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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불청객 '이물질'

맛있게 먹던 찌개 속에서 머리카락, 비닐, 종잇조각을 발견한다면? 대부분 입맛이 싹 가셔 숟가락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음식을 내놓은 음식점을 신고해 처벌받게 할 수 있을까.

손님 입장에서 보면 복장 터질 일이지만 사실상 처벌은 쉽지 않다. 현행법상 이들 이물질은 식품의약품안천청(KFDA)이 정한 '보고 대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왜 보고 대상에서 빠졌을까. 그리고 인체에는 아무런 해가 없는 걸까.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쥐 식빵' 사건을 계기로 식품 위생 문제가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사건은 자작극으로 결론지어졌지만 새까만 쥐의 몸통이 식빵 속에 박힌 모습은 많은 소비자들에게 글자그대로 충격을 안겨줬다.

만일 TV 뉴스에 나오는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내가 먹는 음식 속에서 쥐나 바퀴벌레의 사체를 발견하게 된다면 어떨지 상상해보자. 혐오감은 물론이고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꿈에서라도 경험하고 싶지 않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리적 위해성이 관건

이처럼 식품의 제조·가공·조리·유통 과정에서 정상적으로 사용된 재료가 아니며 음식을 섭취할 때 혐오감을 느 끼게 하거나 인체에 직접적 위해 및 손 상을 줄 수 있는 물질을 '이물'이라고 한 다. 식약청에서는 식품 내에서 이물이 발견되면 식품위생법에 의거, 법적 처 분을 가하고 있다.

가령 제과점 식빵에서 쥐의 사체 가 발견됐을 경우 식품위생법 시행규 칙 제89조 행정처분기준에 따라 시정 명령을 받는다. 여기서 시정명령이란 이러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생산 시설을 정비하는 등 전반적인 위생 관 리를 강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럼에 도 2차, 3차로 동일한 문제가 재발하면 7~15일 가량의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 진다.

다른 것도 아닌 쥐의 사체가 발견 됐을 때의 처벌로 보기에는 어쩐지 가 볍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건국대 축산식품생물공학과 김진 만 교수는 "이는 식품산업 전반을 고려 한 결과"라며 "법이 처벌 위주로 가면 생산자의 생산의지를 꺾을 수 있기 때 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김 교 수는 또 "이 정도의 이물질은 굳이 강 력한 처벌 없이도 매스컴을 통해 대중 에게 알려져 해당기업의 판매량이 급감하기 마련"이라며 "기업이미지도 돌 이킬 수 없을 만큼 실추돼 영업정지 이 상의 타격을 입게 된다"고 전했다. 아울러 법적 처분과는 별도로 식빵 에서 발견된 쥐의 사체는 식품위생법 상의 '보고 대상'이 된다.

이물 발생 사 실을 식약청, 시청, 구청 등의 행정기 관에 반드시 보고해야 한다는 의미다. 식약청 식품관리과 최용훈 사무관에 따르면 이는 그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와 기업의 합의 여부와는 관계없는 무 조건적 강제 규정이다. 보고 대상에는 동물의 사체를 비롯 한 대다수 이물이 포함된다.

금속, 유 리조각, 칼날, 플라스틱, 고무, 이쑤시 개, 담배꽁초, 기생충 등이 대표적인 예다. 최 사무관은 이중 금속성 이물과 관련 "규정에 따라 쇳가루는 식품 1㎏ 당 10㎎ 이상, 그 밖의 금속성 이물은 크기 2㎜ 이상이 검출돼서는 안 된다" 고 설명했다. 검출량이나 크기가 이 기 준에 미치지 못했을 때는 식품위생법 상 별도의 처분을 받지 않는다.

물론 이것이 10㎎ 미만의 쇳가루나 2㎜ 미만의 금속성 이물이 인체에 무 해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이물의 검출과정을 고려한 기준에 불과하다. 기준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될지 몰라 도 국내 기준은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에 비해 약 10배 이상 엄격한 수준이다.

금속, 유리조각, 칼날은 고위험 이물

이 외의 다른 이물에 대해서는 별도로 양이나 크기를 규정해 놓지는 않고 있 다. 법규에 모든 이물의 명칭과 규제 기 준을 일일이 적시할 수는 없는 탓이다. 그래서 법규에 명시되지 않은 이물이 라도 인체에 적잖은 위해를 가할 수 있 는 것은 보고 대상이 된다.

