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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식인동물

현생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당대 먹이사슬의 중간층에 머물렀다.

신장이 수컷 130cm, 암컷 110cm에 불과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자신보다 힘이 약한 동물은 잡아먹고, 자신보다 강한 동물에게는 먹잇감이 된 것이다.

여러 종류의 포식동물 화석과 함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부서진 유해 화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마디로 당대의 포식동물은 인류에게 천형과도 같은 공포였을 것이다.

그런데 인류가 먹이사슬의 최상위 계층에 올라선 지금도 포식동물은 식인동물이란 명칭으로 이름만 바뀐 채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식인 멧돼지를 소재로 개봉된 영화 역시 이 같은 공포 심리를 문화 콘텐츠로 상품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인간은 지구상의 먹 이사슬에서 최상위 계층을 차지하고 있다. 인간을 공격해서 무더기로 살상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뿐이다. 그 외의 모든 동식물은 인간의 먹이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먹이사슬의 최상위 계층을 차지한 것은 지구의 장구한 역사를 감안할 때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인간의 신체적 특징 및 진화과정을 전제로 하면 등장 초기에는 자연계의 약육강식 논리에 순응하며 사는 미미한 존재에 불과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현생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을 250만~400만 년 전에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꼽는다. 이들이 민꼬리 원숭이로부터 갈라져 나와 현재의 원숭이와 다른 독자적 진화의 계보를 타기 시작했다는 것.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직립 보행을 했으며, 불과 도구도 사용했다. 그런데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신체적 특징은 당대 먹이사슬의 최상위 계층에 있던 포식동물과 비교하면 연약하기 짝이 없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신장은 수컷이 130cm, 암컷은 110cm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검치호랑이, 매머드 등 현재 멸종된 거대 육상 포유류는 물론 지금도 존재하는 사자와 호랑이에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빨리 달리지도 못한다. 나무 위에서 생활하던 원숭이의 잔재가 남아 있었던 탓에 다리가 짧았기 때문이다. 물론 독침이나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발톱 같은 신체 무기도 발달하지 못했다.

불과 도구를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따라서 포식동물과 1대 1로 마주쳤을 경우 승산은 상당히 낮았으며, 포식동물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 점을 증명이라도 하듯 당시의 여러 포식동물 화석과 함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부서진 유해 화석이 많이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초기의 인류는 먹이사슬의 중간층에 위치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동물처럼 자신보다 물리적인 힘이 약한 동물은 잡아먹고, 자신보다 강한 물리력을 가진 동물에게는 먹잇감이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삶의 방식은 인류의 지능이 현저한 발전을 이루어 집단으로 포식동물을 공격 또는 방어할 수 있을 때까지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된다. 그때까지 인류에게 먹이사슬의 최상위 계층에 위치하는 포식동물들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마치 천형과도 같은 공포였을 것이다.

그런데 인류가 먹이사슬의 최상위 계층에 올라서고 만물의 영장으로 불리는 지금도 포식동물은 식인동물이란 명칭으로 이름만 바뀐 채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설과 신화 속의 식인동물

여러 민족의 전설이나 신화는 식인동물을 전제로 해 주인공이 영웅적인 기지나 힘을 발휘해 격퇴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물론 전설이나 신화 속의 식인동물은 실존하는 식인동물보다 엄청나게 강한, 문자 그대로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하기는 하지만.

세계 최고의 서사시인 길가메시는 기원전 200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그보다 600년 전에 살았던 실존 인물 길가메시 왕의 행적을 그리고 있다. 이 서사시에서 길가메시 왕은 향나무 숲을 지키는 식인동물 훔바바와 격투를 벌여 승리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도 사람 고기를 먹는 반인반우의 미노타우로스가 나온다.

