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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보스

I AM ROBOT BOSS<br>5,000㎞ 떨어져 있는 직원들의 신경을 곤두세운 미국 파퓰러사이언스 편집장의 소름끼치는 실험

나는 미국 파퓰러사이언스 편집장이다.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오니 복도 저편에 3명의 직원이 모여서 뭔가 얘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고, 그 시선이 강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들에게 비친 내 모습이 정감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정확히 어떤지는 모른다. 나는 지금 뉴욕의 회사와는 5,000㎞나 떨어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집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회사에 있는 로봇 아바타를 노트북으로 조종하고 있는 중이다. 문득 로봇을 화장실로 이동시켜 거울을 보고픈 생각이 들었지만 이 로봇은 손이 없어서 화장실 문을 열지 못한다.

도망갈 곳을 찾던 나는 몸을 돌려 취재기자들이 있는 편집부로 들어갔다. 보통 때는 항상 반갑게 맞아주던 후배들이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기사 편집을 책임지고 있는 제니퍼 보고가 자지러지게 웃어대며 노트북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려서 자신이 일하는 중이었음을 강조했다.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님을 알리고자 우스갯소리를 해보려 했지만 그녀는 내 말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채팅 창에 이렇게 썼다.

“소리가 안 나와?”

원래대로라면 이 내용을 로봇이 상냥한 여자 목소리로 말해줘야 했지만 소리가 너무 작은 것 같았다. 원인을 찾던 중 스크린에 ‘배터리 부족’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직원들이 로봇을 제때 충전해놓지 않은 것이었다. 여기서 조종해서 충전기까지 갈 수도 없을 정도였다.

나는 짐짓 화를 내며, 회사로 돌아가면 모두 해고해버리겠다는 으름장 섞인 글을 채팅 창에 입력했다. 바로 그 순간 노트북의 화면이 검게 변했다. 부하직원들 앞에 부자연스럽게 선 상태로 로봇의 전원이 소실된 게 분명했다. 그러자 갑자기 패닉이 찾아왔다. 회사에서 내가 사라졌고, 직원들과의 연락도 끊겼다는 사실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지난 20여년 동안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장소를 원격 체험하는 텔레프레전스(telepresence) 로봇, 혹은 원격 현실감 기기(remote presence device, RPD)는 로봇공학계의 흰돌고래와 다름없었다. 프로세서, 소형 마이크로폰, 카메라, 센서, 저렴하고 빠른 광대역 통신기술 등 RPD 구현에 필요한 핵심기술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이 갖춰졌고, 지난 5년간 많은 기업이 RPD를 내놓았다. 지난 18개월 동안에만 최소 5개사가 신제품을 출시했으며, 아이폰을 두뇌로 사용하는 소형 원격조종 요람에서 자동차만큼 비싼 대형 플랫폼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이들의 전략은 명확하다. 숙련된 인재의 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RPD를 활용해 각 인재들이 지리적·공간적 제한에서 벗어나 어디서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나의 경우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의 직원들을 지휘해 파퓰러사이언스를 발간해야하는 꽤 독특하고 복잡한 입장에 처해있다. 1년 6개월전부터 몇 주에 한번씩 집과 회사를 비행기로 오가며 20여명의 취재기자 및 편집 디자니어들과 함께 책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집에 있을 때는 이메일과 전화로 직원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당연히 원격 화상회의 장비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잡지 제작은 반복적이지만 매번 역동적이며, 그때 그때마다 임기응변이 많이 필요하다. 화상회의로는 처리하기 힘든 일이 많다.

그러던 중 아내가 둘째 아이를 갖고 싶어했다. 뉴욕으로 가는 회수를 줄일 방법이 필요했다. 생각 끝에 여러 RPD로 실험을 해보면 직원들이 웃을 일도 많아지고, 내 자신도 일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나는 즉시 RPD 제작업체들에게 전화를 걸어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RPD를 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 과연 같은 공간에 있지 않은 동료들과 지적으로, 감정적으로 교류하며 협업을 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가 그것이었다.

물론 내가 이 문제에 처음 직면한 사람은 아니다. 1995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컴퓨터공학자 에릭 파울로스는 학술대회에 직접 가는 대신 비디오카메라, 마이크로폰, 원격제어시스템이 장착된 풍선 인형을 보냈다. 이 인형을 통해 원격지에서 동료들과 대화하며 교류하는 실험을 한 것.

이후 1997년 그와 그의 지도교수인 존 캐니는 ‘원격 전형(tele-embodiment)’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냈다. 텔레프레전스를 다룬 초기 논문 중 가장 유명한 이 논문에는 간단한 구조를 가진 저렴하고 네트워크에 연결된 원격제어 로봇, 다시 말해 RPD의 개념이 자세히 설명돼 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내렸다.

