 어찌되든 한국형 그린홈의 정확한 실체를 확인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과거의 전례를 감안할 때 지금과 같은 부처 간 업무중복과 예산낭비 지적이 제기되면 머지않아 정부 차원의 조정이 단행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가 이렇게 자중지란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다른 나라들은 성큼성큼 앞서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세계 각국에서는 최근 친환경 주택과 관련해 특징적 변화가 포착되 고 있다. 몇몇 주택이나 마을이 아닌 도시 전체를 탄소 제로화하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는 것.

220억 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 마스다르 시티가 대표적인 사례. 아부다비 인근 마스다르의 사막 7㎢ 부지에 들어서는 마스다르 시티는 주민 5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신도시로 모든 에너지를 자급 자족하도록 설계돼 있다. 도시 중심에는 대형 태양열발전소가 들어서고 곳곳에 풍력발전기도 설치된다.

또한 각 건물의 지붕과 외벽에 박막형 태양전지가 부착되며, 음식물 쓰레기를 연소시킨 신재 생에너지가 공급된다. 오는 2016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지난해 5월 역사적인 첫 삽을 떴다.

중국 상하이 동탄 섬의 86㎢에 2050년 완공될 신도시 역시 세계가 주목하는 탄소배출 제로 도시다. 거주인구 규모가 자그마치 50만 명에 달한다. 이곳 또한 태양열,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와 쌀겨를 태우는 바이오 화력발전소에 의해 도시 운용에 필요한 에너지 전량이 공급된다.

이외에도 덴마크가 수백 가구의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건물과 자동차에 필요한 에너지를 수소로 충당하는 세계 최초의 수소도 시 'H2PIA'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캐나다는 빅토리아 시의 한 선창가에 1,000호 규모의 고효율 에너지 주택단지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지식경제부의 그린홈 모델하우스 건설을 수주한 코오롱 건설의 한 관계자는 "탄소제로 주택, 탄소제로 도시 출현은 점점 가속화 될 것"”이라며 "앞으로는 아파트를 구매할 때 고급 내외장재의 사용 여부보다 탄소배출량이 얼마인지가 더 중시되는 사회가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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