결국 식품 속 이물이 보고 대상인지 아닌지는 인 체 위해성 여부에 의해 판가름 난다고 보면 된다. 보고 대상 이물의 위해성은 확연하 다. 김 교수는 "쥐와 같은 설치류의 사 체는 현실적으로 구매자가 그것을 섭 취할 가능성은 적다"며 "하지만 식품 을 생산하는 현장이 쥐의 배설물 등으로 오염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쥐의 타액이나 대·소변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는 호흡기를 거쳐 사 람에게 감염될 수 있는데 심하면 사망 에 이를 수도 있는 유행성출혈열의 주 원인이 바로 이것이다. 기생충은 어떨까. 김 교수는 "기생 충은 숙주로 삼은 사람의 영양분을 빼 앗기 때문에 건강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고 파리, 모기 등의 해충은 세균성 식중독을 위시한 전염병의 매개체가 된다"고 밝혔다.





이밖에 고무, 이쑤시개, 담배꽁초, 플라스틱 등은 익히 예상되듯 기도를 막는 등 물리적 위해를 가할 수 있다. 특히 플라스틱과 같은 합성수지는 화 학적인 면에서도 위험하다. 플라스틱 의 폴리염화비닐(PVC) 성분이 대표적 내분비계 교란물질이라는 점에서 그렇 다. 자칫 생식 기능에 악영향을 미치거 나 면역 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이 시점에서 과연 어느 정도의 플 라스틱을 섭취해야 인체의 내분비계 가 교란될지 궁금증이 생긴다. 아쉽게 도 이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아 직 없다.

김 교수는 "모든 플라스틱에 PVC가 함유됐다고도 볼 수 없기 때문 에 단정 짓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 했다. 단지 상식선에서 볼 때 식품에서 나올 법한 작은 조각을 한두 번 섭취하 는 것으로는 심각한 영향을 받지는 않 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머리카락, 비닐, 종이는 무해?

그런데 식품의 이물과 관련해 흥미로 운 사실이 있다. 누가 봐도 이물이 분 명하지만 일부 물질들은 식약청의 보 고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는 점이다. 머 리카락(동물의 털), 비닐, 종이, 실, 끈, 풀씨 등이 그런 물질이다. 이들은 식품 속에서 발견돼도 행정기관에 보고할 필요 없이 판매자가 자율적으로 소비 자와 합의를 보면 된다.



최 사무관은 "이 물질들도 이물의 범주에는 속하지만 다른 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해성이 적기 때문에 보 고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대응에 대해 대다수 전문가들은 매우 적절한 조치라는 입장을 표명 한다.

인체에 치명적 영향을 끼치지 않 는 물질에 한해서는 생산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실수, 혹은 피하기 어려운 결함을 일부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그렇지 않고 사소한 물질까지 모두 보고 대상으로 정해 법적 처분을 가하 면 식품산업 종사자들은 대부분 범법 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 김 교수는 이를 "언론사들이 맞춤법 하나 틀렸다 고 기자와 아나운서를 해고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이화여대 식품공학과 오상석 교수 역시 "어떤 면에서는 이물 발생을 보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며 "공산품을 대규모로 생산하는 데 있어 각종 물질 의 혼입 가능성을 100% 배제키는 어 렵다"고 말했다.





아울러 오 교수는 "이 같은 규정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이물에 대한 가장 엄격한 규정을 갖고 있 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보고 대상 제외 물 질들은 인체에 별다른 폐해를 미치지 않는 것일까. 오 교수는 "위해성 평가 에서 이들 물질은 위해도가 거의 없다 는 결과가 나온다"며 "소량 섭취하면 대체로 체외로 빠져나와서 인체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머리카락, 비닐, 종이, 실, 끈 등과 같은 이물 때문에 건 강상 심각한 이상을 겪었다는 보고가 없다는 점에서 충분히 수긍 가능한 부 분이다. 일례로 식품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머리카락은 케라틴이라는 고 밀도의 단백질로 이뤄져 있고 화학적 으로 불활성이기 때문에 섭취해도 해가 없다는 것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한 사람의 머리카락을 통째로 먹지 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때는 위장에서 머리카락이 뭉쳐 복통을 일으키거나 기도에 걸려 질식이 일어날 수 있다.

독버섯은 이물 아닌 유독물질

비닐이나 종이, 실, 끈 등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김 교수는 "이것들을 큰 사이즈로 섭취하면 기도가 막히거나 맹장염에 걸릴 수 있겠지만 음식에 섞여 육안으 로도 잘 구분키 어려운 작은 크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 일부러 작정하고 상당량의 비닐과 종이를 먹지 않는 이상 건강상의 문제를 유발할 개연성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닐 등의 합성수지가 독성을 가 지고는 일지만 이물의 양이 소량인 경 우 그 위해성은 미미하 다는 게 전문가 들의 견해다. 또한 생식, 선식 등에 섞일 개연성 이 있는 씨앗 등 풀씨류 이물도 식물류 인 만큼 인체에 무해하다고 본다. 혹시 단순한 풀씨가 아닌 독성을 가진 식물이라면 어떨까.