“대다수 사람들이 실제 세계와 원격적으로 구현한 세계 사이를 편안하고 무리없이 왕래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16년이 지났지만 그런 날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RPD는 새로운 범주의 전자제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새롭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기존에 있던 부품들을 재조합한 산물이다. 대부분 두뇌와 시각장치, 조향장치, 스크린, 카메라, 마이크로폰, 그리고 바퀴나 캐터필러 같은 이동장치로 구성돼 있다.

현재 출시된 10여종의 RPD를 테스트해본 나는 회사에 투입할 4종을 최종 낙점했다.

첫 번째 실험 대상은 2011년 출시된 ‘VGo’였다. 흰색의 유연한 곡선 디자인이 마치 애플의 제품이라는 착각이 들만한 녀석이다. 얼핏 보면 SF 영화에 나오는 악당 로봇이 연상되는 이미지도 풍긴다. 높이는 1.2m며, 키를 30㎝ 가량 더 키울 수 있는 1,690달러짜리 부품이 옵션으로 제공된다.

나는 키가 2m 정도 돼서 누구를 올려다볼 일이 별로 없는데 VGo를 사용하면 모든 사람을 올려다보는 익숙지 않은 시각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내 얼굴이 나오는 VGo의 LCD 스크린이 6인치(15㎝)로 작은 탓에 직원들은 나와 대화할 때면 양손을 무릎에 짚고 자세를 낮춰서 스크린을 바라보곤 했다. 어린이에게 말을 걸 때처럼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직장상사로서의 권위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VGo의 뒤를 이어 투입한 모델은 애니봇의 ‘QB 1.0’. VGo와 달리 2개의 카메라로 눈을 형상화한 머리가 달려 있어 첫인상에서 한층 친근감이 느껴진다. 게다가 목 부분의 길이를 조절, 최대 1.9m까지 키를 늘릴 수 있는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시각적 편안함도 더했다. 커다란 바퀴와 방진 코팅, 무선통신장치에 힘입어 야외에서의 사용도 가능하다.

특히 QB 1.0은 이동 시에 하향 카메라를 통해 원격조종자가 보지 못한 장애물을 파악, 충돌 위험이 있으면 진로를 자동 수정한다. 다른 RPD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유용한 기능이었다. 한 번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가서 건물 밖을 나가볼까도 했지만 경비원에게 제지당할 것이 뻔했고, 누가 로봇을 가져갈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

다만 QB 1.0은 오디오와 비디오의 잡음이 꽤 심했다. 대화를 하려면 로봇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귀를 기울여야 했다. 눈높이가 맞는 것은 좋지만 너무 가까이에서 서로 얼굴을 보며 얘기하는 건 분명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세 번째 실험대상은 앞선 두 RPD와는 전혀 달랐다. 크라우드 펀딩의 도움을 일부 받아 얼마 전 출시된 로모티드의 ‘로모(Romo)’가 그 주인공. 로모는 쉽게 말해 원격조종이 가능한 이동식 아이폰 거치대다. 마운트에 아이폰을 꽂아놓으면 다른 장소에 있는 아이폰 및 아이패드 사용자가 로모를 원격 조종할 수 있다.

로모는 작고 귀여우며,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는 게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149달러라는 가격은 여타 RPD와 비교하면 거저나 다름없다.

그러나 키가 7.6㎝에 불과하다. 아이폰을 포함해도 10㎝ 남짓이다. 이걸 회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직원들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건 정중히 사양하고 싶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들을 보고 싶어할 때나 사용하면 제격이라 여겨진다.
로모까지 3번의 테스트 끝에 나는 각각의 RPD마다 고유한 장점이 있음을 깨달았다. 반면 어떤 RPD도 직장상사가 회사에서 가져야할 유연함과 위엄은 전달할 수 없다는 사실도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스코트 핫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핫산은 과거 스탠포드대학에서 구글의 기초기술을 개발한 엔지니어이자 유명 로봇공학기업 윌로우 개라지의 창립자다. 지금은 수터블 테크놀로지스라는 RPD 제조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있다. 이 회사도 ‘빔(Beam)’이라는 RPD를 출시했다.

핫산과 약속을 잡고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의아스러워했다. 빔을 사용해 만나면 되는데 굳이 뭐하러 직접 왔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말을 단순히 농담으로 들었다. 언론플레이에 유능한 실리콘밸리의 괴짜 CEO들은 종종 그런 종류의 농담으로 별볼일 없는 발명품들을 그럴싸하게 꾸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안내로 공장의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그것이 진담이었음을 알았다. 사람보다 많은 빔들이 돌아다니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는 진귀한 광경이 펼쳐졌다. 거기서 빔을 통해 만난 한 젊은 직원은 지난 수년간 틈틈이 전 세계를 여행했지만 단 하루로 결근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때도 뉴멕시코주 산타페에서 코딩 작업 중이었는데 점심시간을 이용해 스키를 즐기고 있다고 귀뜸해줬다.

