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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에 사는 주부 김나영씨는 지난 15일 오랜만에 직접 장을 보러 나갔다가 혀를 내둘렀다. 그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에 대한 불안감 탓에 외출을 자제하고 인터넷몰에서 가공식품 중심으로 장 보기를 했지만 아무래도 신선식품은 직접 눈으로 보고 골라야 성에 차기 때문. 하지만 막상 식품 코너에서 확인한 찬거리의 가격은 가뜩이나 메르스로 불편한 김씨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두어 달 전만 해도 한 통에 2,000원대였던 배추는 4,900원, 1,200원 정도 했던 무는 2,000원으로 올랐다. 심지어 배추 크기는 지난번 구입 때보다 더 작았다. 아이를 위해 소량만 구입하는 친환경 채소 가격은 아예 구입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양배추는 반 조각에 3,000원, 양파는 3개에 3,500원이었기 때문. 김씨는 "몇 달 전부터 장 보러 마트에 갈 때마다 가격이 달라지는 게 눈에 너무 잘 띈다"며 "마스크 쓰고 다니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겠는데 이러다 장 보기가 무서워 굶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메르스 확산으로 사회적 공포감에 휩싸인 사람들이 이제 물가 공포까지 느끼기 시작했다. 극심한 가뭄과 이상 고온 등으로 일반 가정의 식탁에 주로 오르는 주요 채소와 과일·수산물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는 탓이다.
16일 aT(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15일 도매가 기준 배추(상품·1kg)는 760원으로 전년 대비 126.9% 급등했다. 같은 기간 양배추는 무려 166.7% 상승했고 얼갈이배추와 열무도 각각 37.7%, 89.0% 올랐다. 대파와 양파 가격 역시 107.5%, 59.8% 상승했다. aT 관계자는 "강원 영월의 경우 배추 재배 면적의 30~40%에서 생육 부진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가뭄 및 고온 현상이 지속될 경우 출하량 감소 및 가격 상승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과일 가격 역시 오름세를 보이면서 장바구니 물가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제철 과일 중 참외만 지난해에 비해 가격이 내렸을 뿐 방울토마토는 33.7%, 토마토는 7.3%, 수박은 8.9% 뛰었다. 이 때문에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에서는 체리·망고·블루베리·포도 등 국산보다 저렴한 수입 과일이 대체재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다.
장바구니에 자주 담기는 수산물인 고등어·갈치·오징어 등도 두 자릿수 상승세다. 남획과 이상기온에 따른 수온 변동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 탓이다. 대형마트의 한 관계자는 "채소류의 경우 아직은 산지에 확보해둔 물량이 있어 상품 운영에 영향을 덜 받고 있지만 소비자의 가격 저항감을 낮추기 위한 할인 행사 등은 예년에 비해 제한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가뭄과 고온 현상이 장기화할 경우에 대비해 현재 바이어들이 주요 산지를 직접 뛰어다니며 물량을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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