이 같은 전설이나 신화는 그저 옛날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는다. 전설과 신화는 항상 아이디어에 굶주린 창작자들에게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 영화, 연극, 뮤지컬 등 현대의 각종 문화 콘텐츠 상품을 관찰해 보면 신화나 전설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 많다. 특히 그 같은 모티브 중에는 식인 동물에 관한 것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죠스, 아나콘다, 고스트 앤 다크니스, 그리고 얼마 전에 개봉된 차우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영화의 공통점은 ‘대단히 강력한 식인동물을 격퇴하는 영웅적인 주인공이라는 전설이나 신화의 모티브를 차용한 것이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해 볼 때 강력한 식인동물이 주는 엄청난 공포, 식인동물을 격퇴했을 때 오는 무한한 자신감과 긍지, 그리고 성취감이 인류의 DNA에 얼마나 큰 족적을 남겼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전설 및 신화 속에 나오는 괴물, 괴수, 요괴 등도 사실상 강력한 식인동물을 바탕으로 했다고 할 수 있다.

바빌로니아의 서사시 에누 마엘리시에 나오는 마르두크 신은 11마리의 괴물 뱀을 낳는 괴수 티아마트를 죽이고, 그 시체를 반토막 내 세계를 창조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머리가 아홉 개 달린 히드라, 머리카락이 모두 뱀인 메두사 등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많이 나온다.

물론 식인동물이 신, 또는 신의 대리인으로 추앙받는 경우도 있다. 인도에서는 사자를 신성한 동물로 여기고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요릉구족은 악어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기고 있다.

이 외에도 세계 각국에서 나타나는 토테미즘의 경우 강력한 식인동물을 신격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을 떨게 하는 식인동물 지구상에는 식인동물의 공포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곳이 많다. 아프리카에서는 두 마리의 암사자가 무려 135명의 사람을 잡아먹은 사건이 벌어졌고, 인도에서는 암호랑이 한 마리가 64명의 주민을 잡아먹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불곰이 민가를 연쇄 공격해 7명의 주민을 잡아먹었으며, 부룬디의 루지지 강에 살고 있는 65살 먹은 악어는 무려 300명 이상의 사람을 잡아먹었다.

사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자가 백수의 제왕이며 먹이사슬의 정점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도 그렇다. 과거에는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모두가 사자의 활동무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의 포획으로 개체수가 줄어들어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그리고 인도 일부 지방에만 남아있다.

사자는 자기 영역을 벗어나 마을까지 쳐들어와 왕성하고 저돌적으로 인간 사냥에 나서는 특징이 있다. 보통 늙고 힘이 모자란 포식동물이 인간 사냥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사자의 경우에는 젊고 건강한 개체도 식인을 좋아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자의 식인 사례는 지난 1898년 케냐의 차보 강에서 벌어졌던 식인 사자 출몰 사건이다. 이 사건은 고스트 앤 다크니스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이 해 3월 케냐-우간다 철도 공사를 하던 인도인 노동자 2명이 각각 고스트, 다크니스로 명명된 2마리의 암사자에게 물려 죽은 것을 시작으로 그 해 12 월까지 135명의 사람들이 사자의 습격을 받아 죽었다.

결국 영국군 중령 존 헨리 패터슨이 이들 암사자를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두 마리 암사자의 가죽은 패터슨 중령 자택의 양탄자로 쓰이다가 1924년 시카고 자연박물관에 매각, 복원 및 박제 과정을 거쳐 전시돼 오고 있다.

두 마리의 암사자가 인간을 공격하게 된 원인은 먹이 수가 급감한데다 차보 강에 떠내려 온 시신이나 철도건설 현장에서 산업재해를 당해 죽은 노동자 등을 통해 사람 고기에 맛이 들렸기 때문으로 추측되고 있다.

1990년부터 2005년에 이르는 기간에도 탄자니아에서 563명이 사자의 공격을 당했고, 그 중 많은 사람이 사자의 먹이가 되는 등 아프리카 지역에서 사자의 공포는 아직도 엄존하고 있다.

