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역대 최고 비즈니스 라이벌 50

Greatest business rivalries of all time

기업 간의 치열한 경쟁과 폄하, 전면전에 대한 다음의 이야기들은 현대 비즈니스 세계를 형성한 주요 요소들이다. 여기서 배울 교훈들을 살펴보자.


토머스 에디슨은 경쟁사 기술의 위험성을 보여주기 위해 코끼리를 감전사시킨 적이 있다. 떠오르는 경쟁사 리복을 따돌리는 데 필사적이었던 나이키는 마이클 조던이라는 대학 농구 스타와 광고계약을 체결했다. 또 센트럴 퍼시픽 철도(Central Pacific Railroad)는 정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24시간 만에 10마일이나 되는 철도를 건설하기도 했다.

라이벌들은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고, 최고의 라이벌들은 위대한 스토리를 탄생시킨다. 이것이 지금부터 소개할 탁월함, 기만, 고결함, 거짓, 승리, 그리고 실패에 대한 이야기들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당신이 좀 더 실용적인 혜택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라면 그러한 영웅들도 찾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 라이벌 기업 간의 대규모 전쟁은 세상을 변화시켰다. 이제 휴대폰과 인터넷이 없는 삶은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소규모 기업 MCI *역주: 미국 장거리 전화 전문업체가 초대형 기업 AT&T(포춘 라이벌 랭킹 4위)에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이동통신 혁신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펼쳐졌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6위)는 서로 경쟁 제품을 판매한 적이 많지 않지만 35년간 컴퓨팅에 대해 완전히 다른 비전을 제시하며 자웅을 겨뤄왔다. 항공 여행 없이는 작동할 수 없는 글로벌 경제는 40년간 에어버스와 보잉(9위)이 매일같이 경쟁해 왔기 때문에 훨씬 더 빨리, 많이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쟁이 지나치다 보면 기업들은 더 중요한 것을 간과할 수 있다. 코카콜라와 펩시(1위)는 서로를 공격하는 데 혈안이 되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놓치기도 했다. 놀랍게도 오늘날 미국 편의점에서 잘 팔리는 에너지 드링크는 이 두 기업의 제품이 아니다. 제너럴 모터스와 포드 또한 도요타가 엄청난 수익을 빼앗아 갈 때까지 서로에게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런 이야기의 큰 교훈은 기업 간의 갈등은 모두 인간의 열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대담한 소설가가 아니라면 ‘아디다스 vs. 푸마(20위)’ 같은 형제 간의 대결을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베니스 vs. 제노바 (7위)’는 오래된 두 도시국가 간의 갈등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수백 년간 이어진 유럽 경쟁사의 시발점이 됐다. 경제적, 민족적 이해관계가 얽힌 철도회사 간의 경쟁은 극적으로 전개됐다. 여기에는 파괴행위와 기만, 그리고 죽음까지 뒤따랐다. 이런 교훈은 과연 누구에게 필요할까? 바로 독자 여러분이다. 이런 드라마 같은 이야기들은 죄책감 없이 그저 즐기면 된다. 준비가 됐다면, 당신의 라이벌을 무찌르기 위해 지금 달려나가자.
-By Geoff Colvin


No1. 코카콜라 vs 펩시
강장제로 처음 소개됐던 두 음료 간의 경쟁은 전 세계 모든 언어로 번져나갔다.