핫산 또한 자녀의 학교에 빔을 기증하고는 학부모 회의가 열릴 때마다 빔으로 참석하고 있었다.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갔을 때는 빔을 조종해서 자녀의 방에 들어가 대화하며 여느때처럼 가족애를 다진다. 타지에 살고 있는 부친과도 그렇게 매일 안부를 확인한다.

그는 얼마나 많은 회사에서 빔을 구입해 효용성을 실험하고 있는지 밝히지 않았다. 누구도 대량구입하지 않았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러나 이론상 RPD의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 제대로 활용하면 거의 모든 업종에서 막대한 효율성 향상을 이룰 수 있다. 예컨대 애니봇의 데이비드 로간 CEO는 한 체인점의 본사 판매사원들이 QB 1.0을 사용해 한 자리에서 고객이 붐비는 시간에 맞춰 여러 매장을 동시에 관리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고 알려줬다.



이와 관련 핫산은 RPD에게 사회성을 부여하는 게 최대 난제라고 밝혔다. 따라서 빔을 설계할 당시 신뢰감 향상에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빔은 와이파이 연결이 끊기면 자동으로 전원이 꺼집니다. 쓸데없이 다른 곳으로 굴러가지 않죠.”

실제로 VGo는 연결이 끊어졌을 때 재연결해보면 원래 있던 곳에서 한참 떨어진 벽앞으로 굴러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RPD도 폭음 후 필름이 끊긴 인간과 유사한 행동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빔에는 주변상황을 기록·저장하는 기능이 없다. 때문에 직원들은 빔이 자신과 조금 떨어져 있으면 내가 있을 때와 달리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또 빔은 장애물을 감지해 회피하는 센서시스템도 없다. 훨씬 저렴한 QB 1.0과 VGo에도 있는데 말이다. 핫산은 이에 대해 동료간의 신뢰감은 빔이 아니라 빔을 조종하는 사람이 만들어내야할 덕목이라고 여겨 그런 기능을 넣지 않았다고 말했다.

“빔은 로봇이 아닙니다. 물론 사람도 아니죠. 빔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교에요.”

아마도 이 점이 내가 경험한 RPD 가운데 빔이 RDP의 이상적 역할을 가장 잘 구현한 모델이라는 느낌을 준 원인이 아닐까 한다.



로봇 아바타 실험을 하면서 나는 훌륭한 RPD가 갖춰야 할 요인들을 나름대로 파악했다. 첫 번째는 설계와 엔지니어링 부분이다. 단지 스크린과 마이크, 스피커, 배터리, 모터를 갖춘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스크린은 크고 해상도가 좋아야 하며, 사람의 눈높이에 위치해야 한다. 또한 마이크는 회의실 가장 끝자리에 앉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성능이 요구되고, 스피커는 로봇을 조종하는 사람이 평상시보다 크게 말하지 않아도 대화가 가능해야 한다.

덧붙여 배터리는 재충전 없이 하루 근무시간 내내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모터는 진공청소기처럼 큰 소음을 내선 안 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이런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이 로봇의 존재를 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심하면 아예 무시할 수도 있다.

사실상 RPD는 사람이 아니기에 이를 접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RDP를 조종하는 사람을 직접 대면했을 때와는 달라질 수 있는 것. 이 경우 RPD를 통한 대화는 잘해봤자 재밋는 이벤트일 뿐이고, 나쁘면 불필요하고 짜증나는 추가업무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직원들이 RPD의 스크린을 보려고 고개를 숙이고, 마이크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야하는 명백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면 어느새 RPD는 사무실의 책상과 의자처럼 주변환경에 녹아들 수 있다. 대화는 사라지고, RPD가 없었던 시절과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때가 RPD의 진정한 장점이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화상회의를 신청하길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RPD를 이용해 그들에게 다가가 어울릴 수 있다. 편집디자이너가 표지와 내지의 레이아웃을 벽에 붙여 놓으면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 디자인을 검토하고, 회사를 찾아온 취재원과의 대화에서 중요한 기사거리가 나왔을 때는 취재기자가 RPD를 통해 나를 취재원에게 소개시켜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듯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진 빔을 불과 수개월가량 이용해봤을 뿐이며, 이제 빔이 없는 예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왔다.

내가 RPD를 운용하면서 배운 두 번째 교훈은 설계와 엔지니어링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RPD가 모든 사람에게 먹히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파퓰러사이언스의 한 웹디자이너는 빔이 지나가는 걸 볼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지만 말을 걸어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 또 관리부장은 평상시 두려움을 모르는 여성이지만 빔이 다가가자 몸을 뒤로 젖히며 흠칫 놀랐다. 그리고는 웃음기 없는 말투로 소리쳤다.