호랑이

호랑이는 사자와 함께 고양이과 동물 가운데 가장 큰 힘을 갖추고 있다. 유라시아 북부에서 기원해 남쪽으로 퍼졌으며 현재는 러시아 극동과 중국, 동남아시아, 그리고 인도 일부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호랑이는 사자에 비해 자기 영역을 잘 떠나지 않아 인간 사냥에는 소극적인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상 가장 많은 사람을 잡아먹은 고양이과 동물이 바로 호랑이다. 이 같은 모순은 인간 활동이 늘어나면서 호랑이의 세력권이 침해된 데 기인한다.

인간을 공격한 대표적인 호랑이는 지난 1925년부터 1930 년까지 5년간 인도의 쿠마온 동부 지역에서 64명을 잡아먹은 암호랑이 콤비다. 또한 조우라 기리에서는 30명을 잡아먹은 호랑이도 나타났는데, 이들은 보통 주간에 공격해오는 것이 특징이다.

아직도 호랑이의 식인이 상습적으로 일어나는 곳으로는 방글라데시의 순다르반스 국립 공원이 꼽힌다. 이곳은 유네스코가 정한 자연보호구역인데, 매년 100~250명이 호랑이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는다.

이곳의 희생자 수는 다른 지역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은 편이다. 이는 이곳 음료수의 염분 성분이 호랑이의 영양실조를 일으키는데다 홍수에 떠내려 온 사람 시체에 맛을 들였기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늑대

늑대는 개과의 대형 육식동물이다. 원래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 분포했지만 지금은 알래스카에서 미 북부 초원에 이르는 지역과 아시아 일부에만 남아 있다.

사자와 호랑이에 비해 늑대의 인간 공격 빈도는 비교적 낮은 편이다. 늑대는 인간과 체력 및 체격 차이가 별로 없는 데다 가급적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는 습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늑대의 인간 공격은 유럽, 북아메리카, 아시아 등에서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영국 제임스 6세 국왕(재위 1603~1625) 시절에는 늑대를 여행객들에 대한 위협 요소로 간주, 스피탈이라는 대피소가 세워질 정도였다.

프랑스에서도 1580~ 183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3,069명이 늑대의 공격으로 죽었다.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의 전쟁터였던 리투아니아의 카우나스와 빌나, 그리고 벨로루시의 민스크에서도 늑대가 출몰해 교전 중이던 러시아군과 독일군을 공격했다. 이 때문에 늑대 퇴치를 위한 임시휴전이 맺어지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늑대는 서구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유명한 동물학자 어니스트 시튼도 자신의 저서 시튼 동물기에서 수년간 수천 마리의 양떼를 공격해 죽인 늑대 무리의 두목 로보와 블랑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사람에 대한 공격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무서웠다는 얘기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유럽 늑대보다 아메리카 늑대가 인간에 대해 덜 공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대대적인 늑대 사냥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즉 유럽에서는 늑대 사냥이 상류층의 여가활동에 가깝게 이루어진데 반해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평민들까지 자발적으로 늑대 사냥에 참가했다는 것.



이는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들의 삶의 기반과 종교적 뿌리를 파괴하려고 했던 유럽 출신 이주민들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인디언들은 전통적으로 늑대, 곰 등 강한 동물을 부족의 수호신으로 숭배하는 토테미즘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의 사례로는 지난 1996~1997년간 인도의 우타르 프레다시에서 늑대의 공격으로 74명이 죽거나 중상을 당한 것을 들 수 있다.

곰과 표범

곰은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극대륙을 제외한 지구상 모든 대륙에 살고 있다. 곰의 실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곰에 귀여운 이미지를 덮어씌웠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위험한 동물이다. 풀이든 고기든 가리는 게 없는 잡식성인 데다 대형 곰일수록 엄청난 힘과 덩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가장 큰 곰의 경우 몸 무게가 800kg에 달한다.

시튼 동물기에서도 회색곰 워브가 인간을 공격해 죽인 사례를 다루고 있으며, 비교적 가까운 과거인 1984년과 1986년에 각각 회색곰의 식인 사건이 보고되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지난 1914년 12월 9일부터 14일 사이에 케사가케라는 불곰이 홋카이도 민가를 연쇄 공격해 7 명을 잡아먹은 사례가 있다.