비슷한 종류의 탄산음료인 콜라와 펩시의 경쟁이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중요하게 인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쉽게 말하자면, 그들의 경쟁이 시간과 거리와 문화를 초월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업체 간의 전쟁은 음식점을 넘어 대통령과 국가를 갈라 놓았고, 슈퍼마켓부터 스포츠 경기장, 심지어 법정에서도 계속되어 왔다. 산타 클로스, 신디 크로포드, 마이클 잭슨, 맥스 헤드룸, 빌 게이츠, 빌 코스비 *역주: 코카콜라와 펩시 광고에 등장한 인물들이다 등이 참전했다. 1886년 애틀란타의 한 화학자가 ‘정신적ㆍ육체적 질환을 치료하는 맛있는 물약’ 코카콜라를 세상에 소개했다. 7년 후 뒤를 이어 펩시 콜라가 출시됐다. 하지만 콜라가 펩시를 경쟁자로 인정하고, 소송을 걸기까지는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펩시는 경제 대공황 동안 큰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가격은 코카콜라와 같은 5센트였지만, 펩시는 12온스 병에 담겨 나왔다. 코카콜라의 앙증맞고 허리가 잘록한 병과 비교해 부피가 두 배나 더 컸다. 펩시는 1950년대에도 여전히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한 2인자였다. 그때 펩시는 전직 코카콜라의 마케팅 임원 알프레드 스틸 Alfred Steele을 영입했다. 그는 전 직장에 대한 서운함과 새로운 회사에서의 야망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다. 그의 모토는 ‘콜라를 이기자’였다. 코카콜라는 펩시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 조차 거부했지만경쟁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사업 방식을 손보기 시작했다.

1979년 라이벌 역사상 최초로 펩시는 슈퍼마켓 판매에서 코카콜라를 앞질렀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1996년 포춘은 코카콜라와 펩시 간의 전쟁은 끝났다고 선포했다. 지속적으로 건강과 스낵에 주목해 오던 펩시는 그 때 이후 항복 선언을 한 것과 다름이 없다. 미국인에게 가장 사랑 받는 두 가지 탄산음료는? 코크와 다이어트 코크다.

승자: 코카콜라



No2. 포드 vs GM

1903년 창업한 포드와 9년 후 설립된 GM은 101년 동안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 도시를 거점으로 한 라이벌의 전형인 포드와 GM은 대리점뿐만 아니라 모터쇼에서도 경쟁하고 있다. 둘은 서로의 신제품을 분석하는 작업도 계속하고 있다. 2011년 당시 포드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짐 팔리 Jim Farley는 “GM과 그들이 상징하는 바가 그냥 싫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GM의 CEO겸 회장 댄 애커슨 Dan Akerson은 무너져 가는 포드의 럭셔리 브랜드 링컨에 대해 이제 “명이 끝났다”며 제사상이라도 차리라는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승자: 무승부



No3. 토머스 에디슨 vs 니콜라 테슬라
(미국 최대 기업 두 곳의 운명과) 세계 최고 발명가 2인 사이의 경쟁을 정의하는 가장 큰 특징은 소름 끼치는 쇼맨십이다.

멘토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는 법’이다. 세계적인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은 1884년 자신의 뉴욕 사무실에서 세르비아 출신의 젊고 총명한 엔지니어 니콜라 테슬라를 반갑게 맞았다. 앞서 테슬라는 에디슨 회사의 파리 지사에서 몇 년간 직류 전기 연구를 담당했다. 에디슨의 회사는 당시 DC 부문의 선두업체였다. 하지만 테슬라는 교류 전기를 이용한 새로운 방식을 고안했다. AC는 DC와 달리 엄청난 양의 전기를 먼 거리까지 전달할 수 있었다. 테슬라에 따르면, 에디슨은 그의 아이디어를 시간낭비라고 묵살해 버렸다. AC는 전압이 높아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에디슨을 위해 몇 가지 제품을 발명한 테슬라는 노력에 대한 대가로 약속 받은 5만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 받으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1885년 봄 테슬라가 보너스를 요구하자, 에디슨은 지금까지 내놓은 그의 아이디어는 모두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며 일축했다. 결국 테슬라는 에디슨의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테슬라는 바로 특허를 냈다. 그리고 피츠버그의 거물 사업가 조지 웨스팅하우스 George Westinghouse의 관심을 끌며 독자노선을 걷게 되었다.

당시 웨스팅하우스는 소리 소문없이 AC를 이용한 발전소를 개발 중이었는데, 테슬라의 기술을 알아낸 후 그로부터 특허를 사들였다. 이렇게 테슬라는 웨스팅하우스의 막강한 영향력을 등에 업게 되었다. 그리고 에디슨과의 전쟁을 시작됐다. 처음 에디슨은 웨스팅하우스가 전기 사업에 진출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테슬라를 비웃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에디슨은 AC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공개 실험까지 감행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개와 소, 말 심지어 코끼리까지 감전사시켰다. 그리고 최초의 전기 의자용 전력으로 AC를 사용하자는 주장에 동조했다.