사실 식물 내 독성물질은 일반인들도 잘 알고 있 는 감자의 솔라닌(solanine)이나 독 버섯의 무스카린(muscarine) 외에도 목화씨의 고시폴(gossypol), 수수잎 의 둘린(dhurrin), 강낭콩의 리나마린 (linamarin)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 다. 이들 중 식탁에 오르는 식재료들은 독성물질 함량이 극히 미량이거나 독성이 제거된 채 유통된다.



가령 고단백 식품으로 알려진 목화 씨에는 고시폴이 약 0.6% 함유돼 있지 만 정제 과정에서 대부분 제거된다. 다 만 간혹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 중에 잔존하는 경우가 있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들 독성 식물을 다량 섭취했을 때는 주로 복통, 구토, 설사 등 소화기계에 이상증상이 나타난다.

그 정도가 심하면 호흡곤란, 경련, 전신마비에 이 를 수도 있다. 하지만 김 교수에 의하 면 이들을 얼마나 섭취했을 때 인체에 이런 영향이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정 확한 연구결과가 부족하다. 또한 개인 별 반응 차이도 크다. 게다가 이 같은 독성 식물은 식품 위생법상 이물이 아닌 '유독물질'로 분 류된다.

김 교수는 "중국 등지에서 질 소함량을 높이기 위해 우유에 의도적 으로 주입한 화학물질 멜라민처럼 식 물에 함유된 독성 물질 역시 유독물질 로 봐야 한다"며 이물과는 차원이 다 른 강도 높은 처벌을 받게 된다고 강조 했다. 한편 보고 대상 제외 물질이라도 소 비자가 심각한 해를 입었다면 법적 처 분을 받을 수 있다.

과학적 근거 따른 명확한 기준 필요

식약청에 따르면 현재 이물 발생 신고 량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지 난해 상반기에만 보고 대상 제외 이물 1,640건을 포함, 총 4,217건의 이물 보 고가 접수됐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5배나 증가한 수치다.

접수된 이물의 종류는 벌레가 37.7%로 단연 수위를 차지했다. 그리 고 고위험 이물에 속하는 금속과 플라 스틱이 각각 10.2%, 6.6%로 그 뒤를 이 었다. 곰팡이도 5%로 4위권을 점하고 있다. 식품 종류별로는 라면, 국수 등 의 면류가 26%로 1위에 올랐고 커피 (11.1%), 과자류(9.5%), 빵 또는 떡류 (8%), 음료류(6.2%) 순으로 많은 이물 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 모든 식품에서 벌레의 발생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와 같이 이물 신고량이 매년 증가 하고 있는 추세와 관련, 식품학계 전문 가들은 식품업체들의 적극적인 개선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한 이물이 발견됐을 때는 해당업체가 해당식품을 자발적으로 리콜 하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조성도 필요하 다고 말한다. 특히 일각에서는 이물의 양과 크기 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물을 바라보는 인식에 차 이가 발생, 논란이 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한다.

김 교수는 "선진국들은 일련의 실험 을 통해 각각의 이물들이 인체에 유해 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크기 등을 철저 히 규명해 규정을 세우고 있다"며 "과 학적 근거에 바탕한 명확한 기준을 마 련하는 등 정부 차원의 노력이 수반돼 야 한다"고 밝혔다.

◇ 앗, 이런 이물이?

식약청에서는 매년 엄청난 수의 이물 신고가 접수된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온갖 다양한 이물이 나와 관계자들조차 당혹케 하는 일이 많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작년 8월에는 경북 안동의 한 식품업체에서 생산한 막김치에서 쥐가 발견됐다. 물론 이는 자작극이 아닌 실제 사고다.

조사 결과, 배추 절단과정에서 쥐가 섞여 들어 절단기 칼날에 의해 몸통 일부분이 잘린 것으로 밝혀졌다. 이 김치는 경북지역 군부대 등에 판매되고 있었는데 소비자의 항의가 접수된 후 업체는 관련제품을 전량 폐기했으며 식약청은 해당 품목의 제조 정지 처분을 내렸다.

같은 시기, 경기 부천 소재의 한 사탕제조업체의 홍삼 캔디에서는 유리 조각이 나와 판매 중단 및 회수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소비자가 캔디를 먹던 중 발견된 이 유리는 약 15㎜ 크기였다. 또 작년 10월에도 서울의 대형마트가 판매했던 콘플레이크에서 금속이 발견되며 관련제품이 회수됐고 유통·판매도 금지됐다.

영국에서 수입한 이 제품은 조사결과, 제조시설의 컨베이어 벨트가 노후화돼 이물이 혼합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물의 크기는 무려 7㎝ 정도였으며 금속에 플라스틱도 함께 붙어있었다. 이밖에도 충치 치료에 쓰이는 아말감이 들어간 찐빵, 고무가 들어있는 초코바, 은박지가 붙은 화과자, 섬유뭉치가 함유된 스프, 기름때가 묻은 핫도그 등이 지난해 신고됐다.

박소란 기자 psr@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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