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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 불꽃'서 태양빛으로…시대 변화를 담다[건축과도시]

◆장교동 한화빌딩

그룹 정체성 담아 7년간 리모델링

화약 상징 오렌지색 → 친환경 흰색

40년 넘은 빌딩숲 청계천에 우뚝

태양광 패널 설치해 야간 조명 둥 활용

패턴 없는 외관·상층부엔 직원 휴게실

시대의 흐름 반영 '베를린 광장' 조성도

한화빌딩 메인 사진. 서울 장교동 한화빌딩은 1987년 첫 준공이후 2019년 4년간의 리모델링을 완료했다./사진제공=간삼건축




리모델링 전 한화빌딩의 모습. 오렌지 빛 외관은 당시 한화의 주력 사업이던 화약의 불꽃을 상징하는 디자인이다./사진제공=간삼건축


서울 청계천 일대는 근현대를 거치며 수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서사의 한 축은 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은 지난 1980년대를 전후해 이곳 일대에 터를 잡고 본사를 세웠다. 이미 40년이 넘어가는 기업들의 사옥이 이곳에는 즐비하다. 다소 낡고 오래된 듯한 덩치 큰 회사 건물들이 섞여 서울의 도심 풍경은 완성된다. 장교동 한화빌딩은 서울 도심 기업 사옥 가운데에서도 터줏대감 역할을 한다. 40년 넘게 한화그룹이 본사로 쓰는 건물이다. 바로 옆 장교빌딩이 쁘렝땅백화점으로 처음 들어섰던 때보다도 1년 더 빠른 1987년 준공됐다.

장교동 한화빌딩은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2014년부터 설계에 들어갔으며 건물은 물론 주변 공지까지 리모델링한 케이스다. 현재는 과거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리모델링을 담당한 간삼건축의 김진호 수석은 “2012년부터 진행한 인허가 작업부터 계산하면 총 7년이 걸렸다”며 “건축주인 한화는 단순히 노후한 시설물을 개·보수하는 수준을 넘어 변화하는 시대를 건축물에 담고 싶어 했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한화빌딩”이라고 말했다.



<'화약 불꽃' 상징하던 오렌지 외관 ‘태양광 패널’ 달고 재탄생>

무엇이 변했을까.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외관이다. 한화는 40년의 세월 동안 성장하고 변화한 그룹의 정체성을 담고 싶어 했다. 김 수석은 “1980년대 첫 준공 당시 오렌지 빛 외관은 당시 한화의 주력 사업이었던 화약의 불꽃을 상징하는 컬러였다. 반면 지금의 외관은 에너지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는 현재 태양광 패널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얀 프레임과 유리로 이뤄진 깔끔한 외관은 청정에너지 기업으로서의 지향점을 상징한다는 게 간삼건축의 설명이다. 건물의 뒷면에는 실제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북향인 건물의 특성상 남쪽을 바라보는 건물 뒷면이 태양광 발전에 더욱 적합하기 때문이다. 태양광 패널은 한화빌딩 리모델링을 통해 외관 소재 중 하나가 된 셈이다. 이 패널을 통해 생산된 전기는 야간의 경관 조명용 등으로 실제로 쓰인다.

외부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 유리 외벽은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지 않다. 전체 시야에서는 하나의 일관된 디자인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변 건축물과의 배치를 고려해 프레임 폭을 조정했다. 건물에 가려져 외부가 어차피 잘 보이지 않는 곳은 프레임의 간격이 좁고, 시야가 트인 곳은 내부에서 좀 더 넓은 시야를 감상할 수 있도록 프레임 간격을 넓혔다. 꼭대기 층은 시야가 좋으니 프레임이 넓고 아래층은 좁게 했다. 그러면서 디자인적 요소를 위해 프레임이 건물의 모서리에서도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돼 있다.



리모델링한 한화 빌딩의 외부 설계는 결국 건축주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담고 거기에 주변 건물의 위치, 내부의 시야, 햇빛의 방향 등 고려한 입체적인 통찰의 결과물이다. 한화빌딩이 올해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에서 리노베이션 부분을 수상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수석은 “건축주가 40년 이상 같은 건축물을 사용하면서 그 시간 동안 변화한 사업 내용과 정체성을 반영하고, 그러면서도 건축물로서의 기본적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했다”며 “옛 건축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내진 설계, 단열 등 에너지 고효율 등 현재 요구 받는 건축물의 기능을 갖추는 것도 도전적 과제였다”고 말했다.

태양광 패널 소재가 사용된 한화빌딩 뒤 벽면.


28층 상층부에 위치한 직원 공용공간.


<경관 좋은 고층부가 직원 공용 공간…직장 내 권위의 변화 담아
건물 외관뿐 아니라 건물 주의의 공개공지도 시대 변화를 반영했다. 이런 식이다. 한화빌딩과 미래에셋 센터원 빌딩 사이의 길은 과거 ‘미디어’라는 콘셉트로 구성된 거리었다. 김 수석은 “그런데 요즘 시대에 걸어가는 내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 길가의 디스플레이에서 나온다고 해서 좋아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라고 말했다. 그렇게 ‘내 모습이 나오는 디스플레이’는 사라지고 미디어 아트가 상영되는 아트 파빌리온이 들어섰다. 주차 기능만 있던 외부 공간에는 공연장도 갖춰지고 누구나 쉬고 갈 수 있도록 녹지 옆 테두리 돌은 벤치 높이로 배치했다.

내부도 탈바꿈했다. 여기에도 시대의 흐름과 변화는 녹아들었다. 이를 테면 빌딩의 최상층부는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처음 한화빌딩이 지어졌던 1987년만 하더라도 대개 의심없이 상층부일수록 임원실, 또는 임원용 회의실 등으로 꾸며졌을 테다. 말 그대로 높은 곳은 높은 분을 위한 공간이니까. 지금의 한화빌딩은 아니다. 리모델링을 통해 상층부인 28층과 29층을 직원을 위한 공용 공간으로 배치했다. 가장 조망이 좋은 곳에 직원 식당과 휴게 공간이 있다. 외부 유리 패널의 프레임 간격도 넓히는 디테일을 줬다. 직원들이 더 높은 층에서 더 좋은 뷰를 감상할 수 있도록 더 큰 창문을 넣었다는 이야기다.

건물의 3~4층은 외부인들도 별도의 출입카드를 쓰지 않고 들어올 수 있는 미팅 공간으로 구성됐다. 외부 협업이 늘어난 최근의 업무 환경을 반영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외부인의 사무실 출입을 최소화해 기업의 내부 기밀이 유출될 가능성을 줄인 공간 구상이기도 하다. 기밀 유출이 수천억 원대의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최근 산업계의 격렬한 경쟁 환경은 한화빌딩의 3~4층 공간 구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간삼건축은 리모델링 과정에서 로비와 3~4층 미팅 공간을 오가는 별도의 셔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도 했다.

취재를 마치고 걸어가다 보니 한화빌딩 앞 인도 코너에 있는 베를린 광장이 눈에 띄었다. 서울시가 실제 독일에서 들어온 베를린장벽을 세워 조성한 공간이다. 냉전 시대의 종료, 또는 통일독일 시대의 개막을 기념하는 곳이다. 원래 이곳은 한화빌딩과는 분리된 공간이었지만 이번 리모델링 과정에서 함께 정비했다. 공교롭게 인류사의 변화를 기념하는 베를린장벽과 서울 도심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한 건축물이 새 옷을 입고 나란히 서 있다. ‘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변하니 당신도 변화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외부 인도의 베를린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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