1892년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 Edison General Electric과 톰슨 휴스턴 Thomson-Houston의 초대형 합병으로 탄생한 GE가 웨스팅하우스와 정면 대결을 펼쳤고, 에디슨과 테슬라가 사망한 한참 뒤에도 두 기업 간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GE가 잭 웰치 Jack Welch라는 유능한 CEO를 임명한 뒤에야 이 전쟁은 비로소 막을 내렸다. 웨스팅하우스가 4번 연속 제대로 된 CEO를 임명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1990년대 후반 GE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우뚝섰다. 하지만 웨스팅하우스는 더 이상 그런 기업이 아니었다. 현재 웨스팅하우스의 규모는 GE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승자: 니콜라 테슬라

No4. AT&T vs MCI

MCI가 처음부터 ‘거인 사냥꾼’처럼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MCI는 마이크로웨이브 타워를 통해 버스 운전사들에게 장거리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던 신생 기업이었다. 그는 마벨 Ma Bell *역주: AT&T의 애칭의 공격을 받았지만 수세적 입장을 취하는 대신, 소송을 제기하며 정면으로 맞섰다. 그리고 이 소송 때문에 마벨은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1980년 법원은 MCI에 18억 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2년 후에는 마 벨의 독점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는 정부당국의 조치가 나왔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셈이었다.

승자: MCI


No5. 나이키 vs 리복
스포츠웨어 업계에선 신발 회사의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 이를 통해 수십 년간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영향력 있는 스타 운동선수들을 탄생시켰다.

모든 것이 신발에서 비롯되었다. 나이키와 리복 사이의 전쟁은 30년 이상 지속됐고, 이를 통해 오늘날의 유명 스포츠스타 문화가 태동했다. 처음에 두 기업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오리건 대학교의 육상 스타이자 스탠퍼드 대학 MBA 출신이었던 필 나이트 Phil Knight는 회계사 커리어를 포기하고, 러닝화 수입업체를 설립했다. 회사명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에서 착안해 ‘나이키’라 지었다. 폴 파이어맨 Paul Fireman은 보스턴 대학교를 중퇴하고, 가족이 운영하던 스포츠 전문점 사업을 이어받았다. 이후 영국산 스니커즈의 북미 판권을 구입했다. 남아프리카산 영양의 이름을 딴 ‘리복’의 대표 제품은 흰 가죽으로 만든 여성용 운동화였다. 국민적인 조깅 바람이 불면서 리복은 큰 인기를 누렸다. 파이어맨은 1984년에 모기업을 인수했고, 그 이듬해에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나이키는 공격적으로 남성 고객을 공략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남성직원들로 가득한 경영 문화를 조성하며 빠르게 인기를 확산시켰다. 하지만 여성용 스니커즈 시장을 놓쳤다. 1987년 리복은 자신의 결점을 만회하려 애쓰던 나이키를 앞질렀다. 역사상 최고의 스타 선수로 기억될 마이클 조던과 광고 계약을 체결하며 나이키는 다시 한번 추진력을 갖췄다. 나이키는 단순히 유명 선수를 얻게 된 것을 넘어 시청자들에게 친숙하고 TV출연이 잦은 홍보모델을 잡게 된 것이었다. 조던과 대히트를 친 에어 조던 Air Jordan 브랜드에 힘입어 나이키는 선두 자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리복은 샤킬 오닐 Shaquille O'Neal과 광고 계약을 체결하며 맞불을 놓았다. 그는 나이키와의 미팅 때 커다란 리복 로고가 새겨진 재킷을 입고 나타나 유명해진 인물이었다.