“이거 제 앞에서 빨리 치우지 못해요!”


물론 나는 그런 반응이 재밋어서 불쑥불쑥 그녀의 사무실을 계속 급습했다.

실험을 마친 내게 RPD를 위시한 텔레프레전스 기술이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감을 없애 줄 것으로 보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하겠다. 빔은 절대로 사람들과 ‘친밀한’ 접촉을 할 수 없다. 직원들과의 회식에 따라가 술한잔 권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이는 직장이라는 특정한 환경에서 RPD의 유용성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본다. 대개 직장 동료들은 각자의 직급과 직책에 맞춰 직업적 예의에 구속받는다. 하지만 파퓰러사이언스의 직원 대다수는 그리 오래지 않아 빔의 존재를 인정했고, 실제의 나보다 친근한 나의 분신 쯤으로 받아줬다. 빔이 지나갈 때 새로 출시된 너프 건을 보여주는 후배도 있었고, 표지 디자인 초안을 들고와서 의견을 묻는 친구도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파퓰러사이언스는 매주 각 팀의 팀장들이 회의실에 모여 미팅을 하는데 서로의 직급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색한 침묵이나 무절제한 중구난방식 대화가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빔이 참석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대화가 한층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특히 한 번은 어떤 후배기자가 전화를 걸어와 단 둘이 잠깐 얘기할 것이 있다고 했다. 평상시 같았으면 휴대폰으로 대화를 했겠지만 나는 빔이 준비돼 있는지를 물었고, 빔을 조종해서 후배의 방으로 들어갔다.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 오간 사적인 대화인 만큼 그 내용을 밝힐 수는 없다. 세상의 모든 회사에서는 동료 직원과의 성격적 불화나 업무적 마찰이 있기 마련이지 않은가. 혹은 진급을 원하거나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고민에 빠져서 세상을 좀더 살아본 인생선배의 조언을 구하는 경우도 많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대화의 내용이 아니다. 빔을 통해 후배에게 내 표정이 전달되면서 후배의 문제에 내가 얼마나 공감하며 걱정하고 있는지를 감정적으로 전해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미묘하고, 복잡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빔은 서로가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훌륭한 가교가 돼줬다. 10여분 뒤 문제는 해결됐고, 후배는 감사를 표했다.

“이런 일을 로봇을 이용해서 처리하다니. 기분이 좀 이상한데.”

“저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요. 아마도 이 상황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크라우드 펀딩 (crowd funding) 소셜미디어, 인터넷 등의 매체를 활용해 다수의 대중들로부터 십시일반으로 투자금을 모으는 행위.

▶ 직장상사 로봇 아바타

VGo
VGo 커뮤니케이션즈

6,000달러에 이만큼 멋진 로봇 아바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건 큰 메리트다. 하지만 성인의 배 높이에 불과한 키와 작은 스크린은 업무용으로 적합지 않다. 상대방이 어색하게 몸을 굽혀야 대화가 가능한 탓이다. 키를 키워주는 부품이 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또 주행음이 5m 밖까지 들려서 노닥거리는 직원들을 급습할 수도 없다. 5,995달러(연회비 별도); vgocom.com

QB 1.0
애니봇

목 부분을 조절해 0.9~1.9m까지 키를 조절할 수 있다. 항습, 방진 처리가 돼 있으며, 조종도 쉽다. 특히 이동경로를 자동보정하는 보조 조향기능 덕택에 문지방 같은 장애물을 알아서 피한다. 그러나 오디오, 비디오 품질이 좋지 않아 원활한 대화가 힘들다. 또 친근하면서도 익살스런 모습은 상사의 위엄을 갉아먹는 요인다. 9,700달러(이용료 별도, 렌탈 가능); anybots.com

로모
로모티브

사무용 기기보다는 장난감에 가깝다. 때문에 하드웨어만큼 소프트웨어에 큰 공을 들였다. 아이들의 장난감으로도, 멀리 있는 친구 및 가족과 자녀의 유대감을 키워줄 기기로도 유용하다. 가격 역시 착하기 그지없다. 제조사는 향후 ‘로모(Romo)’에게 시각 기능을 부여, 스스로 장애물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149달러(아이폰 미포함); romotive.com


수터블 테크놀로지스

스크린이 커서 얼굴을 실제 크기로 보여준다. 듀얼밴드 무선시스템을 채용, 이동 중 와이파이 기지국이 바뀌어도 송신이 끊기지 않으며 오디오 성능이 뛰어나 원활한 대화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강하면서 조용한 모터, 8시간이나 되는 배터리 수명, 배터리 충전시기를 이메일로 알려주는 기능까지 있다. 현존 RPD 중 성능도, 가격도 최고다. 1만6,000달러(연결료 별도); suitablete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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