표범 역시 사람 고기에 맛을 들이고 나면 인간 사냥에 적극적인 편이다. 가장 많은 공격을 벌이는 아시아 표범은 주로 야간, 아프리카 표범은 주로 주간에 공격해 온다. 표범은 사자나 호랑이에 비해 작고 날쌔다. 이 같은 신체적 조건을 이용해 민가에 침입, 문이나 초가지붕을 부수고 사람을 공격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유명한 공격 사례로는 지난 세기 초 인도 중부지방에서 150 명을 죽인 표범, 그리고 인도 굼말라푸르에서 42명을 죽인 표범 등을 들 수 있다.







악어

중남미와 아프리카, 남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등에 분포해 있는 악어 역시 식인동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명성을 자랑한다.

악어에 의해 벌어진 대표적인 식인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지난 1945년 2월 19일. 당시 버마의 램리 섬에서 연합군의 공격을 피해 늪을 건너 도망치던 1,000여 명의 일본군을 현지의 악어 떼가 공격한 것이다.

이때 악어에 잡아먹힌 일본 군의 수는 연구자에 따라 500 명이라는 주장에서 900명 이상이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들쑥날쑥 하다. 하지만 아무리 인색한 기준을 들이대도 이 사건이 식인동물의 인간 공격 가운데 최대 규모에 속한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며, 기네스북에까지 등재돼 있다.

현재 부룬디의 루지지 강에 살고 있는 구스타프라는 이름의 나일 악어는 65살 이상을 살면서 300명 이상의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구스타프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나왔다.

상어

극지방을 제외한 지구상 전역의 바다에 살고 있으며, 총 400여종 가운데 10% 이하의 종이 사람을 공격했거나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

백상아리나 청상아리 등의 대형 상어는 바다 먹이사슬에서 최상위 계층에 속하는 포식자며, 인간의 해양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이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유명한 상어의 인간 공격 사례로는 지난 1945년 7월 침몰한 미국 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의 생존자들을 공격해 500여명의 희생자를 낸 것, 그리고 1916년 7월 1일부터 12일 사이 미국 뉴저지 주 해안에 연쇄적인 상어 공격으로 4명이 죽고 1명이 부상당한 사례를 들 수 있다.

이 외에 인간을 공격해 먹이로 삼는 식인동물로는 코모도 왕도마뱀, 파이던이나 아나콘다 같은 대형 뱀, 피라니아 같은 육식 어류, 그리고 지난 1980년 생후 9주된 여아를 잡아먹은 딩고를 들 수 있다. 딩고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토종개다.

또한 1998년에서 2007년 사이에 인도의 칼리 강에서 3명을 잡아먹은 군츠 메기, 2003년 말라위에서 3명을 잡아먹고 16명에게 부상을 입혀 무려 4,000명에 달하는 피난민을 발생시킨 UMA(미확인 동물) 등이 있다. 말라위 당국은 UMA가 하이에나라고 발표했지만 목격한 주민들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초월적 존재에서 유해 조수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에는 자연을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다. 인간보다 압도적인 힘과 용맹성을 지닌 식인동물을 자연계를 이루는 하나의 개체가 아닌 무시무시한 악마로 여겨 배척하거나 아니면 부족의 수호신으로 여겨 숭배해 왔던 것도 이 같은 사고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

식인동물의 힘을 경외하는 경향은 자연에 비해 인간이 우월하다는 사고방식이 확산된 지금까지도 면면히 남아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기계류인 전쟁무기에 각종 식인동물의 이름을 붙여주는 경우가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과 악마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던 식인동물의 이미지는 병충해나 풍수해와도 같은, 퇴치해야 할 자연재해쯤으로 급전직하하고 있다. 인간은 이성을 갖춘 만물의 영장인데, 그런 존재를 일개 동물이 잡아먹고 배설해 버린다는 것은 인간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 때문에 인간의 식인에 대해서도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전쟁에서 적의 시체를 먹는 경우가 대표적 사례. 다시 말해 사람의 식인 목적은 다음 두 가지 중 하나 뿐이라고 주장한다.