나이키 경영진은 당혹감을 느꼈다. 조던은 1992년 올림픽 때 드림팀 운동복에 새겨진 리복 로고를 성조기로 가리는 행동을 취했다. 나이트는 논란이 된 조던의 행동에 흡족해 했다. 그는 또 토냐 하딩 Yonya Harding의 변호사 비용으로 2만5,000 달러를 지원하며 리복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녀가 리복의 광고 모델 낸시 캐리건 Nancy Kerrigan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을 사주한 혐의로 피소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나이키는 안드레 애거시, 피트 샘프라스, 타이거 우즈 같은 선수들과 광고 계약을 하며 리복을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2005년 아디다스가 리복을 인수했다. 하지만 새로 합병된 회사는 막강한 나이키에 한참 밀려 여전히 2인자에 머물고 있다.

승자: 나이키

No6. 빌 게이츠 vs 스티브 잡스
그들의 비전은 개인용 컴퓨터의 발전을 구체화시켰다. 덕분에 그들의 열정에 관한 두 영화도 출시될 예정이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는 낮과 밤처럼 전혀 다른 인물이지만, 그만큼 공통점도 많다. 이 점이 아마 그들의 처절한 라이벌 관계를 설명해준 말일 것이다. 경쟁으로 인한 결과물은? 바로 개인용 컴퓨터의 개발이다. 우선 차이점들을 살펴보자. 게이츠는 중상위층 가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에 입학했다가 중퇴했다. 서민층이었던 잡스는 리드 칼리지를 중퇴했다. 뼈 속까지 기술자인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초기 제품들의 코드를 직접 만들었다. 타고난 마케팅 천재에다 사람들을 설득할만한 기술적 지식도 갖춘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 Steve Wozniak과 손 잡고 최초의 애플 컴퓨터를 제작했다. 게이츠가 스케일(scale)과 레버리지(leverage) 같은 회계 ·경영지식이 풍부한 데 반해, 잡스는 스타일과 메시지를 더 중요시했다(곧 스크린에서 애슈턴 커처 Ashton Kutcher와 노아 와일리 Noah Wiley가 연기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스티브 잡스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게이츠와 잡스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컴퓨터 혁명의 양대 산맥이 되었다.

무엇보다 둘은 비즈니스에 능통했다. 게이츠와 잡스는 모두 정규 경영학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다. 심지어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수익 창출과 끊임없는 경쟁에서 두 사람 모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게이츠는 윈도를 전 세계 컴퓨터 시스템의 표준으로 만들며 라이벌전의 첫 20년을 주도했다. 1997년 애플이 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잡스는 게이츠의 1억5,000만 달러 투자에 반색을 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기도 했다(이 거래가 발표된 맥월드 콘퍼런스 Macworld conference 참석자들은 게이츠의 비디오 영상이 나타났을 때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잡스는 사망 전 15년 동안 PC를 뛰어넘어 음악 재생기기,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의 분야를 지배하며 판세를 뒤집었다(마이크로소프트는 이들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발끈해서인지 게이츠의 부인 멜린다 Melinda는 자녀들이 집에서 아이팟과 아이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게이츠와 잡스는 가감 없는 비난을 주고 받는 것으로 유명했다.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결정적 문제를 ‘멋’의 부재로 꼽았다. 게이츠는 잡스의 최고 업적 중 하나로 꼽히는 아이패드를 그저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일곱 달 차이로 태어난 이 둘은 잡스가 죽기 몇 년 전까지 친분을 유지했다. 오랫동안 경쟁한 만큼, 누구보다도 서로의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승자: 스티브 잡스

애플 vs. 다른 모든 기업
애플의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은 한 가지 목적을 충실히 수행한다. 애플의 유명한 1984년 TV광고는 빅 블루 Big Blue *역주: IBM의 별칭를 빅 브라더big brother에 비유했다. 90년대 말 광고에선 느리고 화재에 취약한 펜티엄 칩을 만든다며 인텔에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었다. 공격은 애플이 x86칩을 채택하기 전까지 계속됐다. 2000년대 중반에 나온 ‘나는 PC다’라는 광고에선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를 볼품없는 제품이라고 비하했다. 애플만큼 협력사에 까다롭게 구는 기업은 없다. 애플은 엄격한 비밀유지 규정을 실시하고 있다. 애플과 일을 한다는 것은 ‘일방통행’이다. 분명한 허가가 없다면 누구도 애플 브랜드에 손댈 수 없다. 또한 어도비 플래시와 로봇회사 팜 Palm으로 이직한 직원들에 대한 태도를 봤을 때, 애플이 한번 원한을 품으면 몇 년간이나 지속되는 것 같다. 레오 듀로서 Leo Durocher는 ‘사람만 좋으면 꼴찌로 처진다’는 말을 했다. 분명 애플은 격려와 위로를 통해 1인자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다. - by Adam Lashinsky


No7. 베네치아 vs 제노바
포춘이 선정한 라이벌 중 유일하게 진짜 전쟁이 수반된 케이스다. 제독이 이끄는 함대가 출동하고, 배신과 살인이 자행됐다.


이탈리아의 두 해상 도시국가가 고안한 많은 아이디어는 오늘날 비즈니스 업계의 모습과 상당히 닮아 있다. 우선 세제 혜택을 살펴보자. 두 국가는 잉여 농산물을 생산할 만한 경작지가 없었기 때문에 모두 봉건제도의 영향 밖에 있었다. 두 도시는 지리적으로 무역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 침입자들을 막기 위한 해군 용병을 파견하는 대가로, 조세 없이 무역을 할 수 있는 특혜를 누렸다. 무역상들은 선박, 선원, 화물에 들어갈 자금을 모으기 위해 사업 지분을 판매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베니스 아르세날레 Arsenale에서는 선박에 대한 큰 수요가 있었다. 덕분에 산업혁명 이전까지 유럽 최대규모를 자랑하던 산업단지가 아르세날레에 들어서게 되었다. 조선소들은 표준화된 부품을 사용하는 조립라인을 통해 대량으로 선박을 제조했다. 하루면 미술관도 세울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결국 명확한 기록을 유지할 방법을 찾다가 위대한 발명이 이루어졌다. 바로 복식부기다. 괴테 Goethe가 “복식부기는 인류 역사상 아름다운 발견 중 하나”라고 말했을 때 그는 이미 슈냅스 schnapps *역주: 독한 네덜란드 진에 거하게 취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대차대조표에 차변과 대변 개념이 없었다면, 현대 자본주의 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란 점이다.

승자: 베니스

P&G의 A.G. 래플리와 함께 한 워 게임
1980년대 중반 우리는 혁신적인 액체 표백제를 발명했다. 그 제품은 우리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업계 선두 클로락스 Clorox 제품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다. 우리는 신제품에 어울릴 만한 바이브런트 Vibrant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나는 브랜드 매니저 존 릴리 John Lilly와 함께 워 게임을 통해 바이브런트 출시를 예측해 봤다. 실시간으로 카드를 뒤집어 매일 우리가 바이브런트를 위해 준비하는 사항을 공개했다. 1주일 만에 나는 완패했다. 그렇지만 경영진은 우리의 실험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는 하던 일을 계속 했다. 우리는 클로락스의 캘리포니아 본사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메인 주 포트랜드에서 테스트를 실시하기로 했다. 며칠 만에 근처에 있는 모든가정집, 아파트, 농장, 어촌 판잣집이 클로락스 표백제 한 갤런을 공짜로 받았다. 우리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우리 사업에 발 디딜 생각을 말라. 절대 환영 받지 못할 것이다.’ - 제프 콜빈이 들은 이야기

No8. HP vs IBM

IBM을 상대로 한 휼렛패커드 Hewlett-Packard의 승리는 그다지 달콤하지 않았다. 2006년 HP는 매출에서 IBM을 따라 잡았다. HP는 엔지니어링으로 중무장한 현대 실리콘밸리 정신의 씨앗을 뿌렸다. 반면 IBM의 아이콘 토머스 왓슨 Thomas Watson은 과학자보다는 세일즈맨에 더 가까웠다. HP는 왓슨 일가가 물러난 이후 10년간 IBM보다 자주 CEO를 교체했다. HP가 공세적 전략을 선호한 반면, IBM은 5개년 계획을 바탕으로 움직였다.