첫째는 극도의 식량난을 겪어 그것 말고는 다른 식량이 마땅찮을 경우. 두 번째는 적에게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멸감을 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같은 행위가 식인동물의 행위에 비해 도덕적이나 윤리적으로 우월하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

식인동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이 죽인 인간의 시체를 먹는 것은 단순히 영양보충을 위한 행위일 뿐이다. 그리고 인간 역시 과거에는 먹이사슬의 중간층에 존재하면서 자신보다 힘이 약한 동물을 잡아먹었다.

현재와 같이 인간이 먹이사슬의 최상위 계층으로 올라선 것은 장구한 지구의 역사를 놓고 볼 때 얼마 되지 않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사실 인간에게서 문명의 이기를 걷어내 버리고 나면 또 다시 먹이사슬의 중간층으로 격하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최근 인간의 활동범위가 넓어지는 것과 반비례해 식인동물의 활동영역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이는 먹이 수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추세로 인간 활동이 늘어난다면 2150년경에는 대부분의 육상 식인동물은 생활공간과 먹이 부족으로 멸종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식인동물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식량부족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욱 많이 인간을 공격할 공산이 크다. 식인동물에게 있어 맨몸의 인간은 강한 힘이나 빠른 속도를 갖춘 대형 초식 동물보다 더 쉬운 먹잇감이 될 수 있다. 특히 늙고 기력이 쇠한 식인동물에게는 더욱 매력적인 타깃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의 활동이 늘어남에 따라 식인 동물의 인간 공격이 빈번해지는 것은 필연일 수도 있다.

또 다른 문제, 식인동물 멸종

식인동물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문화 콘텐츠 상품은 인간이 식인동물을 어떻게든 처치하고 승리함으로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재확인시켜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식인동물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멸종시키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유감스럽게도 과학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식인동물은 먹이사슬의 정점에 위치하는 포식자다. 만약 이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포식을 통해 개체수를 통제해 오던 초식동물이나 소형 육식동물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초식동물이나 소형 육식동물의 먹이 역시 제한돼 있다. 먹이를 둘러싼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종은 몸집이 작아 에너지 소모가 낮고, 번식률이 높아 손실을 극복할 수 있으며, 광범위한 장소에서 생존할 수 있는 종이다. 그렇지 못한 종, 특히 인간에게 유익한 대형 초식동물들은 살아 남기 힘들다.

이는 결국 생태계를 이루는 종의 숫자를 줄이게 되고, 생물학적 다양성을 해치게 된다. 생물학적 다양성이 사라진 생태계는 지속가능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은 물론 인간의 입장에서 봐도 이용가치가 줄어들게 된다.

특히 예전 같으면 별 문제 없을 외부효과로도 한 지역의 생태계가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는 결코 이론상의 문제가 아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나타난 '쐐기돌 효과'가 바로 대표적 사례다.

당시 미국인들은 더 많은 사슴과 엘크, 그리고 순록을 얻기 위해 이들의 천적인 늑대를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멸종시켰다. 하지만 늑대가 멸종하자 늑대의 또 다른 먹이였던 코요테의 개체수가 폭증하면서 이들의 먹이인 들쥐의 개체수가 급감했다.

이 같은 악순환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들쥐를 주요 먹이로 하는 독수리 같은 동물의 개체수까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사슴과 엘크, 순록의 수가 급증하면서 국립공원 내에는 풀이 모자라게 됐다.

이처럼 생태계 파괴로 대형 초식동물의 개체수가 줄어들게 되자 결국 미국인들은 지난 1995년 캐나다에서 수입한 늑대 31마리를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방사했다. 생태계의 균형을 되찾자는 것.

이는 식인동물의 멸종이 문제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큰 문제의 시발점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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