승자: IBM

No9. 에어버스 vs 보잉

항공 산업은 단순한 산업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억 6,000달러 규모의 항공 산업은 국가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한다. 보잉은 2003년 근소한 차이로 에어버스에 선두 자리를 내줬다. 그때 이후로 두 회사 사이엔 정치적 긴장이 고조돼 왔다. 양 대륙의 무역 공무원들은 상대편의 부정행위를 주장하며 서로를 헐뜯고 있다. 2011년에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개인 서신을 통해 사우디 국왕 압둘라에게 보잉 제트기 구매를 촉구한 일이 폭로됐다. 에어버스도 수십억 달러의 정부 보조금을 지급받고 있다. 보잉이 787 드림라이너 운행 지연사태를 처리하는 동안, 에어버스는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게 자라난 보잉 항공기 사진을 광고에 싣기도 했다.

승자: 무승부

No10. 유니온 퍼시픽 vs 센트럴 퍼시픽

1862년 에이브러험 링컨이 이들의 경쟁에 불을 붙였다. 유니온 퍼시픽 철도는 오마하에서 서쪽으로 철도 건설을 시작했다. 반면 센트럴 퍼시픽 철도는 새크라멘토에서 동쪽으로 건설을 시작했다. 두 회사는 철도 1마일을 설치할 때마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부지와 국채를 지급 받았다. 그렇게 두 회사의 철도는 유타에서 만나게 되어 있었다. 두 회사 간의 악감정은 근로자들에게까지 퍼졌고, 인종 갈등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1869년 두 회사의 기차들은 철로에서 만났다. 그리고 미국을 횡단하기 위해 서로를 지나쳐 달렸다. 이렇게 그들의 경쟁과 갈등은 끝이 났다.

승자: 무승부


나머지 라이벌 기업

11. 맥도날드 vs 버거킹 버거킹의 1982년 광고는 1914년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사건과 유사점이 있다. 이를 계기로 향후 10년간 처절한 ‘버거 전쟁’이 펼쳐진다.
12. R.J. 레이널즈 vs. 필립 모리스
13. 허츠 vs. 에이비스
14. 프록터앤드갬블 vs. 유니레버
15. 넷스케이프 vs. 마이크로소프트
16. 비자 vs. 마스터카드
17. 페라리 vs. 람보르기니
18. 메이시스 vs. 김벨스
19. 버드와이저 vs. 밀러
20. 아디다스 vs 퓨마 아디다스와 푸마의 설립자 형제는 단순한 오해로 인해 평생을 반목 속에서 보냈다.
21. CVS vs. 월그린
22. UPS vs. 페덱스
23.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s . v조셉 퓰리처
24. 바이엘 vs. 타이레놀
25. 듀라셀 vs. 에너자이저
26. 월마트 vs. 타깃
27. 뉴욕증권거래소 vs. 나스닥
28. 오레오 vs. 하이드록스
29. 해즈브로 vs. 마텔
30. 던킨 도너츠 vs. 스타벅스
31. 오라클 vs. 세일즈포스
32. 펜더 vs. 깁슨
33. 캐논 vs. 니콘
34. 유에스 스틸 vs. 베슬리헴스틸
35. 시어스 vs. J.C. 페니
36. 코넬리어스 밴더빌트
s . v제이 굴드
37. J.P. 모건 vs. 골드만 삭스
38. 소더비 vs. 크리스티
39. 루이스 B. 메이어 vs. 잭 워너
40. 블록버스터 vs. 넷플릭스
41. 팬암 vs. TWA
42. 컴캐스트 vs. 버라이즌
43. 그레이하운드 vs. 트레일웨이스
44. 소니 vs. 닌텐도
45. 에스티 로더 vs. 로레알
46. 구글 vs. 페이스북
47. 마이클 아이스너
s .v 제프리 카젠버그
48. 마블 코믹스 vs. DC 코믹스
49. BMW vs. 메르세데스 벤츠
50. 넷플릭스 vs. 아마존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